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물섬 + 협상의 기술
요즘 드라마의 한 회 한 회 과정보다는 마지막 회를 위해 보는 것만 같다.
알았어. 내가 견뎌주지. 주인공의 시련을 꾹꾹 감내하며 (종종 감내하지 않고 스킵할 때도 꽤 된다) 최종회까지 가보겠어. 근데 조건 하나가 있어. 끝에선 정말 후련하게 결론을 내야 해. 정말 그래야 해. 그래야 몇 주 간의 내 시간이 아깝지가 않거든. 끝까지 보길 잘했어, 꼭 이런 마음이 들게 해야 해.
주말에 두 드라마가 종영됐다.
(아래부터 스포일러 있음)
하나는 착한 청년이 나빠진 청년에게 죽임을 당하고 회장은 정신을 놓고 결국 그들에게 꼭두각시가 되고 빌런은 재판을 받으러 갔지만 잠시 비열한 웃음을 지어 보이니 거기가 끝이 아님을 비웃어주고 주인공은 자살일지 낚시일지 모를 총을 든 뒷모습을 보이며 끝났다.
또 하나는 남의 노트북 열기가 이렇게 쉬운가 싶게 억울한 누명을 벗고 이제 좀 제대로 일을 해보나 했는데 쫓겨난 빌런이 다시 갑이 되어 돌아와 진상을 부리네. 아, 왜 사기꾼을 퇴사만 시켜 이런 사달을 만드는 거야. 뭐 다음 시즌 밑밥이라고? 아니면 열린 결말이라고?
하아. 다음까지 기다리기 싫어. 염치없는 사람들을 드라마에서까지 응징하지 못하다니!
가끔은 보지 않던 드라마의 최종회를 발견할라치면 상황이 되면 보려고 한다. 보지도 않았던 걸 뭐 하러 그러냐고 이해 못 하겠다는 둥 남편은 채널 선택에 불만이 많지만 그게 무엇이었든 끝이 궁금하다. 그 끝이라는 게 결국은 뻔한 해피엔딩임을 알기에 그런 거다. 그냥 무작정 해피한 걸 보고 싶은 거다. 고통을 겪던 주인공이 끝내 행복해지는 걸 말이다. 그렇게라도 믿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착한 사람은, 고생한 사람은 기어이 행복해질 거라고.
그래서 그런가. 자꾸 어긋나는 설정이 싫어 변우석의 드라마도 마지막 회만 훌쩍 건너 띄어 보고 박보검이 좋아 보고 싶은 데도 5화 이후로 폭삭도 진도가 나아가지 않는다. 역사가 스포일러라 시작 5분 만에 고구마가 되어 결국 포기한 서울의봄처럼 난 그렇게 시작부터 감정의 널을 띄며 종종 드라마를 점프하거나 외면하기도 한다.
끝났는데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은 이 찝찝함.
그리고 이 답답함은 비단 드라마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