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보다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나기
러닝이 취미가 된지 일년 남짓.
발리 한달살기 중에도 예외일 순 없다.
이번 발리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고 한달‘살기’이기 때문에 최대한 기존의 일상을 유지하고 싶었고, 여행 예능에서 많이 나오는(특히 기안84가) 여행지에서 러닝하기가 꽤나 멋져보였다.
그래서, 발리에 가면 집에서처럼 아침 러닝을 하기로 했다.
꼭 '아침'러닝이어야 했을까? 그렇다. 이유는 몇가지가 있었는데, 1번은 명목상 '워케이션' 이었기 때문에 전체 일정 중 3분의 1은 업무 시간에 맞춰서 일을 해야했다. 발리 시간으로는 8시부터 5시. 오후 5시 이후엔 저녁도 먹고 술도 한잔해야하고 나들이도 해야하니 아침밖에 시간이 없었다. 2번은 해가진 저녁이 아닌 낮엔 너무 덥다. 햇빛 아래는 정말 덥다. 발리까지 와서 일사병에 걸릴 순 없으니 아침말고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보통 40분 정도는 뛰어야하는데 뛰러가는길까지 고려하면 1시간 정도가 걸린다. 거기에 졸린 눈을 비비고 잠옷을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선크림을 바르고, 간단하게라도 스트레칭을 하려면 20분 정도는 필요하다. 8시에 자리에 앉아 업무를 시작하려면 6시 40분에는 일어나야 한다.
아침형 인간과는 거리가 먼 나한테는 정말 곤욕이었는데 그럼에도 30일 중 절반은 아침에 일어나서 러닝을 했다. 하루이틀 정도는 오후에 나가서 뛰었다. 3일 뛰면 하루는 쉬는 것이 계획이었고, 5일은 아팠으니.. 아픈 와중에도 하루는 그래도 뛰었으니… 이정도면 스스로가 대견할 정도.
뛰기로 했으니 뛰어야 한다. 일어나야만 한다.
여행까지 가서 굳이 러닝을? 여행 가면 러닝하러 나온 외국인들, 정확히는 서양인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지난 여행들에서는 그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루틴이 뭐기에.. 한달살기가 아니었으면 나도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거다. 그런데, 하고 보니 나중에 짧은 여행에서도 하루쯤은 러닝을 하는 것도 좋겠단 생각을 했다. 해변이 있다면 더더욱.
달리기와 걷기는 생각보다 같은 시간에 갈 수 있는 거리 차이가 많이 난다. 달리면 더 멀리까지 갈 수 있고, 더 많은 곳을 볼 수 있다. 발리에서 첫 러닝은 꾸따였는데, 생각없이 뛰고 나서 아이폰 운동앱에서 달린 구간을 보고 깜짝 놀랐다. 40분 정도 뛰었는데 꾸따해변에서 스미냑까지 왕복을 했다. 걸어가면한시간 반 이상. 길리트리왕안 섬에서는 40분이면 길리 섬 한바퀴를 돌 수 있다.
7시부터 8시 사이, 아주 이른 아침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후에 비하면 길에도 해변에도 사람이 많지 않다. 사누르 해변은 투어 출발하는 사람들로 꽤나 많지만. 관광객들이 아직은 숙소에 머물고 있는 조금은 덜 혼잡한 그 시간에, 다른 때보다 여유롭게 풍경들을 볼 수 있다-물론 뛰느라 시뻘개진 내 얼굴도 숨길 수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때 이 순간들이 꽤나 기억에 남는다. 숨은 헐떡거리지만 해변은 한가롭고 거리엔 나와 마주보면 뛰는 사람들 뿐이다. 내 심장은 여유가 없지만 내 기분과 머리는 여유가 가득한 느낌.. 나도 처음 느껴보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러닝 후에 먹는 아침 조식, 꿀맛이다.
단연코 길리. 두번 생각할 것도 없이 무조건 길리. 우선은 섬에 차도 오토바이도 없으니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이 없다. 게다가 달리기로 섬 한바퀴를 완주 할 수 있어서 러닝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섬 둘레가 애플 운동 앱 기준 7키로 정도된다.
풍경은 말할 것도 없다. 꾸따와 사누르도 해변 러닝이었고 우붓도 논밭뷰 나름의 정취가 있었지만, 길리가 좋았던 것 섬 한바퀴를 돌면서 동서남북 다른 색깔의 해변을 만날 수 있고 달리는 내내 탁 트여 있는 기분이 좋다. 시간대를 잘 맞추면 해도 잘 피해갈 수 있다.
그런데, 내 발리 최고의 러닝은 예상외로 우붓이었다. 우붓은 해변도 없고 러닝하기가 유독 까다로운 도시였다. 트래킹할만한 곳은 좀 있는데 나는 훈련하러 온게 아니라 오르막길을 뛸순 없었다. 그래서 포기하고 트래킹하기 좋은 짬뿌한 릿지 워크를 걷기로 했는데, 트래킹로드를 좀 올라가자 뛸만큼 완만한 경사가 나왔다.
냅따 뛰어버렸다. 이쯤이면 뛸 수 있겠다 싶었다. 우붓에서도 한번은 뛰고 싶다는 욕심도 컸다. 그렇게 십분 정도 뛰고 나니 트래킹 로드가 끝났고, 거기에서 마주한 마을이 너무 이뻤다. 햇살 아래 논밭뷰가 평화로워보였고, 아기자기한 집들이 귀여웠다. 역시 우연한 기쁨이 가장 만족도가 높다는 단순한 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