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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 있는 Nov 02. 2020

아빠와 대화의 거리

인터넷 신문에 올린 기사가 상을 받았다. 상 자체가 주는 격려가 얼마나 크던지 순간 등단이라도 한 거처럼 기뻤다.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엄마는 부재중 전화로 넘어갔고, 아빠랑 통화가 되자마자 난 아이처럼 말했다. 아빠, 나 상 받았어! 불혹의 나이를 앞둔 딸이 일곱 살 아이로 돌아가 말했다. 통화 너머 시냇물처럼 흐르는 아빠의 경쾌한 웃음소리가 듣고 싶었다.


축하한다는 말이 끝나자마자 금액을 물으셨다. 금액은 많지 않아. 그냥 의미가 있는 거야. 나의 기쁨을 설득하는 목소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때 쏟아낼 누군가를 기다렸다는 듯이 시작된 아빠의 하소연. 코로나로 요즘 장사가 안돼도 너무 안된다는 내용. 돈에 관련하여 파생된 현실과 여러 인물이 등장했다. 속타는 아빠의 마음을 알면서도 아빠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가족의 이야기. 나의 얼굴은 기쁨도 잠시 점점 굳어지고 심각해졌다. 내용이 심해서가 아니다. 아빠의 변하지 않은 레퍼토리는 그날도 계속된다는 사실이었다. 단지 축하를 받고 싶었던 들뜬 마음이었는데 아빠의 목소리에 마음이 가라앉았다.


아빠에게 작년은 터닝포인트 같은 시간이었다. 50년 넘게 일하신 가게가 재개발 지역이 되어 문을 닫으셨다. 아빠에게는 젊음이, 인생이 담긴 가게였다. 일밖에 모르던 아빠가 직장이 없어진다는 건 아빠에게 인생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과 같았다. 아빠는 다행히 가업을 이어받은 오빠의 가게 안쪽 구석에 사무실을 차리고 매일 출근하셨다. 딱히 일이 있는 건 아니었다. 텔레비전을 볼지언정 사무실로 가셨다. 이제 좀 여유가 생기시겠다 싶을 무렵 위내시경 건강검진을 받으시다가 우연히 후두암이 초기에 발견되었다. 시술을 받으시고 오래도록 달고 살던 담배와 술을 끊으셨다. 얼마 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빠가 애착을 가진 의미들이 하나둘 소멸되었다. 인생의 내리막길 같은 시간처럼 보였다.


7남매 중 맏이인 아빠는 장남, 가게에서는 사장, 집에서는 아버지로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분이셨다. 어린 시절 네까짓 게 나랑 대화할 수 있냐는 술 취한 아빠의 말은 드라마에서 도깨비가 칼을 가슴에 꽂혀 사는 것처럼 나에게 비수 같이 꽂힌 말이었다. 나를 막내딸이 아닌 하급 사원쯤으로 보는 아빠의 말은 충격이었다. 그런 아빠가 나도 모르게 뒷방 늙은이,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느껴졌다.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거처럼 목소리가 우렁찬 아빠가 힘이 빠졌다. 여러 가지 세상 풍파를 겪고 계시는지 아빠의 눈빛에서 공허함이 느껴졌다. 걸음이 빨랐던 아빠는 세월의 속도를 멈출 수 없다는 듯이 무작정 걸으셨다. 하루에 6, 7km를 두세 시간씩 시도 때도 없이 걷다가 다시 돌아서 집으로 돌아오셨다. 다리가 무겁고 힘이 풀려 변환점에서 돌아오는 아빠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아빠는 근래에 우울하다는 표현을 하셨다. 주변에서 여성 호르몬인가 뭔가가 나오는 거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마음이 울적하다고 했다. 그 상황에서라면 누구라도 힘들었을 것이다. 아빠를 모시고 여행도 갔지만 아빠는 여행보다 할 일 없는 사무실을 더 좋아하셨다. 나와는 성향이 다른 아빠를 머리로 이해하려 들면서도 마음으로 아빠와 와 닿았던 거리가 없었기 때문에 어려웠다. 이제라도 아빠와 딸의 관계에서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었을 뿐인데 어느새 아빠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보살펴야 할 대상이 되어 있었다.


아빠는 할아버지와 대화하는 법을 모르셨다고 했다. 아빠는 딸과 대화하는 법을 모르셨다. 나 역시 아빠와 대화하는 법을 몰랐다. 평소 아빠는 화가 난 사람 같았다. 일방적인 잔소리가 대화의 흐름이었다. 평범한 대화를 하고 싶었는데 대드는 거라고 말조차 못 꺼내게 하셨다. 아빠는 기억조차 못 하실 게다. 아빠가 그런 걸 기억할 여유도 없으셨으니까. 근면 성실함 뒷면에는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온 아빠가 지금도 쫓기고 계셨다.


통화에서 아빠는 스트레스 섞인 짜증을 너에게 푸는 것이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어디 할 데가 없다고 하셨다. 네까짓 게 나랑 대화할 수 있냐고 취급받았던 딸이 아빠의 속내를 들어주는 대상이 되는 게 진급이라도 한 거 같았지만 마음이 아렸다. 아빠에게 벌어진 틈을 비집고 들어가려는 나에게 아빠의 탄식을 받아내기 버거웠다. 그냥 딸을 축하하는 마음이 전부일 수 없나요? 속으로 물었다. 돈을 힘들게 버는 아빠가 중심적으로 돌아가는 가정의 구조 안에서 그런 생각조차 감히 어려운 것이어서 잠잠히 듣고 있었다. 나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아빠, 항상 힘드셨잖아요. 언제 안 힘든 적 있었어요?
가게 장사가 안 된다고,
이렇게 힘든 적 없었다고 항상 그러셨어요.
아빤 늘 힘들었고, 늘 견뎌오셨잖아요.
아빠가 걱정한다고 달라져요?

화가 잔뜩 난 아빠에게 기름을 퍼부었다. 아빠에게 위로가 필요한지 알면서도 서운한 마음이 새어나갔다. 아빠는 정한 딸에게 말문이 막혔는지 가게를 봐야 한다고 전화를 끊자고 하셨다. 마지막에 마음이 닫힌 딸이 밟히셨나보다. 상 받은 거 축하한다고, 너에게 힘든 걸 풀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아빠, 저는 괜찮아요.
  

나는 자동응답기처럼 대답했다. 서둘러 우리는 전화를 끊었다. 사실 전혀 괜찮지가 않았다. 아빠도 마음이 안 좋으셨을 거다. 아빠는 왜 항상 힘이 들까.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걸 알지만 왜 가만히 들어주지 못했을까. 스팀이 꽉 찬 아빠에게 왜 양보하지 못했을까. 아빠에게 따뜻한 곁을 받지 못한 나는 지금이라도 딸의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건 대화였을까. 아니면 대든 거였을까. 세월에 꺾이는 아빠를 보며 어쩌자고 하고 싶은 말을 해버린 걸까. 그런데 왜 후련하지가 않을까.


얼룩진 기쁨이 남았다. 상을 타기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나의 위치가 보였다. 아빠와의 거리감이 더 멀게 느껴졌다. 무심히 흘러간 세월 속에 아빠와 딸의 변변치 않은 대화를 배우지 못한 게 야속하지만 어디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어떻게 하는 게 아빠와 딸의 관계가 행복해지는 것일까. 내일 다시 용기 내서 연락드려볼까. 수많은 의문과 슬픔에 부서지고, 다듬어지고, 또 무너지면서 그동안 닿았지 못했던 거리에 나아갈 용기. 그렇게 아빠에게 다가서기를 서성인다.




그림작가: 미세스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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