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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나래 Aug 01. 2018

워라밸 시대에 독일을 바라보다

축구도 이기고 근무시간도 이겼다


일요일은 쉽니다, 독일

독일 여행에서 가장 놀란 것이 있다면 각양각색의 맥주도 아니요,

피파랭킹 1위 축덕의 열기도 아닌 (비록 우리나라에게 월드컵에서 졌지만 말이다)


일요일에 정말, 도시 최고의 관광지조차도 가게들이 영업을 하질 않는다는 것이다.

식료품점이나 음식점은 문을 여는 경우도 많은데 공산품을 파는 가게는 전부 휴점이다.

마트부터 ZARA 등의 SPA 브랜드, 명품 브랜드까지 전부 닫는다.


독일 땅에 발을 딛기 전까지 이런 상황을 어떻게 예상할 수 있었을까?

다른 유럽 나라들도 주말에 영업을 안 하고 이른 시간에 문을 닫는 가게들이 많지만

(벨기에 같은 나라는 관광지 외에는 가게들이 4,5시 이후에는 전부 문을 닫아버린다)

그래도 관광지 가게들은 문을 여는 편이지 않냐는 말이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나 런던의 피카델리 서커스,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광장을 거닐 때는 주말이라서 뭘 못한다는 걸 인식해 본 적이 없었단 말이다.

하물며 이탈리아의 조그만 소도시도 아니고 유럽의 대장 국가, 부동의 경제력 1위 독일의 대도시에서?


하지만 독일에서는 놀랍게도 도시 최고의 관광지마저 주말에 휴업하고

여는 곳도 있고 닫는 곳도 있는 수준이 아니라 방문한 공산품 파는 가게들이 전부 휴업을 하여 내게 문화충격을 주었다.


아, 웬만한 것에는 문화충격을 잘 안 느낀다고 생각했는데.


물론 독일에도 주말에도 하는 편의점 스타일의 가게가 구글링 해서 찾아보면 있다고는 한다. 하지만 찾기 힘들뿐더러 생활용품이 전부 다 있다기보다는 주로 술을 파는 가게라고 한다. 어쨌든 내가 찾던 일반 마트나 옷가게는 열지 않으며 눈에 쉽게 띄는 게 아니라 구글링을 해서 찾아 찾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뮌헨에서 보낸 노동절

이번 독일 여행 중에 뮌헨에서 노동절을 보내게 되었는데 이 또한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실상 한국에서 노동절은 모든 근로자가 쉬는 날이 아니라 공공기관과 일부 근로자만 쉬는 날에 불과하다.

특히 서비스업은 닫는 걸 본 적이 없어서 입사 전까지는 노동절이 휴일이란 것도 몰랐던 터였다.

그래서 노동절에 도시가 개점휴업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는 예상도 하지 못했다.


서울은 노동절이 아니라 설날, 추석 같은 명절에도 오픈하는 곳이 천지인 도시가 아닌가. 아니 오히려 휴일이 대목이라고 더 열과 성을 다해 영업하지 않나.


그런 땅에 살다가 노동절이라고 온 도시가 휴식에 빠진 모습을 보니 문화충격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필이면 그 날은 생각보다 추운 날씨에 대비하여 겉옷과, 다 떨어진 치약을 구매하기로 예정한 날이었다. 하지만 마트와 옷가게를 찾아 아침부터 온 도심을 휘젓고 다녀도 도무지 문을 연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나름의 기지를 발휘해 문을 연 약국에서 가그린이라도 구매하려고 했지만(똑똑한 approach라 생각하며), 돌아오는 건 약사의 친절한 거절뿐이었다. 오늘은 비상약만 구매할 수 있는 날이라나. 결국 포기하고 치약은 그냥 호텔에서 받고, 추운 건 그냥 지금이 겨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겨울은 원래 추우니까...


이렇게 온 도시가 개점휴업 상태에 빠지니 뭘 해야 하나 혼란이 왔는데 이 와중에 영화관은 오픈을 하더라. 그래서 뜻하지 않게 뮌헨에서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를 관람했다. 덕분에 인피니티 워 오역을 겪지 않았어요. 고마워요(?) 뮌헨!



독일에서는 일요일과 공휴일 휴점이 의무

찾아보니 독일은 폐점법(Ladenschlussgesetz)을 통해 물건을 사고파는 상점에 대해 오후 8시부터 오전 6시까지 폐점을 명문화하고 있다고 한다. 이 법을 그대로 사용하는 주도 있고 베를린과 같은 도시에서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24시간 오픈을 허용하기도 한다. 일요일 및 공휴일 폐점도 의무이다.


사람들이 휴일에 즐겨야 하는 성질인 식당/영화관이나 꼭 필요한 식료품점은 열더라도

평소에도 사놓을 수 있는 공산품을 파는 마트와 옷가게 등은 노동자 권리를 위해 폐점하도록 법에서 규정한 것이다.




*OECD 취업자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

최저 수준 독일. 최고 수준 한국.

축구도 이기고 노동 시간도 한국이 이겼다(?)


OECD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 - 최저수준 독일, 최고수준 한국.


노동과 휴식에 대한 태도

이런 걸 보니 독일과 한국 사회의 노동과 휴식에 대한 생각이 정말 다르다 싶다.

서울의 자영업들은 월화수목금토일 풀 영업은 기본에 명절까지 오픈하는 곳도 수두룩하고

아예 연중무휴 24시간 오픈이 콘셉트인 편의점이 도시 전체에 널려있다.


하지만 독일은? 일요일은 물론 모든 공휴일에 칼 같이 닫아버리는 그 스웩.  

도시 최고의 관광지, 한국으로 치면 명동인 그 임대료 비싼 지역의 가게들을 일주일에 하루를 온전히 놀리다니..

손익계산을 해보면.. 한국적 사고로는 실행하기 정말 어려운 일이다.

큰돈보다는 가족과의 소중한 시간,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를 중시하는 문화인 걸까?



어쩌면 그래도 살만하니까 그런 건지도 모른다.

1인당 GDP 순위 (2018)

- 세계 16위, 인당 5만 842$의 독일.


세계 29위, 인당 3만 2775$의 대한민국.




이런 독일도 중동 등 타 국가에서 온 이민자들은 더 늦게까지 일하고 더 벌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심야까지 열일해주시는 이민자분들 덕분에 베를린에서 인생 최고의 베트남 쌀국수를 먹을 수 있었다. 하노이에서 맛보았던 쌀국수보다 더 맛있었다. 베를린 맛집으로 인정합니다. 땅땅.


이 시대 진정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밤에도 쉬지 않는 대한민국도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하는 등 서서히 변하고 있으니 언젠간 우리 모두 독일처럼 쉴 땐 쉴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할 땐 일하고, 쉴 땐 쉬고. 그러면서도 대다수 국민이 적당히, 행복하게 먹고살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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