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포의 여행
열두 살 춥디 추운 겨울을 보내고 그다음 해에 3명의 친구를 만났다. 끼리끼리 무리를 지어 다니는 친구 그룹이 내겐 없었는데 초등학교 마지막 해에 그런 집단이 생겼다. 그냥 같은 반이 되었을 뿐인데 어떻게 해서 서로 다른 우리가 사총사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인연이라는 건 그렇게 느닷없이 생기기도 하나 보다. 어쩌면 외로운 아이에게 하늘이 준 선물이었을까. 우리는 담임 선생님에게 반에서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을 하달받는 주축 인물들이 되었다. 학교를 마치고 운동장에서 옹기종기 넷이 모여 선생님 흉을 보다 들키고 말아 다음날 선생님에게 소소한 복수를 당하기도 한 만화의 한 장면 같은 추억도 있다. 우리 우정 영원 하자고 몇 번 하지도 못한 싸구려 증표들을 서로 나누기도 했다. 그것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사총사가 없었다면 나의 유년 시절 기억 또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중학교 가서는 몸이 자주 아팠다. 왜 그런지 모르게 배앓이를 자주 했다. 종종 학교에서 조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네가 아픈 건 스트레스인 것 같다고. 아, 내가 그래서 아픈 것일 수도 있구나. 누구도 내게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었다. 어떤 약보다도 걱정 어린 관심의 말 한마디가 그때는 조금 위로가 됐던 것 같다.
아이 셋을 키우는 결혼한 언니 집에서 재수를 했다. 언니네에 있었던 일 년의 시간 동안은 따뜻한 밥과 도시락이 있었다. 기록적인 폭염의 해였음에도 다섯 식구에 나까지 여섯 명이 사는 아파트에서 단 하나의 선풍기만 있던 때였다. 그것마저도 더위를 많이 타는 퇴근한 형부 차지였을 때가 많았다. 언니는 한참 지나 얘기했다. 왜 그때 선풍기 하나 더 살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외벌이로 아이 셋을 키우며 알뜰히 살던 언니의 젊은 때였다. 그래도 난 괜찮았다. 언니의 밥을 먹을 수 있어서.
누가 초인종만 눌러도 화들짝 놀라던 때였다. 아이 둘을 전전긍긍 키웠다. 동시에 아이 둘을 재우기란 시시포스의 돌처럼 끝없는 굴레 같기도 했다. 혼자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그 시간을 오롯이 버텨내야 하는 긴 싸움이다. 아이를 어르며 베란다 창에 보이는 바깥세상의 사람들을 눈물지으며 보던 그 시절을 견디게 할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사람들이었다. 나를 먹이겠다고 밥을 해주고 아이를 대신 안아준, 먼 길 찾아 기꺼이 시간을 내어 내 곁을 지켜주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피포의 여행』을 보면서 그 사람들이 떠올랐다. 지금의 나라도 있게 한 그 순간순간의 사람들. 불면과 불안의 구멍 난 날들을 그들이 조금씩 메꿔줬다. 행복해지고 싶어 발버둥 치던 내 노력 뒤에 지금 생각해 보니 보이지 않는 손길이 그때마다 내게로 왔다. 그 인연들은 함께 나란히 가다가도 어느새 서로 다른 길로 헤어질 때가 있다. 오늘처럼 다시 그들이 떠오르고 그리워질 때마다 난 피포가 친구에게 달려간 것처럼 애정을 담아 그들을 기억하려 한다.
올해는 어떤 삶이라는 여행을 떠나게 될까.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그들에게 난 어떤 사람으로 남게 될까. 아무 걱정 없이 마냥 기쁠 때만 있진 않겠지. 힘들 때가 더 많을 수도. 그래도 믿는 구석은 있다. 분명 그 시절을 어떻게든 잘 보낼 것이라고. 항상 그래왔으니까. 그래서 지금도 난 살고 있으니까. 부디 부탁한다. 나도 그 누구의 당신도 어느 시절이든 같이 가자고. 혼자 있지 말자고. 함께 꿈을 꾸자고. 그러니 모두들 해피뉴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