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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버와 샬롯 Apr 10. 2023

탄듀, 아라베스크, 하나, 둘, 셋!

: 발레리나 토끼

'저기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이들이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었어요.


‘나도, 춤추고 싶어…!’

한눈에 마음을 빼앗긴 아기토끼는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어요.


동경하는 것을 보고 바로 똑똑 문을 두드리는 토끼가 대단하다. 마음속에 소망을 안고서 살던 대로 살아가는 게 보통의 모습이다. 그저 품고만 있다 만다. 이러쿵저러쿵 하지 못할 이유를 수백 가지도 넘게 댈 수 있다. 나도 그렇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하는 강의 하나가 보였다. 평일 저녁에 하는 작가 북토크 강의였다. 아직 아이가 어릴 때라 강의를 듣기에 편한 시간대는 아니었다. 한동안 잘 찾아 듣던 여러 도서관 강의나 수업을 그때쯤엔 시큰둥하던 시절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느꼈던 배움에 대한 갈증이 예전만큼 동할 때도 아니었다.


그림책테라피. 갑자기 눈에 띄던 단어였다. 저녁 강의지만 듣고 싶었다. 저자가 일본인인데 한국에 직접 와서 하는 강의였다. 약식으로 그림책테라피를 경험할 수 있다고도 했다. 어쩐 일인지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부랴부랴 저녁을 차리고 막 퇴근한 남편한테 아이들을 맡기고 밤길을 나섰다.


도서관 작은 강의실에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작가와 통역하는 분이 나란히 강의를 진행했다. 그룹을 지어 그림책테라피를 체험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교감을 했고 작가가 읽어주는 그림책에 흠뻑 빠졌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림책을 좋아하게 됐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자연스레 멀어진 그림책의 매력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림책테라피가 뭐길래』 저자 ‘오카다 다쓰노부’는 강의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와달라고 해서 갔고, 읽어달라고 해서 읽어줬는데 여기 한국까지 오게 됐습니다. 그 사람이 살아온 인   생 배경에 따라 책에 대한 해석이 다를 수밖에 없죠. 그 감상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해 주는 겁니다. 그림책의 힘을 빌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교류의 장을 만드는 것, 서로가 다름을 받아들여 시야가 넓어져 서로 대립하지 않는 것, 그래서 결국 세계 평화를 이루는 게 제 목표입니다. 하하하.


나도 이거 하고 싶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더욱 깜깜해진 길이었지만 잊고 있던 꿈,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는 작가의 말이 오래도록 가슴을 벅차게 했다.


그래, 나도 그런 일을 해보고 싶었었지.


손 놓고 있던 블로그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고 3년 후엔 마음속으로만 그리던 서점을 열게 되었다. 살포시 커튼 뒤에 서서 발레를 지켜보던 아기토끼가 용기를 내 문을 두드렸던 것처럼 나도 그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오카다 다쓰노부처럼 세계 평화라는 거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진 않았지만 내 생에 몇 안 되는 용감한 행동 중에 하나임엔 분명했다.


너도 발레를 배우러 왔니?


그리고 일 년이 지났다. 그동안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이제는 다른 꿈도 꿔본다. 내 이야기가 있는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책방을 운영하면서 하게 됐다. 그림에는 소질이 없으니 글작가로 책을 만들 것이다. 어떤 그림책일지 대략의 이미지도 오랫동안 머릿속에 그렸었다. 플롯을 짜고 내용에 맞게 글을 쓰려니 쉽지가 않다. 말하고자 하는 것을 짧은 글로 표현해 내는 게 시작해 보니 만만치 않다. 하면 할수록 시간이 오래 걸리겠다는 생각이 든다. 새삼 작가를 업으로 삼고 있는 이들이 대단하다 느껴졌다. 잘 써진 그림책이나 책을 만나게 되면 그 작가가 마냥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어쩜 이렇게 잘 쓸 수 있는 거지?


질투는 나의 힘, 실수도 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발레를 배우는 아기토끼처럼 나도 차근차근 하나씩 해내야 할 것이다. 응원 온 발레리나들도 반할 만큼 자기들만의 숲속 발레 공연을 토끼들은 멋지게 해내지 않던가. 코로나 시국에 본 드라마 ‘나빌레라’가 떠올랐다. 나이 일흔에 발레를 시작한 할아버지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었다. 도전에 주저하는 젊은이에게 할아버지는 말했다.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지 마.

        내가 살아보니까,

        완벽하게 준비되는 순간은 안 오더라고.

        그냥 지금 시작하면서 채워.

        아끼다 뭐 된다는 말 알지?

        무작정 부족해도 들이밀어.


서점도 그렇게 들이밀었었다. 다시 한번 이 말에서 용기를 장착해 본다. 시간은 들겠지만 한 번 했는데 두 번은 못하겠는가. 게다가 성실함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그러니 아기토끼처럼 따라 해본다. 탄듀, 아라베스크, 하나, 둘, 셋, 폴짝!


이미지 출처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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