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친구 중에 쌍둥이 남매가 있었어. 여자아이랑 같은 반이 된 적은 없었고 본 적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아. 남자아이랑은 한 번은 같은 반이 된 것 같기도 해. 그 애는 처음 본 쌍둥이라는 사람이었지. 그때만 해도 흔하지 않아서 신기해했던 것 같아. 동시에 태어난 남매라니. 그때부터였을까. 쌍둥이를 낳고 싶다고 생각했어. 특히나 그 애들처럼 남매 쌍둥이로 말이지. 남자아이만 키우기도 혹은 여자아이만 키우기도 그건 좀 심심하고 아쉬울 것 같으니까. 온갖 고통의 표정을 짓고 소리 지르며 아이를 낳는 장면을 드라마에서 숱하게 봐왔잖아. 근데 쌍둥이는 어때? 단 한 번의 고통으로 아들딸 모두를 얻을 수 있으니 얼마나 효율적이야. 아들딸은 100점, 딸아들은 200점, 아들딸 쌍둥이는 300점. 난 그렇게 생각했던 거지.
아이를 갖고 싶었냐고? 응, 그랬어. 엄마라는 역할을 잘 해내고 싶었거든. 자신 있었어. 나라는 사람이 엄마인 게 자랑스럽게 여기게 할 정도로 정말 좋은 엄마가 될 거라고 생각했지. 근데 그게 말이야. 아이를 가진다는 게 결혼만 하면 당연히 생기는 줄 알았지. 주변에선 다 그랬거든. 결혼하고 일 년 내에 일사천리였어. 어쩜 그렇게도 정확한지. 그게 정석이었어. 하지만 내겐 그렇지 않더라. 살면서 뭐 하나 그냥 되는 게 없었는데 그거라고 쉬울 줄 알았던 게 내 오산이었지. 맞아, 무척 힘들었어. 내게, 내 배에도 아이라는 생명체가 들어설 날이 올지, 병원 집 좌절, 병원 집 우울... 암담한 시절이었어.
리시는 얼른 할머니를 만나 선물을 주고 싶었어요.
“같이 여행 갈래?”
남편이 출장을 같이 가자고 했어. 스위스야. 기분이나 전환하러 가자. 대신 내가 일하는 시간에는 당신 혼자 여행을 다녀야 해. 그래, 내 여비만 있으면 되니까 가보자 했어. 한 번도 혼자서 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던 난 촘촘히 계획을 세웠지. 남편이 돌아오는 오후 6시까지, 하루하루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넘나드는 그곳으로.
아직 잊지 못해. 어찌 잊을 수 있겠어. 달력에서나 볼법한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스위스를 말이지. 클로드 모네의 ‘양산을 든 여인’에서처럼 살랑살랑 흔들리는 초원에서의 양귀비꽃을, 다니는 곳곳에서 항상 반짝이던 레만 호수를, 그 앞에서 힘차게 열창하는 몽트뢰의 프레디 머큐리를, 솔솔 바람을 맞으며 먹던 젤라토 아이스크림을, 베른의 조각상을, 가장 만만했던 맥도널드를, 도시마다 데려다준 기차 SBB를, 그린델발트의 눈호강을, 융프라우에서의 컵라면을, 자도 자도 끝이 보이지 않던 이탈리아의 긴 터널을, 유럽 첫 성당 밀라노 두오모의 압도할 만한 웅장함을, 아무 데서나 사 먹어도 인생 크루아상을 맛봐 유럽은 역시 빵이구나 했던, 그 흔한 퐁뒤는 못 먹었지만 대신 하몽에 눈을 뜨게 한, 어색한 셀카 독사진들을, 어찌 잊겠어.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지.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임신이래. 너희들이 내 안에 있대. 그것도 그렇게 원하던 남매 쌍둥이로 말이지. 그래, 난 300점이야. 안정적인 임신 수치라는 병원 전화를 받고 나와 너희 아빠는 부둥켜안고 울었단다. 그랬어, 그날. 우린 2002년 월드컵 때보다도 더 환호했어.
"할머니, 생일 축하해."
지금도 중요한 일들은 일기장에 다 써 놓지. 늘 기억하려고.
리시 할머니의 일기에서처럼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너희들도 이 글을 보게 될까. 일기는 아니지만 언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어. 휘발되는 순간의 기억들을 글로 붙잡고 싶었거든. 먼 훗날 문득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해지면 곳곳에 뿌려져 있는 글을 찾아보렴. 놀라진 마. 낯설 거야. 거기서는 너희는 모를 다른 세계의 엄마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그 글들을 너희가 발견할 때쯤 우리는 좀 다정해져 있을까.
그냥 말해주고 싶었어. 너희들은 300점짜리 아이들이라고. 시작은 그랬는데 과정은 어땠을까? 그래, 인정해. 판단은 너희 몫이겠지만 그리 훌륭하진 않았지. 최고의 엄마가 될 거라고 했던 말, 아이를 좋아한다는 말, 세상모르고 하던 소리였어.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이 엄마라는 걸 그때는 몰랐던 거지. 겪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들이 인생에서는 정말 많아. 엄마라는 환상에 난 정말 완벽하게 속았어. 진실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래도 난 똑같은 선택을 했겠지. 나라는 사람은 남들이 해보는 건 다 해봐야 직성이 풀리니까. 안 하고 궁금해하기보다 해보고 후회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너희들의 세계로 뛰어들었던 거야.
리사는 꽃과 선물을 할머니에게 내밀었어요.
난 지금 책방에 있어. 오늘이라는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있고. 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컸던 도전의 시간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여기서 너희를 생각하며 글을 쓴다. 너희들은 스위스 바람을 품고 내게 왔어. 너희 몸속 어딘가에는 그 따스한 공기가 자리 잡고 있는 게 분명하단다. 언제쯤이면 같이 스위스를 갈 수 있을까. 그곳을 보여주고 싶어. 가게 되면 누군가를 무척이나 기다리던 한 여자를 찾아줄래? 열렬히 너희들을 원했던 젊었던 엄마가 거기 있었단다. 기억해 줘, 부디!
목련이 지고 있어. 벚꽃이 만개했고. 이 계절을 너희들도 지금 어디에선가 느끼고 있을까? 오늘만이 볼 수 있는 그것들을 충분히 눈에 담아두거라. 오늘 너희에게 하고 싶은 말은 그뿐이야. 그거 아니? 언제나 너희들은 내 글의 주인공이라는 걸. 또 편지 쓸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