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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버와 샬롯 Jun 15. 2023

나의 동네 친구에게

: 인사

늑대 아저씨네 옆집에 여우 가족이 이사를 왔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어! 옆집 아이네.
인사할까?
아냐, 그럴 시간이 없어.


그림책 『인사』는 우리도 종종 아파트 복도나 엘리베이터에서 마주하는 난감한 순간 그 타이밍에 대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다음으로 미뤄서는 안 된다. 망설여지는 때, 바로 그때가 가장 적기이지 않을까. 최근에 나도 이 그림책 속 여우 아이와 늑대 아저씨처럼 고민만 하다 타이밍을 놓쳤던 일이 있었다.


모임에 나간 어느 날이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한 분이 먼저 와있었다. 반갑게 인사하고 근황을 나눴다. 마침 다른 한 명이 들어섰나 보다. 앞에 있던 일행이 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누군가 하고 고개를 돌렸다. 들어오는 사람이 여럿이었다. 그중 한 명이 우리를 보고 웃었고 같이 들어오는 사람 중에 어째 낯익은 얼굴이 또 보였다. ‘누구지? 아, 맞다. 이사 갔다고 했는데. 아, 저 엄마 만나러 온 거구나. 맞아, 둘이 친했었어.’ 아이들 초등학교 1학년 때 친구 엄마들이었다. 몇 년 만인지. 그들은 바로 내 뒤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둘은 나를 못 본 것 같다. 내내 뒤가 신경 쓰였다. 머릿속에서는 ‘아이 이름이 뭐였지?’ 가물가물한 친구 아이의 이름을 생각해 내느라 애쓰고 있었다. 이름만 생각나면 “누구 엄마?” 하며 바로 인사해야지, “참 오랜만이죠?”를 덧붙이면서. 그렇게 시나리오를 짰다. 기회는 여의치 않았고 모임이 끝나고 일어나면서 자연스럽게 해야겠다 싶었다. 끝내 아이 이름은 떠오르지 않았고 어느새 뒷자리 손님들은 먼저 일어나 식당에서 나갔다. 그들이 떠나고 나서야 ‘아 맞다. 그 애 이름이 이거였지’ 떠올랐고 ‘그냥 바로 인사할걸’ 하며 며칠 동안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들을 또 언제 보게나 될 수 있을까.


다음에 하지, 뭐.

        

그래도 나는 내성적인 성격치고 꽤 인사를 잘하는 편에 속한다. 그 덕에 찐 동네 친구를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이들이 어릴 때는 쌍둥이 유모차에 태우고 아파트 주위로 산책을 하곤 했다. 안고 재워야 겨우 잠이 들던 아이들이어서 날씨가 좋은 날에는 가끔 유모차에 태워 낮잠을 유도했다. 의도대로 다행히 두 아이가 유모차에서 잠이 들면 아파트 구석 한적한 벤치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거나 아니면 그저 망중한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자고 있을 때가 가장 예쁘다는 말, 아기 엄마한테만큼은 실로 진실의 말이었다.


그날도 그렇게 유모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아파트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저기 멀리서 쌍둥이 유모차가 보였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난 육중한 유모차를 밀며 그쪽으로 거의 뛰다시피 했다. 쌍둥이라는 공통분모는 어떤 수줍음도 무찌를 수 있었던 때다. 어디서든 버선발로 뛰어가 맞이할 수 있던 그때의 용기란 반대급부로 고독한 육아의 발로이기도 했었다.


그녀는 나보다 다섯 살이 어린 쌍둥이 엄마였다. 그녀의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과 생일도 한 달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이후 우리는 서로의 집을 방문해 아이들을 놀게 했고 놀이터에서 만났으며 교육관이 비슷해 그림책, 영어, 역사 등 엄마표로 가능했던 많은 것을 공유하며 함께 했다. 먼저 다가간 용감하고도 우연한 만남은 우리를 둘도 없는 동네 친구로 만들어줬다.


또 어느 날은 선거날이었다. 집에서 가까운 초등학교가 투표소였다. 투표하러 갔는데 얼굴에 피곤함이 잔뜩 묻어있는 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 곁에는 비슷하게 생긴 고만고만한 아이가 셋이나 있었다. 설마 세쌍둥이? 알고 보니 쌍둥이에 그 아래로 연년생 동생이었다. 하, 나보다 더 짠한 엄마가 여기 있었네. 그렇게 만난 그녀도 우리들의 쌍둥이 유니버스에 입장하였다.



민폐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아이가 크게 울기라도 할라치면 그 소리가 밖으로 나갈까 한여름에도 창문을 꼭 닫고 아이를 달랬다. 아이가 우는 건 당연한 건데 내 아이의 소리가 누군가에게는 소음으로 들리는 게 싫었다. 이사 온 옆집 사람이 차라도 한잔하자고 해도 온 신경이 육아에 집중되어 있던 터라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완벽한 낮잠, 완벽한 식사, 완벽한 육아. 엄마가 처음이었던 나는 책으로 배운 육아로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려 했다. 종일 혼자서 아이 둘을 전전긍긍 돌보던 일상, 이웃과의 교류는 언감생심뿐이었다. 숨통이 조금 틔었을 때는 우리 집 초인종을 누구도 더 이상 누르지 않았다. 이미 유효기간이 끝난 것이다.


배는 떠났지만 소통하고 싶었다. 가까이에서 교류할 수 있는 동네 친구가 절실했다. 아이들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겠다는 건 솔직히 핑계였다. 외로웠던, 혼자만의 육아에 지쳐있던 시기. 숨구멍 같던 두 쌍둥이 엄마는 기꺼이 내게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타인에 대한 감수성을 가진 우리 종은 갈수록 복잡한 방법으로 협력하고 소통했고 이로써 문화적 역량도 새로운 경지로 나아갈 수 있었다.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는 호모사피엔스의 특별함을 타인에 대한 감수성으로 정리했다. 눈맞춤, 접촉, 노출이 바로 그 감수성의 비결이란다. 그것들의 첫 단추는 아마도 ‘인사’가 아니겠는가. 육아라는 고된 터널에서 친구들을 만나 무사히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내 경우처럼 우리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폴짝폴짝 뛰어가 다정한 인사를 건네야 한다. “어머, 안녕하세요.” 하고 말이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이해해 주고 응원하며 어디서도 서로를 흉보지 않을 사람들, 지난 주말엔 우연히 쌍둥이 엄마들을 만났다. 우리는 이날, 맞닥뜨리고 있는 삶의 무게들을 토로하며 눈물을 훔쳤다. 난 그녀들을 안아주고 싶었다. 괜찮을 거라고, 이 시기도 분명 잘 지나갈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시간이 흘러 그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질 때쯤 함께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의 소중한 동네 친구들에게, 우리 같이 여행 가요. 내가 나서면 다들 즐겁게 따라나설 거죠? 난 알아요!


그날이 어서 꼭 왔으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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