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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eong Aug 15. 2021

마중물

가라앉은 생각이 수면 근처로 많이 올라왔다. 이제는 조금의 알코올만으로 사유를 퍼올릴 수 있게 되었다. 만취까지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기쁘다.


무슨 이야기 인가. 꽁꽁 싸매어 두었던 나만의 진지한 이야기와 생각을 밖으로 표현하는 것에 많이 익숙해졌다는 말을 하고 싶다.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였다. 만취한 나는 ‘성공이 뭔데!’ 라며 밥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고, 창피했다. 나는 왜 부끄러움을 느꼈어야만 했을까. 치부가 드러난 것처럼 얼굴이 화끈해졌다. 다행스럽게도, 주변인들은 고함과도 같았던 내 언행에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만큼 나는 생각을 들어내는 것조차도 꺼리던 사람이었다.


오늘은 독서모임이 있었다. 나에게는 이제 ‘평소’의 시간이 된 활동이다. 모임이 끝나고 간단한 식사를 했다. 친분을 쌓음과 동시에, 못다 한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이 좋다. 먹는 것에 집중하게 되면, 하고 싶은 말을 억제하는 필터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그마저도 철저하게 자물쇠로 잠겨있기 때문에 약간의 알코올은 이것을 ‘해제’하는데 도움이 된다.


생맥주를 한잔했다. 세상이 어질 하게 느껴짐과 동시에 이것저것을 마음속 수면에서 건져 올렸다. 건져 올린 주제들은 알코올에 잘 익혀져 각자의 입으로 들어갔다. 오해와 편견에 관한 것들이었다. 영양가 있는 음식이다. 이 주제들은 날것으로 섭취하면 체하기 마련이지만, 오늘은 다행히도 잘 익었다.


이제 완전히 취하지 않아도 이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무슨 이야기를 내뱉든, 그것이 비록 맵고 자극적인 주제일지라도 잘 요리해내는데 자신이 있다. 날것의 사유가 내면에서 초벌이 되고 그것을 건져 올려 조금만 다듬으면 영양가 있는 음식이 된다.


표현하는 것에 두려움이 있었다. 손가락질을 받기 싫었고, 타인에게 요철이 되기 싫었다. 나는 조금 뻔뻔해진 것 같다. 그런 내가 기특하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있다. 의도치 않게 말로써, 글로써 상처를 줄 수도 있지만 얼른 그것을 치료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나의 사유가 선으로 방출되고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그 선을 유용한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두근거림이 있다.


나의 마중물은 따듯해지는 중이다.


8월 15일 광복절 자유독서모임, 오전 1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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