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운
FRAME은 헤이그라운드에서 운영하는 콘텐츠 브랜드입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특유한 시선들'을 담습니다.
인공지능이 쓰지 못하는 글은 어떤 글일까? 몇 년 전부터 오랜 시간 고민을 하게 만든 이 질문의 답을 찾고 있습니다. 아마, 정답은 없을 것이고 만약 있다 하더라도, 인공지능이 쓰지 못하는 글은 ‘없다’ 일 확률이 99.99% 이상 되겠지요.
얼마 전, 정답을 찾았다고 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선언하듯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투자자들의 자본에 의해 개선이 될 것이고, 그렇다면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지 않을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리 뛰어난 인공지능이라 하더라도 (의도적으로) 글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제 나름의 예상을 전했죠. 역시나 많은 반박을 받았습니다. 개발자와 과학자들을 무시한 발언이라는 비난도 있었고 인공지능의 머신 러닝을 고려하지 않은 답이라고 혼이 나기도 했습니다. 문득, 왜 나는 인공지능의 잠재력에 대해 집착하고 있는가 궁금해졌습니다.
안녕하세요. 글 쓰는 김태운입니다.
제 자신을 소개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도 저를 표현할 수 있지만 간결하고 정확하게 알릴 수 있어 이 말을 선호합니다. 본질에 가까운 말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인공지능이 쓸 수 없는 글에 대한 궁금증은 사실 나는 이 사람과 어떻게 다른가, 이 사람과 저 사람은 또 어떻게 다른가에서 시작되었다고 추측됩니다. 아기들이 나와 내 밖의 세계를 깨닫는 것으로 인지를 시작하듯이 말이죠. 나는 도대체 저이와 어떻게 다른 거지? 고민이 고민을 낳을 때쯤 아마도 글쓰기를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매일 한 편의 시를 쓰고 있습니다.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인간이 너무 많은 나무를 죽이고 있는 게 아닐까, 내 시는 나무에 새겨질 가치가 있을까, 머뭇거리다가 이천오백 편 넘게 쓰는 동안 시집 한 권 갖지 못한 시인이 되었습니다.
인공지능이 쓰지 못하는 글을 써보려다가 창작물로서의 글이 아니라, 쓴다는 행위 자체에 더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쓴다는 것은 나를 천천히 들여다보고, 밖을 통통 두드려 보는 일입니다. 글을 쓸 때 머릿속에 부옇게 일어나는 미세먼지 같은 공기를 인공지능은 어쩌면 모를지도 모릅니다.
<lego>
도심의 길거리
노란 발판을 따라 걷는다
덜컥거려 잘 꿰맞지 않는
낯선 박음질
발바닥은 작은 볼록이 데면데면하다
도저히 이래서는 중력을 삐끗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 작고 노란 길이 내는
직선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해 낙제한다
손끝을 더듬어
우주와 심해와 뇌라는 말을
알아차리는 사람도 있는데
내겐 lego처럼 세상의 볼록들과 들어맞는
옴폭이 없다
언제나 평발의 민짜가 명함이다
어찌어찌해보아도
lego 할 수 없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설치된 길거리의 노랗고 볼록한 발판을 밟아본 적 있으시죠? 저처럼 따라 걸어보신 분들도 제법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어느 날, 노란 발판이 레고 블록으로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저 발판에 꼭 들어맞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고민을 하다가 lego라는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비장애인이어서 자유롭게 활동했지만 레고가 규칙인 세상에서는 다만 낙제점을 받는 평발의 사람일 따름이죠.
한 번은 미국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하고 있는 친구에게 갑작스러운 보이스톡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굉장히 다급한 목소리로 큰일이 났다며 시 한 편 써줄 것을 부탁하더군요. 중국의 한 박사가 약속을 저버리고 유전자 조작 복제 인간을 만들어 냈다며 어떻게 이런 굉장한 사건을 시로 쓰지 않을 수 있느냐 물었습니다. 당황스러웠지만 친구의 말에 이런저런 자료와 유튜브를 찾아보니 사실 해당 박사에 대한 것보다, 태어났다고 여겨지는 두 쌍둥이 여아에 대한 걱정이 앞섰습니다. 장난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보다 더 큰일 같더군요.
<루, 나.>
일이었어서 전쟁을 일으킨 사람도 있다
대체로 그런 자는 전쟁 때문에 죽지 않는다
전쟁으로 그가 죽는다면 과로사로 봐야 할까
일이었어서 사람을 죽인 사람도 있다
누구는 일로서 사람을 만들었다
쌍둥이 아기 루루와 나나
유리를 관통하는 빛의 나사로 태어난 아이들
아직 싫다는 말을 못 배웠다는 이유로
과거에 살게 된 새빨간 아이들
아직 루루와 나나를 구분 지어 생각할
지혜 없는 인류에게 너무 일찍 온 신인류
세 줄을 쓰고 네 줄을 잊어버리는 인간의 별에서
이제 곧 너희를 발명한 그는 잊힐 것이다
너희는 잊힌 삶을 살아가야 한다,
너희는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한다,
너희는 사랑과
사람의 긴 통로를 살아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나 같은 자를
걷어찰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의 일로서 온 이 세상이더라도
루루, 나나 너희의 모든 일을 축하한다
너희는 아무 잘못이 없다
누군가의 희망이 되지 말고
스스로 절망을 껐다 켤 수 있는, 사람이길
※ 2018년 11월 27일부터 열린, '인간 유전체 교정에 관한 국제 정상 회의' 전야제에서 중국의 허젠쿠이 박사가, HIV 수용체로 알려진 CCR5의 유전자를 조작한 쌍둥이 여아가 이미 출산되었다고 발언하였다.
저는 글을 씁니다. 앞으로도 인공지능이 쓰지 못하는 글을 궁금해하고 그런 글을 써보려 노력하겠지만, 다만 인공지능이 이런 제 마음을 끝내 모를 거라는 사실이 참 아쉽습니다.
Writer 김태운 - 매일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