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셔 시안 검토로 시달린 터라 빨리 집에 가 쉽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분위기에 휩쓸려 술자리로 끌려갔다. 억지로 웃고 맞장구치다 보니 밤 11시. 집에 도착하자 새벽 1시 반이다.
왜 거절 못했을까...
생각해 보니 어제가 김 대리 프로젝트 마감일이다. 상관없는 일로 저녁을 날린 것 같아 언짢아진다.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켜니, 직장 때려치우고 세계 일주를 떠난 유튜버 알림이 떠 있다. 이번엔 케냐다. 바위에 앉아 갓 수확한 커피를 마시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자유가 느껴진다. 슬쩍 시선을 돌리자 싱크대 위로 설거지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다음날 아침, 토요일인데도 마음이 가볍지 않다. 동호회 모임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설렘으로 시작했지만, 또 하나의 의무가 된 지 오래다. “한 주 건너뛸까?” 고민하다 사람들 눈치가 보여 나갈 채비를 한다.
지금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이럴 때 우리는 외부로 눈을 돌린다. 요지경 속 같은 SNS 세계에서 시름을 잊거나, 요즘 뜬다는 여행지로 떠나보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서 있는 곳은 영상 속 그곳이 아니다. 캐리어를 끌고 돌아오는 길에 허탈해진다. 이런 시도는 잠깐의 위안을 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이때 필요한 게 두 번째 돌잡이다. 돌잔치에서 아이는 부모가 차려놓은 돌상 앞에서 무언가를 집는다. 하지만 이는 아이의 바람이나 앞으로 펼쳐질 삶과는 무관하다. 그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는 몸짓에 불과하다. 다 커서도 여전히 돌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성인이 됐다고 다를까. 여전히 부모가 차려준 돌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벗어났다 하더라도 세상이 깔아 놓은 판 위에서 타인의 시선과 기준에 휘둘리다 보면 어느새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이때 나만의 돌상을 차려보는 건 어떨까? 막연한 상상은 안된다. 구체적인 것들을 놓고 골라보는 거다.
친구, 일, 건강, 돈, 자유, 연애, 정신(종교), 봉사, 자연, 사회, 가족, 취미, 교육, 여행, 반려동물, 성공적 이직
이때 기준은?
내 삶에 의미를 더해주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을 발견하고 나면 과감히 내려놓을 것들이 보인다. 나라는 사람도 더 선명해진다. 사회적 관계에서 주로 힘을 얻는지, 아니면 스스로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인지.
거창한 계획은 필요 없다. 어릴 때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는가? 그렇다면 침대에 누워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대신, 드로잉 도구부터 구입하자. 가족이 소중하다면 부모님과 함께하는 여행을 계획해 보는 것도 좋다.
작지만 분명한 선택과 실천이 나가야 할 방향과 좀 더 에너지를 쏟을 것들을 보여 줄 것이다. 그렇게 선택한 뒤 집중을 하다 보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끌려가는 일도 많이 줄어들 것이다. 무엇보다 삶이 더 단순하고 명료해질 것이다.
오늘 하루도 무의미하게 흘려보냈다고 느꼈다면, 삶의 의미를 더해줄 또 한 번의 선택을 해보라. 그 시도가 진짜 소중한 것을 잃고 나중에 뼈저리게 후회하는 일을 막아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