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이질적인 두 문화가 만나 섞이는 곳에서 우리는 자랐다. 커서야 깨달은 거지만 아무래도 우리는 어머니 영향을 더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까닭에 할머니에 관해 많은 부분을 곡해하고 있었고.
농촌 출신으로 그저 심은 걸 거둘 줄만 알던 며느리 눈에는 무엇이든 소용을 따져가며 움직이고 현재를 즐기는 시댁 문화가 맘에 들지 않았나 보다. 단점도 돌려보면 유익한 구석이 한 군데라도 있게 마련이지만, 부계(父系)로 흐르는 기질은 전부 자유분방한 양육의 결과가 되어버렸다. 자유롭고 낙천적이며 솔직한 성격은 참을성 없고 가벼운 것으로, 규모 있고 알뜰한 살림 솜씨는 야박하고 넉넉하지 못한 것으로 말이다. 그러다 곡절 끝에 며느리가 삼익쌀통 키를 쥐게 되면서 계산 빠른 시어머니는 한 발 물러났다. 그리고는 간섭을 멈췄다.
이후로 가풍은 르네상스에서 터프한 스토아풍으로 넘어갔다. 해학과 풍류 넘치는 삶은 모범 국민을 양성하는 데 반면교사가 되었고, 지금 있는 걸 탐닉하는 태도는 장래를 염두에 두지 않는 철없는 행동으로 배척당했다. 그 결과 나는 인기척 느낀 고양이 같은 신중함과 강철 같은 자기 통제력을 얻었고, 대신 나를 잃었다.
자라며 어머니에게 가장 많이들은 잔소리도 "참어!"였다. 신이 나도 참고, 싫어도 참아야 했다. 추어도 참고, 더워도 참아야 한다. 감정을 드러내는 건 미숙한 행동에다 주변을 불편하게 할 수 있으므로 절제해야 했다. 한마디로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분명히 달 것’이라는 교육철학이었다. 나스 미깡(귤)이 너무 시거나 쓰면 얼굴을 찡그리며 바로 뱉어버렸던 할머니의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할머니가 조청이나 참기름을 둘러 혀에 감기는 찬을 냈다면 어머니 밥상에는 숭덩숭덩 썰어 내고 재료에 굵은 고춧가루가 박힌 질박한 찬이 올랐다. 할머니로부터는 신기한 이야기와 진기한 먹을거리, 세심한 배려가 흘러나왔다면, 어머니로부터는 바람직하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예화와 교훈들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어머니도 당근이나 사과 조각이 박힌 빵이나 도넛을 만들어 주시기도 했지만 거기에 담긴 의미가 달랐다.
가신지 10년이 넘어가는 지금 할머니가 문득문득 떠오른다. 그때마다 우리는 옛 집 다락방 문을 열고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놓인 할머니 삶을 꺼내어 읽는다.
지인과 대화 중 있었던 일이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할머니께서 도회지에서 유학 중이던 손주 밥을 해주던 시절 이야기가 나왔다. 가끔씩 집에 오실 때마다 할머니는 비좁은 자취방과 문만 열면 덤벼드는 시멘트 벽이 답답하다고 푸념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던 지인은 한창때의 여자가 단칸방에 갇혀 얼마나 답답했겠냐며 할머니를 공감하는 것이었다. 아차 싶었다. 우리에게 그 이야기는 인내심의 중요성에 대한 예화였기 때문이다.
그제야 나는 할머니의 하소연이 성마른 성격 탓이 아닌 손주 돌보는 데 매인 여성이 품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돈이 생길 때마다 장에 들러 온갖 식재료를 사 와 맛있는 음식을 해 준신 것도 대책 없는 낭비벽이 아닌 손주를 기쁘게 하기 위한 마음이었다는 것도.
요즘 들어 우리 대화에 할머니가 자주 등장한다. 할머니 삶에 대한 재조명이랄까. 시간이 갈수록 떠난 이에 관한 유쾌한 일화가 자주 등장한다는 건 삶을 괜찮게 살았다는 방증일 거다.
대여섯 살 무렵이다.
찌는 듯한 더위의 어느 여름날, 전북 군산에 있는 한옥 대청마루에 한 꼬마가 앉아있다. 마루 위에는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꿀물과 카스텔라가 정갈하게 놓여 있다. 얼마 후 잠자리 날개 같은 저고리를 입은 여인이 가야금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청아한 목소리와 춤사위가 대문 밖으로 너울너울 퍼져간다.
새초롬히 앉아 있는 아이와 눈을 맞추며 가야금을 연주하던 여인의 얼굴에서 결코 잊히지 않을 시원한 미소가 피어난다. 그 미소는 돌아가신 할아버지 집 마당의 오래된 배나무에 핀 꽃이었다. 하얀 이화(梨花).
어쩌면 그 순간 마루 한쪽에 앉아 있던 며느리는 그리 편치 않은 심기(心氣)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오랜 세월이 흐름 지금, 빨간 고무 대야에 물을 가득 받아 끼얹으며 씻겨주시던 손길, 금테 안경을 코끝에 걸친 채 큰 글 성경을 읽으시던 모습, 무서운 이야기 해달라며 보채는 손주의 두피를 검지 끝으로 부드럽게 마사지하며 들려주시던 자장가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