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의 미학

효과 있는 사과하기

by 장동혁

살다 보면 결코 피해갈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실수다.



생각 없이 뱉은 말에 누군가 상처를 입거나 주변 분위기가 가라앉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생각없이 보낸 카톡 메시지 때문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어진다. 아차 싶지만 돌리기엔 이미 늦었다. 그러다보니 누구나 지우고 싶은 흑역사 하나씩은 갖기 마련이다.


그래서 없앨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은 게 실수다.

그렇다고 실수를 무서워하지 말자.

완벽한 신도 인간 만든 걸 후회했다고 하지 않던가.


실수 없는 세상.

언뜻 산뜻하고 좋아보인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생각해보라 그 누구도 실수하지 않는 세상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온기 없을지를.


작은 실수는 정을 낳는다. 문제는 실수가 아니라 어떻게 수습하느냐 이다. 실수에 연연하지 않고 잘 대응하기만 한다면 오히려 관계가 돈독해질 수도 있다. 비 온 뒤 땅이 굳듯이 말이다.


어떻게 만회하느냐에 따라 서먹서먹하던 관계가 풀릴 수도 있고, 막혔던 대화의 물꼬가 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제대로 사과하지 않거나, 있으나 마나 한 사과를 해 관계를 되돌릴 수 없는 상태로 만들기도 한다.




추석연휴 기간에 부모님과 함께 남원에서 유명하다는 추어탕집을 방문했다. 연휴기간이라 대기줄이 꽤 길었다. 대기표를 받고도 한참을 기다린 뒤에야 테이블로 안내되었다.


기대감과 시장기가 모락모락 올라왔다. 부친과 나는 추어탕을 시켰고, 모친은 떡갈비를 시켰다. 15분 정도 기다리자 추어탕이 먼저 나왔다. 우리는 떡갈비도 곧 나오겠지라고 생각하며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그로부터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도 나오지를 않는 거다.


안되겠기에 종업원을 붙들고 한 차례 확인 했다. 주문이 밀려서 그렇단다. 채근하고 싶었지만 정신이 없어 보여 그만두었다. 먹기 시작한 지 15분쯤 되어 종업원에게 재차 물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란다. 지나가는 사장도 같은 대답이다. 추어탕 그릇도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20분쯤 되었을때 앳된 종업원 하나가 실토한다.


"죄송한데요. 주문이 누락되었네요"


"..."


이건 아니다싶어 사장에게 컴플레인을 했다.

그러자 사장은 안 하니만 못한 사과를 한다. "죄송합니다. 주문이 누락됐네요" 하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주문한지 거의 30분이 되어 떡하니 떡갈비가 등장했다. 이미 그건 요리가 아니었다. 입맛은 사라지고 시장기도 가셨다. 물론 기분도 잡쳤다. 물리기도 뭐해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나왔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하는 걸 끔찍이 싫어하시는 모친 때문이기도 했다.



추어탕집 사장은 추어탕의 달인 일지는 몰라도 사과는 빵점이다. 아무 효과도 없는 헐값의 사과를 한 거다. 우리 중 그 사과를 받고 기분이 나아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진짜 미안한 마음이 있긴 한 걸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사과는 비용이 중요하다. 기왕이면 값비싼 사과를 해야한다. 비용이 높을수록 효과가 있다. 하지만 그 사과는 입을 잠깐 놀린 것 외에는 들어간 비용이 없다.


사이다 하나를 들고 올 수 도 있었다. 투명한 유리잔 세개까지 있으면 더 좋다. 아니면 그 음식 값을 받지 않는 방법도 있다. 정 그게 싫으면 공깃밥 값이라도 제해야 했다.


만일 '바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다면 사과를 하지 않는 게 낫다. 자신의 잘못이 확인될 때까지. 그런 다음 내가 잘못했다는 게 인정 되면 사과하는 거다. 그럼 상대는 비난을 할 것이다. 왜 이제야 하냐고. 그것도 비용이다.



사과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하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란 뜻이다. 너무 이른 사과도 좋지 않다. 사과는 결코 쉬운 것으로 보여서는 안된다. 너무 이른 사과도 좋지 않다. 충분히 고민하지 않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럴 사과는 공허하고 진심이 아니라고 느껴질 수 있다.


최악의 사과가 있다.

"만일..."로 시작하는 사과다.

"만일 내가 당신을 기분 나쁘게 했다면 그거에 대해서는 사과할게요"

잘못에 대한 확신도 인정도 비용도 없는 사과다.


합리화나 자기만의 당위성이 덕지적지 붙은 사과도 안된다.

"내가 잘못하긴 했지. 하지만 그땐 어쩔 수 없었단다"

그런 사과야 말로 관계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분노와 고질적 상처를 유발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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