나만의 책상을 갖는다는 것

: 닥터 지바고

by 윌버와 샬롯

유리 지바고는 의사이며 시인이다. 러시아의 격동하는 시대 한복판에 살았다. 그는 휴머니즘을 실천했고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거센 소용돌이 세상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가족과 헤어지게 되고 쫓기는 신세가 된다. 마지막 도피처로 그는 연인 라라와 옛집으로 잠시 피신한다.



러시아는 얼마나 추운 나라인 건가. 궁전 같은 집이지만 눈으로 덮이고 꽁꽁 얼어붙었다. 상심함을 안고 집 안을 라라와 유리는 둘러본다. 실망도 잠시 비록 먼지는 수북이 쌓여있지만 아늑한 침실을 발견한다. 더구나 거기에는 창밖이 보이는 위치에 책상 하나가 놓여 있었다. 유리는 벅찬 얼굴로 책상에 뽀얗게 앉은 먼지를 쓸어낸다. 그리고 서랍을 열어본다. 거기에는 오래전부터 있었을 종이와 펜, 잉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어릴 적 글을 배울 때 썼던 책상이라며 라라에게 말해준다.


도피해 온 얼음 궁전에서 유리는 가장 먼저 무엇을 했을까. 그는 책상에 앉아 글을 쓴다. 아마도 그것은 시였을 것이다. 모진 삶이었음에도 그는 옷을 꼭꼭 여며 입고 손에는 장갑을 끼고서라도 시를 써내려 간다.



늦은 밤 밖에서는 늑대 떼가 운다.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한 미래에도 그는 시를 쓰고 버리고 쓰고 버린다.

겨울밤

눈보라가 날려, 온 대지 위에 눈보라가 흩날려
사방 구석구석까지 휘몰아쳤다.
책상 위에 촛불이 타고 있었다.
촛불이 타고 있었다.
여름날 날벌레들이
불꽃을 향해 날아들듯이
눈송이들이 안마당에서
창문틀 쪽으로 흩날렸다.
눈보라는 유리창 위에
찻잔이며 화살의 모양을 그려 놓았다.
책상 위에 촛불이 타고 있었다.
촛불이 타고 있었다.
촛불 비친 천장
비틀린 그림자 어린다.
얽힌 팔, 얽힌 다리는-
교차한 운명의 그림자.
두 개의 조그만 신짝
소리를 내며 마루 위에 떨어졌다.
밀랍은 침실용 촛대에서
눈물처럼 옷에 흘러내렸다.
그리고 모든 것이 눈의 농무 속에서
회색과 흰색으로 사라져 갔다.
책상 위에 촛불이 타고 있었다.
촛불이 타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서 바람이 촛불을 향해 불어댔다.
유혹의 열기는
십자가 형상으로
천사처럼 양 날개를 들어 올렸다.
2월 내내 눈보라가 흩날렸다.
그리고 쉴 새 없이
책상 위에 촛불이 타고 있었다.
촛불이 타고 있었다.

소설 <닥터 지바고>의 ‘유리 지바고의 시’ 중에서



유리는 라라를 위한 시를 쓰고 라라는 그 시를 읽는다. 그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졌다. 얼마나 아름다웠기에 라라는 이건 자기가 아니라며 수줍게 말했을까. 그런 글을 받을 수만 있다면!


세 시간이 넘는 영화 '닥터 지바고'의 그 많은 아름다운 장면 중에서 난 유리가 책상에 단정히 앉아 꿋꿋이 글을 써 내려가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그것은 유리 지바고만의 저항이며 외침이었다. 시대가 어떻든 현실이 어떻든 처지가 어떻든 자기만의 책상이 있다면, 종이와 펜이 있다면 예술가는 한줄한줄 글을 써낸다. 아마도 우리가 오래도록 기억하고 사랑하는 모두의 예술가들처럼. 혹은 아무도 몰라보지만 그럼에도 글을 써 내려가는 숨어있는 예술가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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