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아홉, 런던

by 김나은





영국이 특별히 좋아서는 아니었다.


언젠가 보았던 영화 '원스'는 일상을 버겁게 살아가던 나에게 작지만 오래가는 위로가 되었다.

그 후로 내내 '꼭 아일랜드 에 가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고 공상에 빠졌다.

특히 더블린은 내 마음 속의 도피처였고 삶의 로망이었다.


그런데 나는 '놀랍게도' 서른아홉이 되었고, 그동안 못다 한 일들에 억울함이 생겼다.

"이십 년 가까이 일만 했는데, 내가 가고싶은 곳 한번 못 가면 내가 너무 불쌍하잖아."

삼십 대 초반까지는 '언젠가'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 '언젠가'에는 유럽 몇 개국을 돌며 여행할 통장의 돈도, 시간도 넉넉하리라.


하지만 마흔을 코앞에 둔 현재까지 그 '언젠가'를 만들지 못했다.

결혼을 못(안)해서 시간은 그나마 여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육아에 드는 시간이 남지만 그만큼 직장에서 메워야 할 일들이 있었다.

'저 사람은 시간이 많아'라고 여유를 보이는 순간 그 여유를 빼앗아 갈 일들이 생기는 법이었다.


'서른아홉' 이란 매우 특별한 나이란 것을 당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렇게 마흔이 된다....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마흔으로 가는 길을 편안히 맞이한 이도 있겠으나 나는 그렇지 못했다.


대학 졸업 후 취업, 그리고 적지 않은 퇴사와

그 보다 많은 내적 방황을 겪느라 온전히 즐기지 못한 나의 청춘에 대한 죄의식들이 병목현상을 겪고 있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살았을까? 삼십대에 내가 가고 싶은 더블린을 가보자."


나는 나에게 미안했다. 매우.

이러한 뱃속 아래 깊은 억울함이 한여름 무작정 런던행을 결심한 이유였다. 막연한 동경이 가득한 아일랜드에 가기 위해선 런던을 경유해야 했다.


'그래, 그럼 가는 김에 영국여행도 해보지 뭐.'

부랴부랴 항공권을 알아보고 숙소와 대략의 일정을 짰다. 유럽은 처음이고 여자 혼자 가는 길이라 무척 두려웠다.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급히 장거리 여행을 준비하는 것이 힘들었다.

동남아는 몇 번 가봤지만, 유럽은 한 번도 안 가봤다. 더구나 여자 혼자 무작정 가다니 이런저런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나는 지금 이곳에서 최대한 먼 곳으로 가 그곳에서 나의 삼십 대를 되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뜻밖의 문제가 생겼다.

잔소리할 남편도 걱정스러운 자식도 없는 나에게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 만큼 걸리는 존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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