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길 마음속 풍경

갈등 심리 구조에 관하여

by 장동혁

고교 83학번인 우리는 교복 자율화 1세대다.


1982년 1월 문교부는 중고등학생 두발 및 교복 자율화를 전격적 발표한다. 개성과 미적 품성 함양을 위한 조치라고 했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우리는 이유야 어쨌든 거리로 뛰쳐나와 환호했다. 억압과 획일화의 상징인 교복 안에 3년을 갇혀 지냈던 우리에게는 그만큼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더 이상 교문 앞에서 선도부 눈치를 보며 교복 칼라 호크를 채울 필요 가 없다는 사실이 쉽게 와닿지 않았다.


학교가 배정되고 입학식이 다가오자 우리는 고민에 빠졌다. 뉴스를 접할때만 해도 다들 마음만은 청춘스타가 되어 있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딱히 입을 옷과 신발이 보이지 않았다. 다림질을 해대 반들반들해진 검은색 교복을 입던 시절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욕구가 생긴 것이다.

대망의 새 시대.

입학식날 알록달록한 캐주얼을 챙겨 입고 무리 지어 다가교를 건너던 충격적인 장면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교문 앞에 이르자 다들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표정으로 곁눈질을 해댔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새하얗게 빛나는 테니스화를 신었다는 사실만으로 가슴 벅차오르던 시절이었다.




새 환경과 학우들이 익숙해질 무렵, 만나기만 했다 하면 말싸움을 벌이는 친구가 생겼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친구와 나는 성향 자체가 달랐다. 신을 믿고 문학과 클래식을 좋아하는 아날로그 감성파였던 나와 달리 그 친구는 무신론자에다 과학기술 예찬론자였고 효율성을 숭배하는 디지털 족속이었다. 그러다 보니 만나기만 하면 부딪칠 수밖에.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 과연 옳은 결정이었나’부터 논쟁 주제도 다양했다. 그 친구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많은 현상주의자였고, 나는 이상을 중시하는 본질주의자였다. 어지간한 논쟁 스킬은 그때 다 완성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그런데 논쟁 끝에 그 친구가 항상 덧붙이던 말이 있다. “너는 항상 끝에 가서는 종교로 귀결되더라!” 치열하게 갑론을박을 벌이다 보면 친구 입에서 신성 모독 발언까지 나오게 되는데, 그때마다 난색을 표하는 나에 대한 불만이었다.


돌이켜 보면 이미 그때 내 삶에는 종교에서 비롯된 신념이 자리하고 있었고, 친구는 그걸 느꼈던 것 같다. 둘 다 틈틈이 만화를 그렸는데 그 친구 스토리는 거침이 없었던 반면, 나는 신박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가도 종교적인 이유로 마음에 걸려 그리기를 포기하곤 했다.



수업을 마치고 두 번째 도시락을 까먹은 우리는 의식처럼 다가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뒤에 있을 야간 자율(?) 학습에 대한 보상심리 같은 거였다. 그런데 자율학습 때마다 그 친구가 하는 일이 있었다. 침침한 형광등 아래서 연습장에 뭔가를 잔뜩 그리곤 했다. 전자 멜로디 키트 회로도였다. 수고의 대가라고 해봐야 싸구려 알람 소리가 전부인 걸 만들어보겠다고 골몰하는 그 친구가, 맨 뒷자리에서 생 꼬막 까놓은 것 같은 빨간 눈을 비비며 졸고 있는 햄버거만큼 이해되지 않았다.


하루는 손바닥 크기만 한 키트를 내 코앞에 들이밀었다. 그리고 스위치를 올리자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띠리리 띠로로 띠리리리...” 그러자 그 친구는 회심의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앞으로는 세상에서 피아노가 다 사라질 거다. 이런 키트가 피아노와 똑같은 음을 내는데 누가 비싸고 덩치 큰 피아노를 사겠냐!”


클래식 애호가인 나를 향한 명백한 도발이었다. 반격이 시작되었다. “아무리 똑같은 소리를 낸다 하라도 피아노가 사라지는 일은 없다. 피아노만 가지고 있는 예술적 가치가 있거든. 따라서 공연장에 키트가 올라갈일은 절대 없을 걸!”


이어 강제 자율학습으로 응축된 분노 에너지가 분출되었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결국 그 논쟁은 내 회심의 일격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렇다면 너희 할아버지(유명한 서예가)의 작품을 찍은 사진이 모양이 같다고 해서 가치마저 같다고 생각하냐?”


지금으로서는 세상에서 피아노가 사라질 거란 그 친구 주장은 틀렸고, 위작이 오리지널보다 결코 높은 가치를 가질 수 없다고 한 내 주장 역시 재고가 필요다. 미술 철학자 아서 단토의 이론에 따르자면.


그 친구는 친했던 동창생 중 유일하게 연락이 닿지 않는다. 역시나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관련 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얼핏 들었다. 1984년 겨울, 덜 여문 머리로 예술적 가치를 두고 함께 떠들어 댔던 그 친구의 삶이 궁금해진다.




우리 안에는 언행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이 숨어있다. 그 모습은 마치 빙산과도 같다. 갈등 상황에서 드러난 부분만 보다가 잠겨있는 거대한 부분에 부딪쳐 좌초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문제 해결의 키는 대개 물에 잠겨 보이지 않는 부분에 있다. 갈등을 제대로 풀기 위해서는 감정이라고 하는 수면 아래로 다이빙해 들어가 보이지 않는 부분을 잘 탐색해야 한다.


수면 위로는 눈에 잘 띄는 ‘이슈’가 있다. 원하는 걸 상대가 쉽게 볼 수 있도록 간결하면서도 임팩트 있게 정리한 것이다. 시위대의 머리띠나 피켓에 적힌 문구를 떠올리면 된다. ‘쓰레기 소각장 때문에 00동 주민 다죽은다’ 같은. 친구와의 논쟁에서 내 이슈는 ‘클래식을 모독 마라’였다. 이슈와 함께 물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이해관계다. 관심사이거나 이해득실과 관계가 있다. 그런데 물 밑에 잠겨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체면상 내세우기 곤란한 경우다.


좀 더 깊이 들어가야 모습을 드러내는 것들이 있다. ‘욕구’다. 이해관계도 결국 이것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이해관계만 걸려 있다면 풀기가 뭐 그리 어렵겠는가. 이해관계는 대개 욕구나 감정과 복잡하게 꼬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갈등 해결이 어렵다.


빙산의 가장 밑 부분에는 거대한 신념이 자리하고 있다. 고질적인 갈등의 근본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장난감을 두고 꼬마 형제가 다투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윗사람이니까 형이 양보해야지” 하는 동생의 주장에 “아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라고 형이 응수한다. 귀여운 꼬마들이지만 주장 뒤에는 엄연히 공평과 같은 가치와 신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입맛과 마찬가지로 가치나 신념은 자라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겨 굳어진다. 가족끼리 주고받는 말과 행동을 통해 신념이라고 하는 대들보가 놓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슈나 이해관계와 달리 가치나 신념은 양보나 타협의 여지가 적다. 종교나 정치 갈등 해결이 어려운 이유다. 자유와 평등이 어떻게 양립할 수 있겠는가. 하나를 강조하다 보면 나머지 하나는 훼손되기 쉽다.


자식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감행한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도 어쩌면 단순한 학습 독려 차원이라기보다는 올바른 신념을 갖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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