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만 번 산 고양이
꼿꼿이 서 있는 고양이 한 마리가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갸릉갸릉 귀여운 모습이 아닌 무척이나 도도해 보인다. 초록 눈은 영험하게도 느껴진다. 백만 번이라는 가늠할 수 없는 숫자의 삶이란 이렇게도 당당해질 수 있게 하는 걸까.
그림책 주인공 고양이 전생을 보자면 그는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를 가진 주인들은 어떤가. 고양이를 사랑했다곤 하지만 모두가 이기적인 사랑이다. 자기만 좋고 상대방은 원하지 않는 방식의 사랑. 결국 그 끝은 파국만 맞을 뿐이다. 잘못은 한쪽만이 아닌 것 같다. 이기적인 것은 주인만이 아니다.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고양이는 주인들에게 곁을 주지 않았다.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내색이라도 하지, 오해였다. 알았다면 그 많은 주인들이 고양이가 죽을 때까지 싫어할 일만 했을까. 고양이는 원래부터 그렇게 무심한 녀석이었는지 모른다. 혹은 다시 태어날 것을 알기에 그 모든 것에 시큰둥한 것뿐이었을지도.
이런 생각도 든다. 주인들이 고양이에게 사랑만 주어서 그런 건 아닌지. 이미 가져버린 사랑에는 쉬이 소홀해지기도 하니까. 그러니 연애 기술은 여기 희고 예쁜 고양이에게 배울 필요가 있다. 백만 번의 삶에서 어찌 새하얗고 예쁜 고양이가 그 한 마리만 있었겠는가. 연애 고수 필살기는 밀당이었다. 그저 본체만체했던 것이 예쁜 고양이의 연애 전술로 백만 번 산 고양이는 넘어가고야 만다. 나를 이렇게 대하는 고양이는 네가 처음이야, 드라마에 나오는 클리셰 같은 대사 한마디 있을 법하다. 드디어 임자를 제대로 만난 것이다. 앗, 어쩌면 예쁜 고양이는 백만 번이 아니라 이백만 번 산 고양이가 아닐까. 누구나 탐내는 것을 보고도, 새삼스럽게 이런 게 다 뭐야! 하면서.
다시 태어나면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 난 단연코 팜므파탈의 삶. 백만 번 중 한 번은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 이 말을 들은 사람 모두가 재밌다며 웃는다. 웃자고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진심이기도 하다. 어쩌면 사랑이 이렇게나 힘든 것이라고 그림책은 알려주고 있는 것도 같다. 지금 내 옆에는, 내가 선택하고, 나를 선택한, 남자가 있지만, 이만한 사람 없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서로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뭐 가끔은 그런 몽상을 하는 나를 발견하면, 아마 내게도 기억 못 하는 다른 삶이 있지 않을까, 최종의 사랑을 위해 이번 생도 어찌어찌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건 우리끼리만 손가락 걸고 비밀로 해두자.
백만 번이라니. 그렇게나 살아봐야 진짜 인생을 알게 되는 걸까. 도대체 이번 생이 몇 번째일까. 몇 번을 더 살아내야 다시 태어나지 않을 수 있는 걸까. 솔직히 백만 번은 끔찍하다. “태어나는 건 피곤한 일이야.” 그림책 <태어난 아이>가 말하는 것에 난 동의한다. 백만 번은 너무 피곤하다. 단지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살고 싶다. 이생망, 이번 생은 망했다가 아니고 잘 살았다, 웃으며 마침표를 찍고 싶다. 오롯이 내 몫으로 현재를 살아내기를, 이번 생이 아무것도 아닌 삶이 아니기를 소망한다.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될 만큼 하고 싶은 것 다 하며, 원 없이 웃고 울며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가고 싶다. 부디 이번 생을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