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라지는 것들
엄마가 한동안 병원에 있을 때 난 때때로 주문을 걸었다. 도로에서 노란색 택시를 7대까지 찾아 세었다. 못 찾은 날도 많았고 어쩌다가 찾은 날이면 그쪽으로는 더 이상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리고 속으로 되뇌었다. 엄마를 낫게 해 주세요. 손목에 차던 전자시계를 우연히 봤을 때 시와 분이 같은 숫자일 때도 그랬다. 1시 11분, 2시 22분, 3시 33분... 엄마를 낫게 해 주세요. 노란 택시를 찾거나 시계를 보는 행동은 그저 나만의 의식이었다. 어디서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게 된 걸까. 아이가 할 수 있는 건 그때 아무것도 없었다. 기적을 바라는 혼자만의 주술을 만들었고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기도를 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엄마는 사라졌다. 원하지 않았지만 여러 번 보게 된 4시 44분 때문이었을까. 하루하루 노란 택시 7대를 많이 찾지 못해서 그랬을까. 아무것도 주지 못하고 어느새 사라져 버린 한 사람을 생각할 때면 그 말도 안 되는 숫자를 찾아 헤매던 한 꼬마가 가끔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엄마는 사라지지 않았다. 얼마 되지 않은 기억들이 꿈틀꿈틀 한다. 나란히 걸었던 코스모스 외가길, 참기름 착착 바르고 맛소금 솔솔 뿌려 갓 구운 김 위에 하얀 쌀밥, 백설기 떡에 사이다, 같이 가족오락관 보며 웃던, 그대에게서 벗어나고파 유행가를 들으며 “벗어나면 되지, 왜 벗어나지 못한대?”라고 묻는 내게 “그럴 수 없는 것도 있단다.”라고 말하던, 올갱이 직접 잡아서 된장 넣고 한 솥 푹 삶아 손가락이 쪼글쪼글 될 때까지 파먹던, “엄마, 백 원만.” 하고 쪼르르 구멍가게에서 과자 사던, 무거운 국화 화분을 들고 저 멀리 학교 운동장으로 걸어오던, 겨울 내내 난로 위에서 보글보글 끓던 생강차, 붕붕 벌에 쏘여 앙앙 울자 옥상 장독대로 얼른 뛰어가 손에다 된장 발라준, 중국집에서 계모임 하고 집에서 미리 가져간 양은냄비에다 짬뽕을 담아와 불은 면발을 아이가 호로록 삼키던, 그런 여러 날들이 떠오른다. 실제로 있었던 일들이었는지 자신이 없기도 하다. 믿고 싶은 대로 기억은 진화하며 다듬어져 진짜보다 더 진짜같이 박제가 되어가고 있는 것만 같다.
살다 보면,
많은 것들이 사라진단다.
변하기도 하고,
휙 지나가 버리지.
엄마도 그렇게 내게서 휙 지나가 버렸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하지 말거라.” 언제였을까. 엄마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 말을 들은 후 마지막은 내 입에서 조심스러운 단어가 되었다. 엄마가 지령 내린 나만의 금기어. 다른 말을 애써 찾는다. 애니메이션 코코를 보고 더욱 기억을 부여잡았다. 그 세상에서라도 엄마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며. 정구지, 담북장, 마늘쫑, 고추튀각, 고등어조림, 빨강 소시지, 꼬막무침, 찹쌀유과. 엄마의 음식과 말들을 소환한다. Remember mom, 이렇게라도 엄마를 기억할 거라고. 내 세상에선 마지막도 없으니 엄마는 아직 내게서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