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 선물을 받았다. 플로리스트인 지인은 꽃이 좀 남아 가까운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있다고 했다. 아무 날도 아닌, 아니 어느 날이라고 해도 꽃 선물 받은 지가 언제인지. 근데 꽃이라니, 너무 좋았다.
예쁜 것을 보면 기분이 밝아지는 것은 당연지사, 이 마음을 식구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주고 싶어 꽃에 어울리는 꽃병도 새로 샀다. 꽃꽂이에 대해선 하나도 모르지만 전체적인 균형과 조화를 생각하며 꽃을 넣었다. 집의 어느 곳에 놓아야 가장 돋보일지 꽃병의 자리를 찾았다. 꽃이 시들기 며칠 동안은 내내 꽃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꽃은 그렇게 시선을 사로잡는 마법 같은 힘을 갖고 있다. 그림책 『리디아의 정원』에서 웃지 않는 삼촌에게마저 옅은 미소를 짓게 할 수 있었던 것도 꽃의 힘이 아니었던가.
아주아주 옛날에, 앨리스네 할아버지는 커다란 배를 타고 미국에 살러 왔대거든요.
앨리스네 할아버지는 예술가였어요.
그림책 『미스 럼피우스』에서도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빛나게 하는 것을 꽃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더군다나 다음 세대에게도 전수해주는 위대한 일도 해낸다.
네가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있구나. 세상을 좀더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지.
이 말이 가슴으로 들어왔다.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세상은 아니지만 태어난 이상 그만한 역할이 우리 각자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세상 사람 모두가 리디아나 루핀 부인처럼 누구나 알아봐 줄 수 있는 일로 세상을 아름답게 할 수 있지는 않다. 보이지 않더라도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는 것도 그래서 스스로가 조금은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이 세상을 빛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앨리스는 금방금방 어른이 되었어요.
일을 잘한다는 것이 궁극적으로 더 좋은 사람이 되게끔 이끌어주지 않는다면, 굳이 일을 잘하려고 애쓸 필요가 있을까.
- 제현주, 『일하는 마음』
나도 조금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책을 읽고 글을 애써 쓴다. 꽃을 더욱 아름답게 포장하는 사람, 따가운 여름날 모르는 누군가의 뜨거운 땀방울로 어느 틈엔가 말끔히 새로 정리된 보도블록, 만삭의 몸으로도 책방에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엄마, 피로한 퇴근길에도 아이들 간식을 한아름 사 오는 아빠. 그 다정한 마음들은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어느 순간 어떤 방식으로든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 작은 하나하나의 정성이 모이기 때문에 아직 이 인류가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우리 모두는 다름 아닌 세상 구석구석에 핀 파란 보라 빨간 루핀 꽃들이었다. 오늘도 이곳저곳 세상을 좀더 아름답게 물들여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