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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버와 샬롯 Nov 14. 2023

이번 생을 부탁해

: 100만 번 산 고양이

백만 번이나 죽지 않은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꼿꼿이 서 있는 고양이 한 마리가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갸릉갸릉 귀여운 모습이 아닌 무척이나 도도해 보인다. 초록 눈은 영험하게도 느껴진다. 백만 번이라는 가늠할 수 없는 숫자의 삶이란 이렇게도 당당해질 수 있게 하는 걸까.


한때 고양이는 임금님의 고양이었습니다.


한때 고양이는 뱃사공의 고양이었습니다.


한때 고양이는 서커스단 마술사의 고양이었습니다.


그림책 주인공 고양이 전생을 보자면 그는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를 가진 주인들은 어떤가. 고양이를 사랑했다곤 하지만 모두가 이기적인 사랑이다. 자기만 좋고 상대방은 원하지 않는 방식의 사랑. 결국 그 끝은 파국만 맞을 뿐이다. 잘못은 한쪽만이 아닌 것 같다. 이기적인 것은 주인만이 아니다.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고양이는 주인들에게 곁을 주지 않았다.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내색이라도 하지, 오해였다. 알았다면 그 많은 주인들이 고양이가 죽을 때까지 싫어할 일만 했을까. 고양이는 원래부터 그렇게 무심한 녀석이었는지 모른다. 혹은 다시 태어날 것을 알기에 그 모든 것에 시큰둥한 것뿐이었을지도.


이런 생각도 든다. 주인들이 고양이에게 사랑만 주어서 그런 건 아닌지. 이미 가져버린 사랑에는 쉬이 소홀해지기도 하니까. 그러니 연애 기술은 여기 희고 예쁜 고양이에게 배울 필요가 있다. 백만 번의 삶에서 어찌 새하얗고 예쁜 고양이가 그 한 마리만 있었겠는가. 연애 고수 필살기는 밀당이었다. 그저 본체만체했던 것이 예쁜 고양이의 연애 전술로 백만 번 산 고양이는 넘어가고야 만다. 나를 이렇게 대하는 고양이는 네가 처음이야, 드라마에 나오는 클리셰 같은 대사 한마디 있을 법하다. 드디어 임자를 제대로 만난 것이다. 앗, 어쩌면 예쁜 고양이는 백만 번이 아니라 이백만 번 산 고양이가 아닐까. 누구나 탐내는 것을 보고도, 새삼스럽게 이런 게 다 뭐야! 하면서.


한때 고양이는 도둑의 고양이었습니다.


다시 태어나면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 난 단연코 팜므파탈의 삶. 백만 번 중 한 번은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 이 말을 들은 사람 모두가 재밌다며 웃는다. 웃자고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진심이기도 하다. 어쩌면 사랑이 이렇게나 힘든 것이라고 그림책은 알려주고 있는 것도 같다. 지금 내 옆에는, 내가 선택하고, 나를 선택한, 남자가 있지만, 이만한 사람 없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서로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뭐 가끔은 그런 몽상을 하는 나를 발견하면, 아마 내게도 기억 못 하는 다른 삶이 있지 않을까, 최종의 사랑을 위해 이번 생도 어찌어찌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건 우리끼리만 손가락 걸고 비밀로 해두자.


백만 번이라니. 그렇게나 살아봐야 진짜 인생을 알게 되는 걸까. 도대체 이번 생이 몇 번째일까. 몇 번을 더 살아내야 다시 태어나지 않을 수 있는 걸까. 솔직히 백만 번은 끔찍하다. “태어나는 건 피곤한 일이야.” 그림책 <태어난 아이>가 말하는 것에 난 동의한다. 백만 번은 너무 피곤하다. 단지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살고 싶다. 이생망, 이번 생은 망했다가 아니고 잘 살았다, 웃으며 마침표를 찍고 싶다. 오롯이 내 몫으로 현재를 살아내기를, 이번 생이 아무것도 아닌 삶이 아니기를 소망한다.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될 만큼 하고 싶은 것 다 하며, 원 없이 웃고 울며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가고 싶다. 부디 이번 생을 부탁해.

이미지 출처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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