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 아랫목 쪽 벽으로는 난 작은 문을 열고 두서너 계단만 올라가면 또 하나의 세계가 열린다. 평소 깊은 잠에 빠져 있을 그 공간은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에 생명을 얻는다.
유년 시절 다락방 이야기다. 어른이 꾸부정하게 서야 할 정도 높이인 그곳은 우리 남매에게 비밀의 정원과도 같았다. 철 지난 옷가지나 이불, 고장 난 스탠드, 오래된 책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안쪽으로 더듬어 들어가다 보면 보자기에 싸인 기다란 물건 하나가 비스듬히 서있었다. 현이 풀린 가야금이다. 호기심에 몇 번 튕겨도 보았지만 별 재미를 못 느껴 그마저도 그만둔다. 이후로 가야금은 늘 우리 관심 밖에 있었다.
국민학교를 졸업할 무렵 우리는 다락방이 있던 집을 떠나 새집을 지어 이사했다. 황량한 벌판에 우뚝 선 이층 양옥으로 사람들은 뾰족집이라 불렀다. 시옷자 세 개가 겹쳐진 지붕 모양 때문이었을 것이다.
군 복무 중 그 위로 길이 났고,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하게 된다. 그 와중에 집 안 곳곳에 방치되어 있던 것들이 종적을 감췄다. 가야금도 그때 운명을 다한다. 쓸모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되던 것들이 몽땅 처분된 것이다.
전역 후 집으로 돌아왔을 때 늘 나를 반기던 파란색 대문이 안 보여 놀랐고 소중한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사라져 또 한 번 놀랐다. 어쩌면 할머니 기세가 꺾이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리라.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던 다락방 구석에 서있다 처분된 가야금은 할머니 소장품이었다. 그런데 그 악기가 연주되는 걸 본 건 딱 한 번, 대여섯 살 무렵이다.
통역 일 하시는 아버지를 둔 할머니는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다. 소학교를 나왔고, 일본어는 물론 짧은 영어까지 구사하는 신여성이었다. 두뇌 회전이 빠르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도 밝았다. 게다가 손까지 야무져 뭘 해도 군더더기가 없었다. 자기 관리는 또 얼마나 철저했던지 구순을 넘기고서도 그냥 외출하는 법이 없었다. 곱게 단장을 하고 핸드백을 챙긴 뒤 치맛자락을 휘감아 잡고서야 집을 나섰다.
감정 표현에 주저함이 없었고, 음식 만들어 대접하는 걸 즐겼다. 다리 네 개 달린 텔레비전 앞에서 요리 프로그램을 보며 수첩에 레시피를 기록하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그런가 하면 영어 단어를 곧잘 맞춰 수험생이던 사촌 형을 놀라게 하는가 하면, 대학생 누나들에게 고고춤을 전수하기도 하셨다. 이처럼 할머니는 무언가에 집착하거나 연연하기보다는 현재를 즐길 줄 아는 분이었다.
그런 할머니가 10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건 10여 년 전의 일이다. 싸늘히 식은 이마를 쓰다듬는 것을 끝으로 우리는 더 이상 할머니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조문객들은 하나같이 “호상이네요..." “큰 일 치르셨습니다."라며 며느리를 위로했고, 인사를 받는 어머니 표정은 무거워 보이지 않았다. 장례를 마친 뒤 친지들끼리 담소를 나누는 동안 내 마음속에서는 길고 길었던 전쟁의 종말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과수원집 8남매 중 둘째 딸로 자란 어머니는 여자라는 점을 빼고는 할머니와 닮은 구석이 한 군데도 없다. 대가족이던 외가 식구들은 끼니마다 두세 개 상에 둘러앉아 정신없이 식사를 해야만 했고, 농사일에 치인 부모는 세심하게 자식 챙길 여력이 없었다. 학교 안 가고 고구마 캐면 과자 사주겠다고 꼬드길 정도였다.
그런 처지에 자식 하나둘 사라져도 하루 이틀 눈치 못 채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 자식 아플 땐 눈 하나 꿈쩍 안 하다가도 송아지 기침 소리에는 새벽같이 나서 수의사를 대동하고 나타난 분이 외할아버지다.
어떤 처지에 놓이든 자식들은 저마다 생존전략을 새우는 법이다. 비단결 같은 심성의 큰 이모는 동생들 챙기고 살피는 것으로 인정받았고, 끼를 주체 못 한 셋째 이모는 유행가를 시들어지게 불러 존재감을 드러냈다. 막내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존재였고, 공부에 파고든 넷째 이모는 ‘수’로 수 놓인 통신표가 보증수표였다.
그런데 둘째 딸인 어머니 전략은 남달랐다. 고래 힘줄 같은 고집과 자존심이 무기였다. 원하는 게 있으면 얻어 낼 때까지 변소 앞에서 진을 쳤다고 한다. 그러다 해가 넘어가고 온 식구가 매달려 빌고 사정한 뒤에야 발을 떼었다고 한다.
운명의 장난도 이 정도면 한 소리 들어야 한다. 그토록 완고하고 자존심 센 농촌 처녀가 시대를 앞서도 너무도 앞서간 신여성을 만난 것이다.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두 문화가 융합했더라면 창조적인 것이라도 나왔겠지만 서로가 그러고 싶지 않았나 보다. 그렇다 보니 고부간 대립은 불 보듯 뻔했다.
시어머니가 요리 간 보며 미각에 집중할 때 며느리는 싱크대 문 닫는 소리 크다고 신경을 곤두세우는 식이었다. 전형적으로 손발 안 맞는 커플이었던 셈이다. 직장 같으면 누구라고 하나가 문을 박차고 나갔겠지만, 서로가 대체 불가한 식구들이 모인 가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