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구지를 끌고
이런 완벽한 삶이 또 어디 있을까. 내 몸으로 직접 일구는 노동에 신성한 기운마저 느꼈다. 일 년 동안 심고 가꾸고 수확한다. 식구가 먹을 만큼만 남기고 나머지를 판다. 그것을 싣고 간 달구지와 소, 그 소의 멍에와 고삐까지 남김없이. 주머니에 돈이 두둑해진 농부는 집에서 기다릴 가족들을 위해 한껏 쇼핑을 즐길 줄 알았다. 장갑을 짜고 빗자루를 만들며 겨우내 수고한 아이들 선물도 사고 살림에 필요한 여러 생필품까지, 열흘 동안 걸어서 온 도시에서 사지 않아야 할 물건이 무엇인지 찾는 게 더 힘든 문제가 아니었을까.
오랜만에 대형마트에 갔다. 카트에 물건을 가득 담고서 계산대 앞에 줄을 섰다. 바로 뒤에 서있던 어느 부부가 계산대에 올려놓는 내 진열품들을 보며 자기들끼리 하는 말이 귀에 스쳤다.
“대단하다, 대단해.”
얼굴이 좀 화끈거렸다. 미리 주문해놓은 피자를 가지러 간 남편이 오지 않아 마음은 더 조급해졌다. 이 많은 것들을 나 혼자서 언제 계산하고 다시 카트에 실을지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계산이 늦어지는 통해 뒤통수도 점점 뜨거워지는 것 같아 급히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빨리 와. 계산해야 한다고!”
다행히 뛰어오는 남편이 보였다.
“한창 클 나이인 청소년 둘이 있는 집에서 더군다나 방학인데 이 정도는 보통 사지 않나. 애들 모두 장성해서 출가시키고 부부 두 사람만 사는 집이라면 다른 문제지만.”
박스 두 개를 채우고도 집에서 가져온 장바구니에까지 겨우 욱여넣고 나서야 마트 주차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따가운 시선을 혼자 감내해야 했던 순간을 남편에게 씩씩대며 연신 토로하면서.
그림책 <달구지를 끌고>의 농부는 시장에서 무엇을 샀을까. 무쇠솥, 수예 바늘, 주머니칼, 앵두 맛 박하사탕뿐이다. 열흘 동안 걸어온 장에서 산 것들이 고작 이것뿐이라니! 가장을 애타게 기다렸을 가족을 위해서라도 더 살만도 할 텐데. 그러나 짐을 싣고 갈 달구지도 없으니 많이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작 그들에게는 필요한 것이 없었다. 자연이 다시 줄 것이며 필요한 것은 그 안에서 스스로 만들 수가 있기 때문이다. 자연과 협업하는 자급자족의 완벽한 조화!
어른이든 아이든 가족 모두가 노동을 하고 자연의 순리대로 사는 모습에서 진정한 미니멀리즘을 엿봤다. 그 단순한 삶에서 뭔지 모를 평화와 숭고함까지 느꼈다. 은퇴 후 전원생활을 동경하는 사람이 많다지만 시골에서는 절대 살지 않겠다는 평소 마음이 노년의 내게도 어쩌면 다른 선택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살짝 전환됐다. 넘쳐나는 맥시멀리즘에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그려본다.
모든 것을 털어내고 다시 시작하기 딱 좋은 새해다. 작년이 어떠했든 모든 것을 거두고 훌훌 벗어버리자. 한 해 농사 잘 짓고 무쇠솥 하나 어깨에 척 걸치고 가볍게 집으로 돌아오는 농부처럼 새롭게 시작해 보자. 뒷마당에 떨어진 깃털을 줍고 천을 짜고 달구지를 만들 나무를 자르는 것들은 하루하루 해냈던 작은 일들일 것이다. 그 많은 하루들을 성실히 살다 보면 어느새 꿀은 모아지며 주머니는 두둑해지고 일상은 풍성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새해를 맞이하며 당신은 어떤 다짐을 하고 실천을 했나? 작심삼일, 새해 첫날 하고도 아흐레가 지났지만 우리에게는 다가오는 설날이라는 새로운 리셋 버튼이 또 있지 않은가.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법, 내일부터가 아니라 바로 지금이다. 당신의 완벽할 2023년을 위해 토끼처럼 깡충 뛰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