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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은 Jan 31. 2022

지금 비우고 싶은 인간관계가 있다면...

꼭 함께 해야 하는 관계는 없다.



별은 정해진 궤도에서 항성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같은 태양계에 소속된 별이라도 항성과의 거리와 생김새가 다 다르다. 별 간의 거리는 그 별이 존재할 수 있는 정도로 벌어져 있고 이 거리가 조금만 좁혀져도 두 별은 물론 주변 별까지 위험해질 것이다.


사람을 별에 비유해 보자면,

자신과 아주 가까운 사람, 가족이나 혹은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 모두 너무나 다르다. 한 배에서 나온 이들 조차 생각과 삶의 방식이 판이한데 남은 오죽할까.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은 아주 다른 은하에 속한 별들이 아닐까?

같은 항성을 보고 도는 별도 별간의 거리를 유지하며 생김새도 천차 만별인데 형제 부모는 나와 같은 곳을 보고 살아가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같은 곳을 보고 돈다는 뜻은 삶의 목표나 삶을 바라보는 태도 같은 것이라 여겨본다면 말이다.) 심지어 아주머나먼 은하에 소속된 사람이 대부분이지 않을까라고 생각 될만큼 동상이몽이다.


자신이 도는 시각으로 그들을 보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사는 방식으로 그들은 어찌 보면 태양을 향해 돌진하거나 태양에서 정반대로 가고 있을 수도 있다.

상대방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들이 나를 볼 때 그들이 속한 항성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튕겨져 나가고 있을 것이다.


누구나 인긴 관계에서 상처를 받는다.

아무리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라도, 핏줄로 이어진 가족이라도, 내 모든 것을 알아주던 오랜 친구라도

수시로 상처를 주고받는다.


상처가 생기는 이유는 당연히 상대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기대란 내가 준 만큼(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받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것은 어쩌면 본능에 가까운 것 같다. 사랑을 준 만큼 나도 사랑을 받고 싶다. 무한히 베풀기만 하는 모성이라 해도 이 아이가 내 마음을 조금은 알아주길 바란다. 결혼을 해서도 이런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주길 바라고 때론 배우자보다 자신이 더 중요함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만큼 상대방도 나를 존중하거나 사랑하는 완전한 균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 자신이 준 만큼 받아도 충분치 않고 자신이 더 베푼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준만큼 더 받고 싶은 마음이 기저에 있기 때문에 늘 부족함을 느낄 수 있다. 정도의 차이이지만 서운함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며 포기하고 내려놓게 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관계가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관계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나는 기꺼이 그 관계를 비우려고 노력한다.


세상에 반드시 함께 해야 하는 관계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린아이를 둔 부부는 아이가 성장하기 전까지는 부모로서의 역할은 분명 필요하고 아이가 성인이 된 후에 그들이 상의해서 결정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관계를 보통 끊는다는 말을 쓰지만

나는 비운다는 말을 쓰고 싶다.


'관계를 비운다......'


비운다는 의미는 왕래나 소통을 그만둔다는 의미를 포함하지만

그 이면에 기본적인 마음가짐이 있다.

상대방과 나의 거리를 인정하고 애써 더 가까워지려고 하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반면 관계를 끈 거나 손절한다는 것은

그 이면에 상대에 대한 증오와 집착, 복수심이 있을 수 있다.

그 상대를 생각하면 밉고, 어떻게 그럴 수 있나 되새기며 이를 갈게 된다.

받은 만큼 복수하고 싶기도, 내가 불행한 만큼 불행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관계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라는 것은 아주 깊은 상처를 남기고

회복하기도 긴 시간이 걸린다. 증오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너무 불쌍하고 억울하다.


그러나 이런 마음이라면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람과 손절하기란 더욱 힘들다.

기억상실증에 걸리지 않는 이상 마음 한편에 늘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살아 숨시고 있기 때문이다.

감정이란 무생물처럼 웅크리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살아 움직여 나를 잠식하고 온통 그때의 감정으로 내 이성을 지배해 버린다. 그리고 다시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그 사람이 있는 방향으로 생각과 움직임이 시작된다.


진짜 상대와 관계를 끈고 싶다면 이런 감정을 비워야만 가능하다.

감정을 비운다는 것이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무단히 노력하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비운다는 것은 그들이 존재하는 은하와 내가 존재하는 은하 사이의 거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 언어의 방식이 다르다.

서로 다름을 알고 누구도 상대방의 방식을 따를 필요가 없다. 그저 서로의 방식을 이해하고 대화하려는 노력을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이러한 노력을 쌍방 간에 할 의사가 없다면 그저 그 관계는 비우면 된다.

비운다는 것은 서로의 거리와 둘 사이의 공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비우는 방법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무엇보다 감정을 비우는 것이다.

감정이란 서로의 거리를 인정하지 못하는 욕심이며 이것은 또 다른 집착과 불행을 낳는다.


적지 않은 시간을 살아본 결과

절대적으로 비우지 못할 관계란 없다.

천연으로 이어진 관계라도 가끔 안부를 묻는 정도만 왕래를 하면 된다.

그마저도 어렵다면 편지나 쪽지, 간소한 선물 만으로 상대에게 나쁜감정은 없으며 너의 삶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만 전해져도 좋다.


그리고 그것도 어려운 관계라면 마음으로 상대방이 자신의 궤도에서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장 보지 않을 수 없다해도 그 사람에 대한 기대(나를 존중해줬으면, 인정해줬으면) 하는 마음을 비워보는 것이다. 쉽지 않다. 그러나 비우려 노력하면 노력하기 전보다는 숨통이 점 트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이 사람을 보지 않아도 되는 날을 준비해야 한다. 세상에 모든 인관관계에 끝은 분명히 존재하고 내가 준비하는 만큼 빨라질 것이다.


명절엔 가족 간 불화가 잦은 시기인 것 같다. 그 모든 것이 서로가 서로의 말이나 행동을 들을 준비가 되지 않고 자신만의 생각으로 가득차 있을 때 생기는 일이다.


모두가 반드시 자신의 궤도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인정하자.

그리고 반드시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지 않아도 된다. 경험상 관계에 집중하다보면 더욱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체험했다.


내가 비운다고 해결될까? 라는 의문이 생기지만 신기하게 내가 끝없이 비우면 상대방도 그렇게 되어가는 것 같다. 던지면 오던 반응이 사라지면 처음엔 의아하고 오해하지만 악의가 없다는 것을 서서히 알아가는 경험이 많았다. 상대방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시간을 서로에게 주자.


억지로 관계 개선을 노력하며 불행해지는 것보다 서로의 평화를 먼저 생각해보자. 관계를 비우고 서로의 거리를 인정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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