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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 있는 Dec 25. 2020

조용하고 요란한 크리스맛[쓰]


눈 떠보니 크리스마스. 코로나로 침체된 분위기에 집콕만 하다 보니 날짜 가는지 몰랐다. 이례적으로 아이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다. 감사하게도 교회에서 수료 선물을 보내주었다. 또 달란트 선물로 편의점 이용권 만원을 보내주셔서 즉석으로 장난감을 샀다. 도서관에서 둘째 아이 초등 입학 선물로 그림책 두 권과 연필 세트를 에코백에 넣어주었다. 동네 언니는 내가 무심코 맛있다고 말했던 허브티를 직구로 주문해서 손에 쥐어주고 홀연히 사라졌다.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에서 남편은 자신의 금시계를 팔아 아내를 위한 빗을 사고, 아내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남편의 시곗줄을 샀다는데 나는 작년에 반품하지 못한 오버사이즈 잠바를 남편에게 넘겨주었다. 나는 마음에 드는 새 잠바를 샀다. 아, 따뜻한 크리스마스!


축제 같은 크리스마스를 별다른 준비 없이 맞았는데 소소한 기쁨과 즐거움이 날아들었다. 그런데 주위에서는 굉장한 소식이 대포처럼 들려왔다. 사촌이 상을 탔다. 브런치 대상. 난 브런치 북으로도 묶어내지 못했는데 그 녀석은 브런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상을 탔다. 고모에게 그 녀석이 브런치 한다는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되자마자 상을 탔다는 소식은 정말이지 대단했다. 3600대 1. 그 어려운 걸 네가 해냈구나! 말로만 듣던 작가가 너로구나!! 진심 축하하는 마음과 다르게 난 귤을 상한 걸 먹어서 그런지 배탈이 났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더니 외출했다가 배가 살살 아파서 화장실을 뛰어다녔다. 옛날 어르신 말씀이 틀린 게 하나도 없다고 우리는 전화로 웃었다.


잠깐 그 녀석의 이야기를 보태자면 특이한 행보를 보이긴 했다. 너는 기억하느냐. 진로에 대한 고민이 가득할 때 내가 일하던 회사로 찾아온 까만 밤을. 군인이 국문과를 꿈꾸던 아름다운 밤을. 미래까지 안정적인 직장을 뛰쳐나와 일 년간 해외여행을 떠났더랬다. 덜컥 책을 내더니 귀농을 선포했다. 아무리 귀농이 유행이라고 하지만 아무 연고지 없이 홀로 떠난다는 게 얼마나 과감한 선택인가. 흙을 만지며 살겠다는 그 녀석은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고 책임지는 으른 같았다.


그 녀석에게 여러모로 배울 게 많았다. 처음 노프족(샴푸로 머리를 감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몇 번 시도 끝에 머리가 떡져서 포기했다. 텀블러는 기본, 할머니 장례식장에 일회용 나무젓가락 대용으로 스텐 수저통을 가방에서 꺼내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좀 전에 조문을 다녀왔지만 식사를 안 하면 안 했지 나는 집에서 쓰는 수저와 젓가락을 챙길 자신이 없었다. 어쨌거나 자신의 경험과 주제의식을 가지고 멋진 작품을 만들어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역시 출판사는 ‘보석을 알아보는군’ 감탄하는 동시에 깔깔 웃음이 터져 났다. 웃고 싶지는 않았는데 재미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그 밖에도 애지중지 꽃봉오리를 피워낸 가족들의 소식이 들려왔다. 형부가 미국 MBA에서 강의를 맡게 되었다는 기적 같은 소식.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삶은 경이로웠다. 고유한 영역에서 소리 없이 꽃을 피워내는 사람들. 남편도 먹던 사과에서 씨앗을 골라내 싹을 피우고 심지 않았던가. 대략 10년쯤 지나야 열매가 맺힌다는데 스피노자처럼 한 그루의 씨앗을 심는 남편도 대단해 보였다. 파랗게 돋아낸 작은 잎사귀처럼 앙증맞게 웃고 있는 남편이 얼마나 귀여우신지. 열매가 맺힐지 안 맺힐지 모르지만 남편은 그 자체로 행복해 보였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 말처럼 얼마나 많은 인내의 수고를 뿌려야 하는 것일까. 크든 작든 꽃을 피우는 삶은 결과보다 과정에 대한 찬사를 보내고 싶다. 모두가 꽃을 피우는 게 당연한  아니지만 자신만의 꽃이 숨어 있다. 크리스마스에 고등어구이에 김치찌개를 먹고 귤 까먹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피자와 치킨을 먹으며 아들에게 닭다리를 포기하는 순간도 기분 좋은 포만감이 들었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즐겁고, 언제 잠들었는지 모를 낮잠이 달았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 기쁨은 기쁨대로, 소망은 소망대로. 그저 행복한 크리스마스. 평범한 오늘이 감사한 건 크리스마스여서 그럴까. 지금 이대로 충만한 크리스마스의 맛.   



사과나무의 꿈




[트리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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