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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eong Dec 12. 2021

요즘 나태의 감각

7대 죄악, 나태는 죄입니까

잠깐 빠져나왔습니다. 깊이 위치했던, 보려 하지 않았던 심장 속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악이 어둠이라면, 희미한 불빛을 따라 잠깐 밝은 곳으로 나온 기분입니다. 완전한 적응기에 도달하지 못했는지 마치 방금 나온 두더지처럼 방향성을 잃고 끊임없이 차가운 바닥에 수많은 자국을 남깁니다. 다시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나태의 공간은 양자가 하나도 도달하지 못하는 컴컴하고 진득한 장소입니다. 어찌나 쫀득한지, 심지어는 따듯하고 포근한 이불 속입니다. 바람 불고 추위를 내뿜는, 지금의 겨울에는 주변의 공간이 포근한 곳이길 바랬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끈끈한 곳으로. 내 몸을 감싸는 위험한 중독으로.


빌어먹게 된 밖의 바람은 속세의 바람이었을까요. 큰 흐름을 피부로 느끼기 싫었습니다. 창문 사이로 내려온 약하고 차가운 공기는 체모를 한 방향으로 배열합니다. 그에 반응한 피부는 바짝 긴장하여 꼿꼿이 위를 보게 합니다. 바짝 올라온 체모는 섬유 사이에 끼어 약간의 따끔함을 줍니다. 간지럽고 따가운 기운에 옷가지를 저밉니다. 조그만 불편함을 감수한다라. 사소함을 먼저 없애 버리고자 손가락을 뻗습니다.


굵고 무거운 것에 버티는 것이 가능하다면, 오히려 사소한 바람과 꼿꼿한 체모는 그대로 두기가 어렵습니다. 예민한 것에는 몸이 먼저 반응합니다. 간지러움은 작은 것입니다. 큰 고통은 사람을 그대로 있게 하지만, 팔이 편하게 닿을 수 있는 예민한 부분은 긁어버려 해소해버립니다.


손톱이 체모를 솟아낸 피부에 닿고, 피부를 중구난방으로 긁어낼 때 깨닫습니다. 예민한 곳은 그곳이 아님을. 냉기를 느낀 부위는 다른 곳임을 알면서도 피가 흐를 정도로 긁어댑니다. 뼈가 보입니다. 근육을 뚫고 후벼댄 내 손은 방향을 잃어버립니다. 그제야 아픔이 느껴집니다. 끝을 보고 말았습니다.


예민한 것을 느낀 것은 그 부위가 아님을. 사실은 작은 것임을 깨닫는 순간 다시 두더지가 되었습니다. 밝은 곳으로 나왔다 착각했습니다. 빛이 넘치는 그곳은 밝은 곳이 아닌, 사소한 냉기가 오가는, 작은 바람이 흐르는 곳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니, 안다기보다는.. 어렴풋이 느껴지는 검푸른 에너지가 느껴졌습니다. 독기로 가득한 그곳은 감각을 마비시키고 잘못된 곳을 짚게 되는 위험한 곳으로 바뀌어버렸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보입니다. 고개를 돌립니다. 다시 땅속으로, 빛이 닿지 않는 심장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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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하다는 느낌,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에 역겨움을 느꼈던 최근을 표현했습니다. 겨우 심연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속세 또한 고통의 절댓값은 크게 차이가 없고, 다만 부호만 반대임을 느꼈습니다. 대지를 원점이라 한다면 음의 공간이 조금 더 익숙한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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