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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를담다 Oct 20. 2021

세계는 왜 싸우는가?

내가 놓치고 있었던 무관심에 대한 반성.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하면서 카불 공항이 마비가 되어 뉴스마다 떠들썩했던 일이 떠올랐다. 난민 문제와 주식을 공부를 하면서 아랍 전쟁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던 터라 무슨 일인지 알고 싶어 졌다.


과거 미국과의 전쟁에서 큰 전쟁을 치렀던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를 잠시 되돌아보자면

9.11 테러 배후로 지목되었던 사우디아라비아 왕족 출신 오사마 빈 라덴은 돈이 많은 재산가였고, 그 돈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슬람 전사들을 키우고 있었다. (그는 탈레반 정부 대통령 격인 아프가니스탄 최고 지도자 무하마드 오마르의 친구이자 오른팔이었다) 미국은 9.11 테러가 일어난 후 빈 라덴을 넘겨주기 요구했고, 넘겨주려 했던 2001년 10월 7일에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공격했다. (세계는 왜 싸우는가? p43)

(어학사전에는 : 미국의 신병 요구를 거부하여 보복공격을 받아 그해 11월에 붕괴되었다고 나와있다.)


미국은 전쟁의 이유를 빈 라덴 체포와 탈레반 정부로부터 여성을 해방을 내세웠으나 아프가니스탄의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했고 함께 들어온 23개국 연합군(ISAF)과 빈 라덴을 잡기 위해 군사작전을 펼치다가 애꿎은 민간인을 대량 학살하는 일이 종종 벌어져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가면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가슴에 미군의 원망이 싹텄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이 밀었던 아프가니스탄의 다수민족인 파슈툰 족출 신의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은 10년 넘게 재임을 하며 구호 원조금 착복까지 하는 부정부패를 일삼기도 했다.


탈레반은 2006년부터 미국을 미워하는 사람들의 민심과 알카에다의 지원, 아편(세계 아편 생산량 98% 차지)이라는 돈줄이 있었으므로 미군을 다시 공격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며 다시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과 서로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아프가니스탄 민간인뿐 아니라 전쟁의 실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군인이 되어 전쟁터로 내몰린 어린 군인들(미군 병사 18-23세)의 목숨도 많이 잃었다. 국제사회에 보여줄 성과가 필요했던 미군은 긴 시간의 싸움에도 여론이 좋지 않았고 막대한 군사비와 미군의 사상자로 인한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강하게 나갔다가 뒷수습이 되지 않는 상황이 돼버린 것. 그사이 20년간 지속적인 게릴라 공격을 펼치던 탈레반(이슬람 수니파 무장 정치조직/이슬람 신학생)이 세력을 확대했고 미군의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한 철수를 한 지 20년 만인 2021.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재 장악했다.

(*탈레반- '이슬람 신학생'이라는 뜻, 가장 엄격한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라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믿는 것.

이슬람 율법이라기보다 자기들만의 해석으로 유리하고 편리한 법을 만들어 믿고 따르는 것과 다름없다.)


과거의 탈레반을 아는 일반 민간인들은 생명을 잃을 수 있다는 공포에 몸부림을 쳤고, 가는 길목 모든 곳이 탈레반의 손으로 넘어갔으므로 그들의 눈을 겨우 피해 목숨을 걸고 카불 공항에 왔다 하더라도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 공항에서도 폭탄테러가 일어났다. 살아있지만 늘 죽음을 경험하는 지옥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출하려는 사람들 /카불 공항


소설 "연을 쫓는 아이"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의 과거와 현재의 실제 삶에 대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다시는 저 사람들을 똑바로 쳐다보지 마세요! 내 말 알아듣겠어요?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요!"

"그러려고 한 게 아니었어요."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당신 친구의 말이 백번 맞소, 그건 미친개를 막대기로 찌르는 거나 같소."

총탄에 맞은 흔적이 있는 건물 계단에 맨발로 앉아 있던 늙은 거지가 하는 말이었다.

"저자들은 누군가가 자기들을 자극해주기를 바라며 차를 타고 돌아다닌다오, 조만간 누군가가 늘 걸려들지요. 그렇게 되면 적들은 포획을 하죠. '알라는 위대하시다' 말하면서요. 하루의 단조로움이 마침내 끝났으니 말이요. 누구도 저자들을 건드리지 않는 날에는 아무한테나 폭력을 휘두른다오"------ (중략)

늙은 거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몇 개의 이가 남아 있는 보였다. 하나같이 구부러지고 누르께했다. "그들을 처음 봤던 때가 생각나는 구려, 그들이 카불에 처음 들어왔을 때였소. 그때는 모두들 즐거워했었소! 사람이 죽어 나가는 일은 이제 끝났구나 싶었지. 하지만 어느 시인은 이렇게 읊었소. '완전할 것 같던 사랑이었는데, 문제가 생겼도다!'"

나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 가잘을 저도 압니다. 하페즈 가잘이죠?"

거지가 대답했다. "맞소. 하페즈의 가잘이 맞소. 나는 그걸 대학에서 가르치곤 했다오."


나에게는 당연한 일들이 그곳에서는 당연하지 않은 일이었다.

내가 어릴 때 그리고 지금의 우리 아이들도 나의 어린 시절과 마찬가지로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좋은 직업을 가지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탈레반들의 손으로 넘어간 그곳에서의 삶은 과거도 현재도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다. 자기들만이 만든 자기들만의 세상만이 존재할뿐.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두렵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에 대해서는  "천 개의 찬란한 태양"p375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실제 삶을 바탕으로 쓴 소설에 나온 이야기이다.) 탈레반이 지키게 만든 율법이다.


1996년

우리가 집행하고 여러분이 복종해야 하는 법입니다.

모든 시민은 하루에 다섯 차례씩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시간에 다른 일을 하다가 적발되면 곤장에 처해질 것입니다.

모든 남자들은 수염을 길러야 합니다. 적어도 턱 밑으로 주먹 만한 길이로 길러야 합니다. 이를 어기면 곤장에 처해질 것입니다.

사내아이들은 터번을 둘러야 합니다. 1학년-6학년까지는 검은 터번을 두르고, 상극반 학생들은 흰 터번을 둘러야 합니다.

사내아이들은 모두 이슬람 옷을 입어야 합니다. 셔츠의 목깃은 채워야 합니다.

노래는 금지합니다.

춤은 금지합니다.

카드놀이, 장기, 노름, 연날리기는 금지합니다.

책을 쓰고 영화를 보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금지합니다.

잉꼬를 키우면 곤장에 처해질 것입니다. 새는 죽일 것입니다.'도둑질을 하면 손목을 자를 것입니다.'재범일 경우에는 발을 자를 것입니다.

이슬람교도가 아니면, 이슬람교도가 보이는 곳에서 기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곤장을 맞고 감옥에 갇힐 것입니다. 이슬람교도를 개종시키려다가 잡히면 처형될 것입니다.

다음은 여자에 관련된 사항입니다.

여자들은 항상 집에 있어야 합니다. 여자들이 이유 없이 거리를 나다니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밖으로 나다니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밖으로 나갈 경우에는 마흐람(남자 친척)이 대동해야 합니다. 거리에서 혼자 다니다가 걸리면 곤장에 처해진 후 귀가시킬 것입니다.

여자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얼굴을 보여선 안됩니다. 밖으로 나갈 때는 부르카를 입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심하게 맞을 것입니다.

화장품은 금지합니다.

장신구는 금지합니다.

멋있는 옷을 입어서는 안 됩니다.

상대방이 말을 걸지 않으면 말해서는 안됩니다.

남자들과 눈을 마주치면 안 됩니다.

공공장소에서 눈을 마주치면 안 됩니다.

공공장소에서 웃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다 적발이 되면 곤장에 처해질 것입니다.

손톱을 치장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다가 적발되면 손가락 하나를 자를 것입니다.

계집아이들은 학교에 다닐 수 없습니다. 여학교는 즉시 폐쇄될 것입니다.

여자들은 밖에서 일을 하면 안 됩니다.

간통을 하다가 적발되면 돌로 쳐 죽일 것입니다.

이를 명심하고 복종하십시오. 알라-우-아크바르.


과거 탈레반의 율법을 보면 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현재 여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겠다고 외치고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정치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탈레반을 만들었고 총과 무기와 권력을 소유한 탈레반은 자기들만의 세계에 갇혀 모든 사람들이 지킬 수밖에 없는 말도 안 되는 법을 만들고 피로 사람들을 다스렸다.

연달아 소설 두 권을 읽고 며칠밤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악몽에 시달렸다.(원래 감정이입이 심한 편이다)

소설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나는 언론과 상투적인 책을 통해 가슴이 아닌 머리로 그들을 배웠을 것이다.


나도 이슬람 전체가 탈레반이라고 오해를 했던 적이 있었다. 난민 문제에 관심이 생겨 조금씩 알아가다 보니 그것이 전통이라며 완벽히 따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무력에 의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랬더니 전보다 무서움은 덜해지고 안타까움은 더 커졌다. 언론에서 이슬람에 관련된 내용을 내보낼 때 대부분 탈레반의 모습을 내보내기 때문에 (IS도 누가 일반인이고 테러범인지 구분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똑같은 옷을 입도록 한다고 한다.) 그게 전체로 비친 것이다. 그래서 나 같은 다수의 사람들이 이슬람 국가=탈레반과 연결 짓는 것이 아닐까? 결국은 서로가 서로를 잘 모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일 거다. 내가 다른 나라에 가면 그 나라에서 결정짓는 우리나라의 모습이 나의 전체가 되는 것처럼. 나는 아닌데도 말이다.

글을 쓰다 보니 아직도 일제 강점기에 청산되지 못했던 악습을 강요하며 정당화시키던 어른들이 생각이 났다.

5.18 운동의 유족들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때가 가장 살기 편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말이 귓가에 스쳤다. 분명 나의 자유를 뺏고 구속하고 있지만(했었지만) 식민지 정책에 세뇌되어 거꾸로 가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도 같은 대한민국에 살면서 그렇지 않지 않은가.


시리아 난민 아기 아일란 쿠르디/2015.9.2


터키 해변에 에 떠밀려온 3살 아이를 기억하는지.

시리아 내전을 피해 유럽으로 탈출하려다가 터키 해변에서 숨진 아일란 쿠르디 사건.

뉴스에서 나왔던 이 두 사건만 해도 지금 내가 어디서 어떻게 누구와 함께 살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떠올리게 해 준다. 사진을 본 순간 바닷가에서 누워있는 아이의 모습이 꼭 내 아이가 누워있는 모습 같이 느껴졌다.

가슴이 북받치고 코끝이 시려 눈물이 앞을 가렸다. 꼭 나의 이야기가 되어야만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게 되는 옹졸함이란. 주변의 사소한 말 한마디조차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상처 받으면서 정작 지구 반대편의 상황은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던 일이 되어 버렸었다. 그들의 외침을 외면해 버린 듯 해 너무나 미안했다.

내전이 아니었다면 나의 아이들처럼 많이 웃는 평범한 아이였을 텐데

지금 내가 마음이 너무 힘들다면 오롯이 집중했던 나를 벗어나 나보다 조금 더 어려운 나라에 시선을 돌려 보려 노력한다. 그러면 내가 그동안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원치 않았던 전쟁 앞에서는 내가 가지고 있었다는 변변찮은 능력. 지금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나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언론에서 나온 이슈만 가지고 전체를 판단해 버린 내 모습과  지금보다 더  많이 가지라고 외치는 기업들의 행태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sns의 화려한 사진 속에서는 되려 그들의 외로움이 속속 보이기도 했다.


예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다가갔더니 언론의 역할보다는 시청률을 올리려고 자극적인 기사만을 내보내는 모습에도 화가 났고 (조회수 올려주는 것이 아까워 웬만큼 자극적인 기사는 일부러 클릭조차 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소비를 부추기는 티브이와 광고에도 눈살이 찌푸려졌다.  "왜. 그것 없으면 못 사나? 난 없어도 잘 사는데?"라며 반감처럼 되려 가진 것에만 집중하며 살도록 노력하게 되었다. 그 어떤 자기 개발서보다 그 어떤 육아서보다도 더 현실적으로 나를 깨닫게 해 주었다. 종류를 막론하고 인문학적인 그 어떤 도서들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스스로 실천하도록 만들었다. 내면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세상에 대한 깊은 관찰과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되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에 대한 해답을 알려주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장석주 시인의 시 "대추 한 알"이 떠올랐다.


대추 한 알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서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등 달 몇 날


"내 친구 압둘 와합을 소개합니다"책 속의 주인공 시리아 청년 압둘 와합 씨의 이야기이다.


한국 사회에 가뜩이나 다른 문제도 많은데 또 한국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난민들이 왜 하필 한국으로 왔냐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지요. 그런데 여러분이 지금 불이 활활 타오르는 집 안에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

당장, 어느 방향이든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집을 나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리고 불을 피해 빠져 나갈 수 있는 방향으로 무조건 달려가겠지요. '아, 집을 나가면 잘 곳이 없으니 친구 집으로 가야겠다. 아니면 '친한 그 친척 집으로 가서 자려면 이쪽으로 나가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난민들도 그렇습니다. 일단은 닥쳐오는 위험을 피해서 갈 수 있는 곳은 무조건 가는 거예요. 그게 본인이 전혀 모르는 나라일 수도 있고, 한국이 될 수도 있는 거지요."


한순간에 모든 것을 앗아가는 전쟁을 보며 '어쩜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었구나. 스스로 노력해서 이룬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동안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구나. 환경이 따라주지 않았다면 나도 그들이 될 수도 있었겠구나. 우리 아이들도 참 행운아구나. 나도 우리 가족도 단지 운이 좋았을 뿐. 이 단어 그 이상으로는 내 삶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압둘 와합 씨도 시리아에서 변호사였다.)

운이 좋아 내전이 있는 그 나라에 태어나지 않고, 6.25 전쟁이 지나간 지금 이 시점에 태어났을 뿐.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잘 모르기 때문에 혐오가 생겼다고 생각한다. 나와 내 주변만 보아도 분명 진심을 알면 마음을 내어줄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자기 친구를 이란으로 보내지 말라고 큰 용기를 낸 중학생들. 위험을 무릅쓰고 그 나라의 뉴스를 들려주는 김영미 기자. 폭격을 피해 시리아에서 땅굴을 파서 병원을 유지하는 의료진들. 폭발음이 들리면 목숨을 걸고 보통의 사람들과는 반대로 달려가는 화이트 헬멧.  우리도 6.25 전쟁을 겪은 나라로서 다른 나라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더 이상의 혐오가 혐오를 낳지 않을 세상이 되지 않을까. 이제는 내가 마음을 내어 줄 때가 온 것 같다.


-UN 연합군 16개국 참전국 : 호주, 벨기에, 룩셈부르크, 캐나다,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프랑스, 그리스, 네덜란드, 뉴질랜드, 필리핀, 남아프리카 공화국, 태국, 터키, 영국, 미국

-의료지원국 : 인도, 이탈리아,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예멘 난민 뉴스에 달린 댓글 중 하나를 소개해본다.


한국인인 글쓴이는 독일에 와서 사는 동안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 할 수 없이 남의 집 청소를 해 주는 아르바이트를 알아봐 달라고 독일인 친구들에게 부탁을 했다. 독일인 친구들은 한국에서 그런 일을 해 본 적이 없는 글쓴이를 배려했다. 깐깐한 낯선 집에 가서 고생하지 않도록 자신의 집에서 단기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글쓴이가 피아노 반주자로 학교에 취직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글쓴이가 친구들 소개 덕분에 학교에 취직한 것을 고마워할 때 친구들이 보인 반응은 글쓴이가 반주자를 할 수 있는 것을 아니까, 자리가 있을 때 알려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하던 일을 계속하게 되어서 기쁘다며 축하해 주었다. 그 친구들 그 누구도 너는 독일보다 못 사는 나라에서 왔으니 외국에 와서 무슨 일이든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하지 않았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따뜻하면서도 명쾌한 한마디였다. <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김지혜/파람북에 나와있다고 한다>


예멘 난민들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가 떠올랐다. 사실 댓글을 읽는 것이 무서웠다.

'젊고 건장한 남자들이 자기들 나라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왜 참여하지 않고 이 나라에 왔느냐!'(갑자기 IS 대원이 되어라고 하는 것과 같다. 건장한 젊은 남자들을 제일 먼저 데리고 간다. 가족들을 위협하면서.) '메이커 입고 있더라.'(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쫓겨 왔을 뿐이다) '스마트폰이 있더라 (스마트폰이 없다면 남아있는 가족들의 생사를 알 길이 없다)' '다른 나라에 왔으면 적응을 하고 그 정도는 참아야지(우리도 사무직을 하다가 갑자기 모르는 나라에 가서 처음 해본 어업을 하면 잘 해낼 수 있을까?)' 수많은 말들이 칼날 같이 무섭고 매서운 겨울바람처럼 차갑게 살을 에는 느낌이 들었다.


"내 친구 압둘 와합을 소개합니다" 책에서 저자가 한 말을 옮겨본다.


느닷없이 북한과 전쟁이 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만으로 끔찍하지만 사실 몇 해 전만 하더라도 계속되는 북한의 미사일 실험 발사로 불안한 적도 있지 않았던가. 내가 천신만고 우여곡절 끝에 이웃나라로 간신히 피란을 갔는데 그 나라 사람들이 내가 지닌 스마트폰이나 브랜드 물품을 보고 "무슨 난민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냐, 브랜드 신발을 신고 있냐"라고 하며 "너 진짜 난민이 맞느냐고 묻는다면? 혹은 "넌 난민이니까, 아무리 체력상 버티기 힘든 일이라고 해도 따질 것 없이 해야 하지 않냐?"라고 "네 나라 전쟁 피해를 왜 우리가 책임져야 하느냐"라고 묻는다면? 이런 질문은 예멘 난민을 놓고 빈번히 들리는 말이었다.....(중략)

"만약 그런 순간이 온다면 내가 우리나라에서 무슨 직업을 가졌건, 어떤 지식과 기술을 익혔건, 어떤 환경에서 생활했건,  모든 것은 사라지고 '난민'이라는 두 글자만이 나를 대신하겠구나...' 암담했다.  


무언가 설명할 수 없었던 상황들이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오늘 내 아이를 바라보며 내 신랑을 바라보며 감사한 마음을 느끼면서도 "나만 아니면 돼"라는 마음가짐으로 혼자만 잘살겠다고 꼼수 부렸던 모습들이 부끄러워졌다. '내일도 아닌데 뭐' 하며 넘기기엔 세계는 너무 연결되어있다. 예멘 난민들을 우리나라에서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모든 나라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얼기고 설긴 이 전쟁의 피해자는 바로 우리 같은 힘없는 보통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쟁이 일어났고  아무 이유도 없이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가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마음을 내어본다면 지금보다 더 따뜻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김영미 작가의 말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이 난민을 반대하는 것은 아마도 잘 모르기 때문일 거라고, 사실을 알고 나면 충분히 포용할 수 있을 거라는 말에  공감한다.

어쩌면 나의 이 긴 글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 나의 진심이 당신의 마음을 비켜가지 않고  고스란히 잘 전달 되었으면 좋겠다.


로자의 아버지의 유일한 유품인 운전면허증을 보여 주다 눈시울을 붉혔다. 신장이 좋지 않은 아내의 약과 아이들이 먹을 것을 구해 곧 돌아오겠다는 아버지. 하지만 로자는 금세 다시 또렷해진 눈망울로 이렇게 말했다.

"평생 슬프기만 한 사람은 없어요."

평생 지속되는 슬픔과 고통은 없다는 것. 역경과 인고의 시간 뒤에는 반드시 그 보답인 행복이 기다린다는 것.

소녀는 책을 통해 또 아버지와 나라를 잃었던 참혹한 경험을 이겨내면서 일찌감치 이 진실을 깨우치고 있었다.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너무 빨리 성숙해져 버린 아이를 보는 것은 언제나 미안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로자에게는 내전으로 파괴된 자신의 국가 예멘,

한 여름이면 기온이 50도까지 오르는 작은 인접국 지부티가 세상의 전부다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사람들의 처지를 듣고 다시 바깥세상에 전하기 위해 온 내게 감사하다고 했다.

나는 소녀와 다르지 않은 이유로 제주도로 피신했을 예멘인 500명에게 우리가 보였던 반응이 떠올라 그 감사인사를 온전히 받을 수가 없었다. 내 마음을 알 길 없는 로자는 여전히 따뜻한 얼굴로 말했다.

"대한민국은 친절하고 관대한 나라라고 들었어요. 아저씨가 돌아가서 전해주세요. 우리는 스스로 원해서 예멘을 떠나지 않았어요.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예요. 평화가 돌아온 조국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날까지 계속해서 공부하고 일을 하면서 미래를 꿈꾸고 싶어요."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정우성/원더박스)



전 세계의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주는 것, 그것이 그들의 상처 치유에 가장 필요한 것이란다.

("세계는 왜 싸우는가" 김영미/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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