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01-221031 at 영광 31사단
어느샌가 계절의 흐름은 숫자에 가려버렸다
대학 새내기 시절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교양 수업을 들었다. 매 주 명저 한 권과 함께 행복이란 주제를 다루는 강의였다. 고작 2학기 밖에 학교를 다녀보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대학스럽고도 교양스러웠다고 생각하는 강의였다. 그곳에서 배웠던 한 주제가 떠오른다. 숫자는 특성을 지운다. 대상의 고유한 특징과 개성을 말살하여 그저 셈의 단위로 전락시켜버린다. 우리는 어느샌가 시간의 흐름을 숫자로 흐려놓았다. 군대에 속한 병의 입장에서 더 그러하게 되었다. 하루가 일주일 같고 한 달이 하루 같은 이 공간에서 '셈'이라는 행위는 하루를 견디는 버팀목이자 비관적 자기객관화의 원인이다.
우리의 계절의 흐름을 되찾자. 하루 일주일 한달의 개념도 좋지만, 그 시간을 오롯히 생각할 수 있는 표현을 되찾자. 지나왔던 시간은 다시 찾을 수 없다. 다시 오지 않는다. 다시 경험 할 수 없다. 그러기에 그 순간을 다양하게 기억하고자 해야한다. 그래야 추억으로 변모할 수 있다.
포상 올라가는 길에 어느덧 코스모스가 피었다.
오리온자리가 보이는 걸 보니 겨울이 오는가보다.
코 끝에 스치는 바람이 차다.
울타리 순찰 가는 길에 상수리 열매가 떨어져있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내게 밀려오라
확산. 전도. 복사. 대류.
확산 마냥 서서히 물드는 사람과
전도 마냥 훅 들이닥치는 사람.
나는 어떠한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군밤 맛밤
군밤. 이미 까놓은 군밤은 정성이다. 뜨거운 밤의 껍질을 한 손에 쥔 채, 자그마한 칼로 그것의 껍질의 벗겨내는 과정은 정성 없이 불가능한 것이다.
열여섯의 나이에 이국 땅에서 한 달 살이를 했던 적이 있다. 서민의 살림살이는 어느 곳이나 비슷한지, 그곳에도 군밤 장수가 있었다. 나는 수중에 2000원 남짓의 동전이 있었다. 군밤 장수가 호객 행위를 한다. 마치 우리들 동네의 "군밤 사세요" 마냥. 4000원에 가져가라며 나를 보며 외친다. 난 당당하게 말한다. "아이 돈 해브 머니! 온리 2000원!" 그러자 군밤 아저씨는 괜찮댄다.
마이 브로! 잇츠 오케이!
내 주머니의 동전을 깡그리 건네주자 군밤을 담아준다. 5000원치를 담아준다. 따뜻한 군밤을 나에게 건내며 "아이 라이크 코리아"란다. 내가 덤으로 받은 것은 군밤일까 정일까. 정이라는 감정은 한국인에게만 있는 줄 알았는데, 어쩌면 아닐 수도.
나에게 맛밤은 치열했던 순간의 한 줄기 격려. 자기비하가 심했던 시기에 먹었던 한 알의 칭찬. 가장 힘들었던 과목의 질문 세례에 답을 해주면 감사하다며 초콜릿 하나를 놓으면 맛밤 한 줄기를 내어줬던. 그래서 지금도 맛밤을 보고 있자면 그 당시의 고통과 격려가 동시에 느껴진다.
지금 갑자기 왜 맛밤이니 군밤이니 밤에 대한 글을 쓰냐면, 오늘 보급나온 부식에 맛밤이 있어서.
정말 어이없겠지만, 정말 하찮은 이유겠지만, 세상엔 없는 경우가 참으로 많단다.
그곳엔 내가 없었을까
야간 상황실 근무를 서고 있는 중이었다. 옆자리의 타 부대 상황 간부가 자기 소속의 병사들에게 영상을 보여주며 압사 사고가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했다. 3자리가 넘어가는 피해자 수에 상황실에 있던 모두는 진실인지 거짓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해가 뜨자마자 모든 TV 채널에선 속보로 그 소식을 알리기 시작했다.
내가 군대에 오지 않았다면 분명 그곳에 있었을테다.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상경해 서울의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밌던 나였다. 코스프레나 멋들어진 패션은 못 갖추더라도, 이태원 구경이나 해보고 싶다며 서울 출신 친구를 따라 그곳으로 향했을 것이다.
놀러가서 뒤진 이들을 왜 국가가 나서서 추모를 강제하냐는 댓글이 있었다. 언제부터 할로윈이 한국의 축제였냐며 호들갑 떨다 죽은거라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댓글에선 피해자들은 어릴 적 부터 영어학원에서 할로윈 파티를 하고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축제를 즐기던 이들이다. 그들에게 할로윈은 남모를 나라의 축제가 아닌 어릴 적 부터 함께한 행사였다고 말했다.
무엇이 되었든 안타깝다. 놀러갔든 그냥 밥 먹으러 갔든. 흔히 볼 수 없는 숫자의 사람들이 하룻밤에 죽어나갔다. 살아있는 자들은 키보드로 옳고 그름을 논한다. 이런 상황에 쓰는 표현은 아니겠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우리도 필요한 말을 제외하고는 그저 조용히 위로해주는게 맞지 않을까.
그곳에 내가 있었을 생각에 더욱이 말이 튀어나오지 않는다.
제목을 빌려보았습니다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_잔나비
어느샌가 계절의 흐름은 숫자에 가려버렸다_윤하, 스물다섯 스물하나
잠겨 죽어도 좋으니 내게 밀려오라_BIBI, PA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