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된 책을 보며
가끔 저작권이 만료된 그림이 있는 웹 사이트를 구경한다.
명화뿐 아니라 광고 일러스트 등 종류가 다양해 보는 재미가 있다.
오늘은 이 그림 하나가 눈에 띄었다.
책을 읽고 있는 여자.
오래전부터 그랬다.
책을 읽고 있는 여자 그림에 이상하게 관심이 갔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지금 어떤 책을 읽고 있는 걸까.
그림 속 주인공이 갑자기 살아있는 인물이 되면서 궁금해진다.
주변마저 모두 고요하게 만드는 여자의 책 읽는 모습은 항상 나를 매료시킨다.
근데 이 그림은 그림책 중 한 페이지였다.
작가 이름이 낯설지 않다.
케이트 그리너웨이.
1956년 영국 도서관 협회는 매년 뛰어난 삽화가 들어간 아동도서에 주는 상에 그녀의 이름을 붙여 〈케이트 그리너웨이 상〉을 제정하였다.
맞다. 그녀였다.
번역본을 보니 그림 속 주인공은 공주님이었고,
반전은 책을 보다가 졸고 있는 중이었다.
왕자님이 오고 있어 공주님은 이제 곧 눈을 뜰 태세다.
살포시 눈을 내리깔고 책을 보는 줄만 알았는데...
그런데 생각해 보니 무척 맞는 그림이긴 하다. 누군가를 기다리기에, 혹은 잠을 청하기에 책만 한 것이 없으니.
이 책은 아이들을 위한 시집 정도 되겠는데 그림만 보더라도 빅토리아 시대 낭만이 폭발한다.
"그녀는 요즘 어때?"
"책만 읽고 있어."
책만 읽고 있다는 그 말 안에는 책이 무슨 소용이냐는 현실은 외면한 채 한량처럼 시간을 그리 보내고 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근데 나는 좀 알 것 같다.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을 것 같으니까.
그거라도 하고 있어서 그나마 숨을 쉬는 거라고.
살기 위해
누구는 정원을 가꾸고
누구는 야구를 보고
누구는 기도를 하고
누구는 여행을 가고
누구는 티비를 보고
또 누구는 책을 읽는다.
책만 본다고,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지 말자.
누군가에게는 일종의 생존방식이다.
책을 보니 그나마 사는 것이다.
거기서 스스로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책을 읽는 여자는 위험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