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산타를 믿나요?

: 마르게리트 할머니의 크리스마스

by 윌버와 샬롯

정확히 몇 살 때인지는 모른다. 크리스마스 환상이 완벽히 깨지던 어느 해 크리스마스 아침을 기억한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아무도 모르게 나만의 양말을 놓아두고 잠을 잤다. 일 년 내내 착한 아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나쁜 아이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일어나 짠하고 내 앞에는 선물이 없는 것을 두고 의문이 들었을지 모른다. 선물을 넣을 양말이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그래, 뭔가 산타할아버지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번에는 나도 양말을 놨는데 우리 집을 지나칠 리가 없을 거라고. 우리 집에는 굴뚝도 없는데 산타할아버지는 어떻게 들어올지 의문투성이였지만 이번은 다른 때와 다를 거라는 혹시 모를 기대에 부풀었다. 선물을 받고야 말겠다는 꼬마의 작은 시도 하나만으로.


눈을 뜨자마자 확인. 역시나 내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양말은 놓아둔 그대로 텅 비어있었다. 그때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세상에 판타지는 없구나. 내가 나쁜 아이라서가 아니라 원래가 산타가 없는 것이다! 실망한 마음을 그렇게 스스로 위로했을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 내색하진 않았지만 여태까지 그날 아침의 기분이 잊히지 않는 걸 보면 어지간히 상심했었나 보다. 선물은 설날이나 학교를 입학하거나 졸업할 때 그리고 생일 때 어쩌다 받는 거였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우리 집에선 크리스마스라는 세계인의 명절은 단지 쉬는 빨간 날이며 TV에서 하는 재미있는 크리스마스 영화를 보는 날 일 뿐이었다.

산타 존재 여부에 대한 갑론을박이 여전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나중에 알게 될 진실은 제쳐두고라도 아이의 기대와 판타지를 살려주고 싶었다. 내 어린 시절 실망한 꼬마를 위해서라도.


엄마, 오늘 밤은 나 늦게 잘 거야.
산타할아버지가 어떻게 오시는지 꼭 볼 거야!


아이가 그렇게 마음을 먹은 크리스마스이브 밤만 되면 엄마는 잠도 못 자고 곤욕이다. 반짝반짝 포장한 선물 보따리도 아이들 모르게 숨겨놓아야 하고, 자는 척하다 아이들이 겨우 잠든 걸 확인하면 불 꺼진 어둠 속을 헤치며 살금살금 선물을 꺼내 각자의 위치에 놓는다. 산타할아버지가 힘드시니 간식을 먹어야 한다며 식탁에 차려놓은 케이크 한조각도 몇 스푼 잘라먹어놔야 이 연극은 완성된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크리스마스 아침의 순간이 있다. 평소에는 사주지 않던 고가의 블록 장난감을 아들이 깨어나 크리스마스 선물로 발견하자마자 했던 환호성! 그 기쁨의 표정을 난 잊을 수 없다. 정말 갖고 싶었던 물건이었나 보다. 아,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은 성공이구나, 하는 안도감과 선물 준비부터 포장, 숨기기, 잠들게 하기, 숨죽여 도둑 걸음 했던 그 모든 순간들이 씻기는 뿌듯함이라니!


엄마, 근데 산타할아버지가
내가 이거 갖고 싶은지 어떻게 알았을까?


‘으음, 네가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녔잖아.’


선물을 엄마 아빠가 준거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자꾸 보냈지만 그래도 꽤 오래도록 딸아이는 산타의 존재를 믿었다. 굳이 부모가 알려주지 않아도 아이들의 판타지는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현실로 돌아온다. 진실을 파악한 그 이후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지 아이들 어릴 때 했던 것만큼 준비하는 마음이 설레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부터는 이제 우리의 크리스마스 이벤트는 케이크 하나 정도 나눠먹는 걸로 대신하고 있다.

마르게리트 고댕 할머니는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림책 <마르게리트 할머니의 크리스마스>는 우선 그림이 너무나 세련되고 아름다운 책이다. 겨울이면 눈이 많이 내리는 이 그림책 작가들의 고향 캐나다 퀘벡 분위기가 물씬 난다. 이 아름답고 깔끔한 저택에 마르게리트 할머니는 혼자 산다. 나이 들어 가까운 이들은 떠나고 자식들에게 더 이상 걱정도 신세도 지기 싫어하는 할머니. 온전히 스스로 삶을 일구고 성실히 살아온 사람이라면 그럴 것도 같다. 약해진 나를 타인으로부터의 보호로 확인받는 것이 그리 유쾌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 나의 노년은 어떨까.

크리스마스를 싫어하는 건 아니에요.


오래도록 혼자 지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조금은 안다. 어떤 특별한 날에는 더더욱 그렇다. 머릿속에 그리는 노년의 삶이 있긴 하다. 같이 살지는 않지만 친구들과 서로 걸어 다닐 수 있는 가까운 동네에서 모여 살고 싶다. 각자의 사생활은 지키며 소소한 일상을 나누면서 종종 여행도 함께 다닌다. 어떤 날에는 자기만의 음식을 하나씩 해와 포틀럭 파티를 연다. 피를 나눈 가족의 개념을 넘어 친구들과의 적절하고도 따듯한 공동체 삶을 살고 싶다. 난 여전히 미지의 세계인 죽음이 두렵다. 그러나 아직 오지 않은 것으로 인해 지금 이 삶에 방관만 하지는 않을 거다. 지금 이 순간의 삶, 나의 행복을 꿋꿋이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자식들은 혼자 크리스마스를 보내도 괜찮다는 할머니 말을 믿지 않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미운 사춘기라 크리스마스 선물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 다만 이 시절이 조금 지나고 편안해지면 아이들에게 예전의 산타 엄마처럼 서프라이즈 선물을 안겨주고 싶다. 자라고 자라서 아이가 내 손길이 필요하지 않은 어른이 돼서도 영원히 내 꼬마요정일 아이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딩동!” 누군가가 초인종을 누른다. 부디 그 소리가 두렵지 않고 반가워 현관으로 펄쩍 뛰어가는 명랑한 빨간 산타 할머니가 되기를 난 바라 마지않는다.

이미지 출처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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