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아홉, 혼자 여행이 필요한 이유

#삼십대 무심히 흘려보낸 일상 속 황금조각

by 김나은




결혼을 했던, 하지 않았던

39세라는 단어가 주는 당혹감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물론 바쁜 생활 속에 이러한 당혹감의 실체? 또한 제대로 파헤쳐 볼 여력도 없을 수 있다.


친구들 중 누구는 둘째를 임신해 출산이 임박해 있었고, 누구는 결혼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또 누구는 막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자 재취업을 해야겠다며 그 준비로 바빴다.


다들 열심히 살았고, 나도 그랬다.

하지만 마흔을 코앞에 둔 시점에 보람보다 다른 마음이 컸다.

복잡한 감정의 타래에

가장 굵은 실 하나를 뽑아보니...

'미안함'


미안함이었다.

나는 왜 자신에게 그렇게 미안했을까?


결혼 후 너 높은 연봉, 더 나은 직책을 위해 달려온 중년의 남자가 부인이 대뜸 내민 이혼 서류를 받고 느끼는 감정이 이런 것일까?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놓쳤다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그래 그런 감정과 비슷할 수도 있겠다.


여행이 끝난 후 돌이켜보면,

먼 곳으로 여행이 아니라도

서른아홉에는 혼자만의 여행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0세에 첫 성인이 된다면 40세엔 두 번째 성인식이 되는 삶의 분기점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성인식이란 이십 대와 삼십 대에 겪은 자립의 과정 그리고 그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삶의 태도를 선택하는 시기라고 생각된다. 적어도 나에게 마흔이란 그러한 시기였고 그 시기 전에 오는 지독한 과거에 대한 후회와 불안함은 바로 서른아홉에서 당연히 겪어야 할 과정이었다.


하지만 당시 나는 그저 사십 대를 앞둔 심란함에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 "원래 서른아홉은 그런 시기야"라고 알려주었다면 좀 덜했을까?




St. Paul's로 향하는 작고 좁고 더운 지하철 안에서 나는 한국에서의 나와 점차 멀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낯선 곳에서 그동안 숨어 있던 또 다른 나에게 말을 걸었다.


빈자리가 있었지만 앉지 않고 바람이 훅훅 들어오는 검은 유리에 비친 나를 물끄러미 보았다.


어느새 야간 투어 약속 장소인

지하철 역에 도착했다.


덥고 습한 지하철을 빠져나오자

차들이 씽씽 다니는 도심지가 보였다.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온 건물은 붉은 공중전화 박스가 앞에 있는 통유리 건물이었다. 이곳엔 Pod Cheapside와 터키 음식점인 HAZ St Paul's가 있었다.


유명한 관광지인 만큼 최근에 지어진 건물들이 중세시대 건물들과 어우러져 있는 곳이었다.


King Edward St. 사진 각도 때문인지 어둡게 나왔지만 늦은 오후, 아직 퇴근 전 시간인지 거리가 한산했다.


지하철 출구에서 만나기로 한 야경투어 일행들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모두 한국인일 텐데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기에.)


약속시간은 6시였고 시계는 5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직 영국에 온 지 하루도 되지 않았기에 길을 잃고 약속 시간에 늦을까 봐 멀리 가진 않았다.


소심한 마음에 지하철역 반경 10미터 밖으로는 나가지 말자라고 다짐했다.;;


팔각의 통유리로 된 편의점을 등지고 왼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반 사무실로 보이는 빌딩들이 보이고 모퉁이에 바로 nero라는 카페가 보였다. 구글 지도에 맛이 괜찮다는 평이 있어 카페에 들어가니 영업시간이 끝났다고 했다. 엥? 한국은 카페들이 늦어도 9시까지는 영업을 하는데, 뭐지?라는 생각을 하며 얼결에 다시 나왔다.


어쩔 수 없이 주변 구경을 더 해보기로 했다. 몇 걸음 가니 St. Paul's Station라는 버스 정거장이 있었다. 다리가 조금 아팠던 나는 벤치에 앉아 있고 싶어 정류장 안으로 갔다. (구글에는 친절하게 벤치가 있다는 댓글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한국의 벤치가 아닌 체육시간에 보던 평행봉 같은 높은 나무토막이 하나 있었다. 그래도 감사하며 앉았다.(앉았다기보다 엉덩이 한쪽을 걸쳤다.)


버스를 탈 것도 아니면서 버스 정류장에 앉음



해가 서서히 지니 점점 시원해졌다.

조금 정신을 차리고 물이나 한 병 살까 싶어 편의점으로 가려는데,

너무나 멋진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스칠뻔한 황금의 순간, 분명 지난 삼십 대의 일상에도 내가 놓친 황금의 순간이 많았을 것이다.
현대식 카페거리 사이, 황금빛 노을을 온몸에 받는 St. Paul's Cathedral


여기 카페에서 차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매일 보는 일상이지만, 나는 평생 처음 보는 St. Paul's 성당이었다. (당시에는 그 건물이 오늘 투어할 메인 건물인지 몰랐다;)


마침 힘든 여정과 낯선 두려움(특히 영국식 영어 ㅜㅜ)에 ‘괜히 왔나’라는 생각이 스칠때였다.


물을 사러 가는 것도 잊고 멍하게 서서

좁은 카페들 사이로 나를 반겨주는 황금빛 성당을 한참 바라보았다.


천주교는 아니지만 이 순간에 받은 인상은 강렬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어떠한 존재가 있다면 저런 모습일까?


좁고 현실적인 골목을 뚜벅뚜벅 통과하면 금방 손에 잡힐 듯 초연하고 진실된 나의 모습이 저렇게 있을까?


이후 투어를 했지만

저 골목에서 보는 시점은 만나지 못했다.


멋진 코스로 좋은 풍경들을 만났지만

여행 후에도 오랫동안 저 장면이 남은 이유는 내가 그동안 놓치고 스치고 지나온

일상에도 그런 황금 같은 순간이 존재했을 거라는 작은 깨달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온 마음으로 황금빛 순간에 작은 깨달음을 느끼고 있다 보니 어느새 약속한 시간이 되었다.

지하철 앞으로 가니 딱 봐도 한국인? 들이 보여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한국인이지만 무턱대고 반가웠다.


남녀 두 분의 여행 가이드분이 6명 정도 되는 일행을 체크하며 투어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나는 투어보다 일단 한국인들이 모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들떴다.

(한국 온 지 하루도 안돼서 벌써 향수병? 이 생겼나 보다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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