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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eong Nov 09. 2021

당신은 무엇을 믿으십니까

돈의 신도


믿고 싶었다. 그들에게 별다른 목적이 없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주말에도 바삐 일하는 그들은 여느 토요일에도 각자의 삶에 최선을 다한다 믿고 싶었다. 




어느 토요일, 일정이 다섯 개가 있었다. 해야 하는 일이 몇 있었고 하고 싶은 일정이 몇 있었다. 정오가 지나기 전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선릉역으로 향했다. 촉박한 일정이었고, 점심 먹을 시간이 부족했다. 건지지 못한 면에 밥까지 말아 급하게 해치웠고, 지하철을 탔다. 


알고 있었다. 다음의 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나는 속게 될까-하는 두근거림과 함께 약속된 역사에 도착했다. 몇 분을 기다려달란다. 카페에 잠깐 앉았다. 무슨 사건이 벌어질지 대충 예상되었다. 하지만 노선을 확실하게 정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가져야 할 태도. 그들 앞에서 공격수가 될 것인가 수비수가 될 것인가. 나의 시각은 앞이 아니라 팽팽 굴러가는 내 머릿속을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10분을 기다렸고 전화가 왔다. 앞선 세미나가 끝나 데리러 나오겠다는 것이었다. 정신이 들었다. 


내가 앉아있던 건물 1층은 결혼식 로비였다. 하얗고 검은 옷을 입은 남녀노소가 서로 손을 내밀며 웃는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창 피로연 시간이구나. 무슨 대화를 저리 건조하게 하고 있을까-. 나는 결혼을 해야 할까-. 결혼식에는 주례를 세워야 할까-. 돈은 어떻게 모을까-. 피로연은 뷔페식일까-. 상상하고 있는 찰나 내려온 그가 손을 흔들었다.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먼저 입을 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밀폐된 공간과 뻔한 질문에 약간의 메스꺼움을 느꼈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껌껌했다. 몇 개의 방이 양옆으로 펼쳐져 있었고 희한하게 복도는 불이 꺼져있었다. “우리밖에 없나요?” “하하, 다들 말씀을 듣고 계세요.” 말씀이라니, 교주가 생각났다. 불 켜진 방으로 들어가 잠깐 기다리란다. 누구를 모시고 오지는 않을까 초조했다. 오늘 나는 수비수니 얼마든지 슛을 쏴보아라. 골은 절대 들어가지 않을 테니. 


-


SNS를 열심히 하는 편이다. 읽은 책을 기록한다는 것이 즐거웠다. 비슷한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창구가 된 것 같아, 예전보다 더 열심히 활동했다. 어느 날 메시지가 왔다. -책모임이 있으니 참여하시어 같이 부자가 됩시다.- 매주 주말 일찍 줌으로 참여했다. 부에 관하여, 돈을 어떻게 모아야 하는지를 이야기했다. 참으로 깨어있는 사람들이구나. 야인으로서, 나는 모를 수밖에 없는 세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시간과 돈을 사용하는, 그런 메여있지 않은 삶을 그들은 가지고 있었다. 끼리끼리 논다고들 한다. 나도 그 무리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렇게 서너 번의 온라인 모임을 갖고, 대면 모임에 참석했다. 여섯 명의 사람들과 아침을 함께했다. 책모임이었다. -레버리지-라는 책을 다뤘다. 책에 담긴 지식은 꽤 익숙했다. 나름대로 부에 대한 책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아는 척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저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려면 지레의 원리를 사용해야 한다, 끌려다니는 삶은 구린 것이다, 돈은 이렇게 버는 것이다-와 같은 의견들이 오갔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누군가에게는 한없는 빛이 될 수도 있는 내용들이었다. 내 앞에 앉은 사람들은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본인의 업과 책의 주제가 맞으니 깊이 감동한 것 같았다. 그렇게 -부자의 삶-에 대해 두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눴다. 이 자들은 -신도-였지만, 그땐 알지 못했다.


부자가 된다라. 내가 몰랐기 때문에 경험하고 싶은 길이며 삶이었다. 그러나 이야기가 오갈수록 알 수 없는 미시감이 느껴졌다. 아무도 오가는 대화에 토를 달지 않는다. 이 사람들은 서로에게 백 프로 공감을 느끼고 있다. 일 퍼센트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나만 다른 생각을 하는 건가. 분명 구멍이 많은 의견임에도 아무도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주선자로 보이는 한 사람이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파란만장한 영화 같은 삶. 내가 친해지고 싶었던 사람은 그런 삶을 살았다. 위기를 기회로 삼은 사람이었다. 기승전결이 완벽한 인생 스토리였다. 찬 기운이 느껴졌다. 


스쳐 지나갔던 미시감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리 유쾌한 짓은 아니지만 집에 돌아와 그들의 SNS를 찾아보았다. 그들은 모두 같은 일을 한다. 그들은 모두 비슷한 것을 인터넷에 올린다. 또 하나의 특징. 게시물을 올리는 당사자의 특별함이 보이지 않는다. 색이 없는 사람들이다. 분명 무언가 다른 목적이 있다.  




다시, 토요일 그날. 어두컴컴한 그곳에서 정해진 시간이 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다른 곳에서 세미나가 있었던 모양이다. 나를 초대했던 그 사람은 꽤나 -직급-이 높아 보였던 몇몇 사람을 소개해주었다. 악수를 나누었던 모든 사람들은 업계에 뛰어들기 전 이름 꽤나 날렸다던 사람들이었다. 어디 항공사 임원, 어디 기획사 모델, 대단한 일들을 하셨다. 나를 왜 이 사람들에게 소개해주는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타이틀로 찍어 누르는 듯한 그들의 모습에, 오히려 고개를 빳빳이 들어 대응했다. 나는 -얽히면 안 되는 사람들, 숙이면 안 되는 인간들-로 보았다. 사전조사가 힘이 됐던 것 같다. 그런 번떡 거리는 사람들 앞에서도 뻔뻔해질 수 있었다. 


쏟아지는 신도들을 뒤로하고 개인적으로 강연을 들었다. 3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한 시간 동안 -네트워크 마케팅- 강연을 들었다. 정적 속에서 흘러나오는 세미나 내용은 조금 지루했지만, 꽤 흥미로웠다. 그리고, 확실해졌다. 지금은 호칭이 유화된 착취 시스템, -다단계-였다. 역시.


과연 이 시스템은 안전한 것일까? 일단 오해가 있는 듯싶다. 주변을 병들게 만드는 존재로서 말이다. 강제로 제품을 사게 만드는 못된 짓들도 많이 했던 모양이다. 조금만 검색해봐도 피해자가 넘쳐나니 인식이 좋지 않은 것은 당연할지도. 그러나 효율적인 시스템이라는 점만은 부정하기 힘들다. 중간 유통 단계를 생략 가능하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소비가 가능하다. 마케팅은 소비자가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에 비용을 줄이는 것이 가능하다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만족할 수 있으니 이상적인 시스템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문제다. 이상적인 것으로 위장된 시스템은 많은 사람의 혼을 빼놓기 쉽다. 사람 간의 거래,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은 결함이 있다. 그 결함을 철저하게 악용할 수 있다는 점이 -다단계-, 아니 -네트워크 마케팅-의 속성이다. 특히 아픈 구멍은 벌어지기 쉽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이 시스템으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식으로 설득한다면 버티기 쉽지 않다. 모두가 돈을 많이 버는 모양새, 이것은 섭리에 맞는 것일까. 궁한 사람은 이 지점을 간과하게 된다. 겉으로는 위하는 척 자신을 이익을 슬쩍 떼어가는 몹쓸 짓이며, 거짓을 진실로 위장하는 -말인-의 전형이다. 


그 길로 모임을 나왔다. 많이 배웠으니, 그걸로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라는 말은 남기고 떠날 수 없었다. 그들과 그 집단을 나는 단지 몇 주간 알았을 뿐이다. 궁금증을 다 쏟아내지 못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해코지당할 것이 두려웠던 마음도 있었다. 그들은 -돈의 광신도-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삶을 살지 않을 것인가-하는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다. 타인을 기만하지 않는 삶. 홀로코스트의 아히히만처럼, 자신이 무슨 죄를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른 채 살 수는 없다. 너와 나를 보호하고, 깨우치고, 그런 삶을 위해 죽을 때까지 앎을 추구하겠다고 다짐했다.




돈의 노예는 정말로 누구인가. 노예적인 삶은 어떤 것일까. 당신네들이 말하는 -자유로운 삶-이란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가. 스스로를 얼마나 속여야 그런 가치관을 가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어떤 길에 들어섰다면, 발이 놓인 그 길이 자신과 어울리는지 항상 돌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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