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해내는 모습을 지켜볼 때의 흐뭇함이란!
인간은 빼고 우리끼리 얘기하자는 두 AI 이야기를 듣고 섬뜩했지만 집안일엔 적극 그들의 도움을 받고 있는 사람으로서 오늘 아침은 참 기뻤다.
2주 전 갑자기 1미터 반경을 벗어나지 못하고 제자리만 맴돌던 로봇 물걸레 청소기에 좌절했었다. 얘가 왜 이래? 말을 가장 잘 듣던 내 막내아들이었는데.
수리를 보내야 하나, 오늘 한 번만 더 테스트 삼아 돌려보자 했더니 웬걸 집안 구석구석 쓱싹쓱싹 힘차게 달리고 있다. 요 녀석이 그간 사춘기였나. 돌아와서 반갑다, 내 막내아들!
남편은 동물농장을 보며 한 편의 스펙터클 영화를 본 듯 감격한다. 새끼 부엉이의 독립을 멀리서 지켜보는 어미를 보며 사람이나 동물이나 똑같다고 남편은 말한다. 우리가 그렇게 인내심 있게 아이들을 기다려주고 있기나 한 걸까. 당신은 그래?
고장 난 로봇청소기,
모든 것이 처음인 수리부엉이,
날 수 없는 비둘기,
기어이 그들은 비상했다.
이불을 개고,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화분에 물을 주고,
선풍기를 닦고,
자기 자리에서 끝내 해내는 그 모든 것들이 아름답다.
오후엔 5월이 해낸 만발한 꽃들을 보러 가야지.
그들을 경배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