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샤베트
토요일 아침 달콤한 늦잠, 단잠을 깨우는 불청객이 있다. 매콤하고도 감칠맛이 끝내줄 것 같은 그 무엇이 내 후각을 자극한다. 어느 집인가. 우리 집 창으로 넘어와 아침부터 군침을 돌게 하며 향기를 품어내는 그 집은 어디인가. 잠은 이미 달아났고 깨어난 뇌에선 그 익숙한 향의 음식이 과연 무엇일까 추측하기 시작한다.
근원지를 찾자면 우리 집을 기준으로 윗집 아랫집 왼쪽 오른쪽의 두 집 총 네 군데의 집으로 좁혀지지만 윗집 아랫집 주방이 구조상 서로 가까우니 가장 큰 용의자가 될 것이다. 분명 그중 한 집은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 살고 있다. 맛집 음식점에서나 나올법한 냄새를 아침부터 제공하는 것을 보면 보통의 음식 내공이 아니다. 어디 그게 아침뿐이랴. 저녁 10시가 넘은 때에도 향은 시간을 가리지 않고 노크도 없이 우리 집을 침입한다.
분명 그 집에는 수험생이 살고 있을 거야.
이 시간에 요리를 한다는 건
아이가 학원에서 오는 시간이랑 딱 맞아 떨어지거든.
급기야 명탐정 코난이 된 것처럼 이웃의 호구조사까지 추리한다. 종류를 가리지 않는 음식 냄새를 킁킁 맡으며 야식에 매혹된 남편과 나는 입맛만 쩝쩝 다시기 일쑤다. 어쩌다가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이웃과 내가 친한 사이라면 열에 한 번 정도는 그 압도되는 냄새의 근원을 맛볼 기회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기대, 그건 마치 그림책 『달샤베트』에 나오는 아파트 주민들처럼 반장 할머니에게 시원한 샤베트를 얻어먹는 상상 같은 것 말이다. 오호통재라! 난 위아래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면서 남의 냄새를 탐하는 성냥갑 아파트에 사는 주민일 뿐이지 아니한가.
백희나 그림책의 특징은 작가가 직접 손으로 만들어낸 그림책의 모든 것을 살펴보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하게 한다는 점이다. 전지적 시점으로 볼 수 있다는 대리만족의 발로 때문인지 특히나 아파트 한 동 전체가 전면으로 거실이 보이는 장면에선 눈을 뗄 수 없어 계속 머물게 된다. 똑같은 구조의 집들이지만 어떤 이들이 살고 있는지 인테리어는 어떤지 작가가 그린 그들의 숨은 이야기는 무엇일지 읽어내는 게 흥미롭다. 아마도 그 안에서 낯설지 않은 우리네 삶을 발견하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주며 이상 기후에 대한 은근한 경고, 달물 달방울이라는 어디에서도 듣지 못한 아름다운 단어 창출, 옥토끼의 반전 등장까지 현대와 고전이 어우러지는 기승전결이 탁월하다. 화룡점정으로 음으로 양으로 그림책 제작에 공헌을 한 사람들에 대한 헌사마저 미소 짓게 한다. ‘육아와 집안일 큰도움 김순덕’ 항목에선 작가가 워킹맘으로 어떤 환경에서 누구의 도움으로 이 그림책이 완성되었을지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친근함까지 더했다. 한국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백희나의 『달샤베트』는 서사와 그림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완벽한 그림책이다.
그나저나 이상한 9월이 계속되고 있다. 정말 우리들의 옥토끼 현실 달도 어느 날 갑자기 그림책처럼 녹아내리는 건 아닐까? 그렇담 달방울은 누가 받아내지? 혹 우리 집 이웃 그 요리 잘하는 어떤 분이 반장 할머니처럼 민첩하게 그러실 수 있을까? 그럼 난 노란빛이 새어 나오는 그 집을 찾으러 나서야겠다. 그리고 옥토끼처럼 예의 바르게 똑똑똑 문을 두드리고 이렇게 인사해야지. 바로 오늘의 요리는 아주아주 시원하고 달콤한 달샤베트군요,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