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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루 Jun 25. 2018

계절의 냄새

어느새 여름이네요



신록의 푸르름 사이로 바다도 아닌데 묘한 비린향이 풍겨왔다. 




    아, 비냄새다.




마음으로 반긴다. 벌써 비의 계절이라니. 아, 올해도 벌써 반이 지나간다. 마음이 철렁한다. 




    그래도 비냄새는 좋아. 




          계절이 바뀔때마다 하늘엔, 땅엔, 공기엔 특유의 냄새가 먼저 찾아오곤 했다. 그럼 다가올 계절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묘하게 설레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한다. 오월의 신록이 지나간 유월엔 수증기의 냄새가 난다. 잘 지은 밥냄새같기도 옥수수 찌는 냄새같기도 하다. 청량감은 사라졌지만 다가올 가을을 위한 견딤의 냄새가 있다. 다가올 풍요로움을 생각하면 몇 달 정도는 기꺼이 견딜 수 있는 그런 날들. 그 여름이 다가온다. 


          내 고향, 대구엔 여름엔 늘 눌어붙은 떡같은 냄새가 난다. 잘 익지도 타지도 않은 눌어붙음. 사람들은 아스팔트가 녹아내린다고들 하는데 그런 아스팔트 도로가 생겨나기도 전부터 있어왔던 그런 냄새. 숨막히는 더위 때문에, 그 냄새 때문에 절로 코를 킁킁대게하는 무언가가 여름에 있다. 


          여름의 끝자락엔 여름내 볕에 바스라지는 구수한 불내가 나곤했다. 소멸되기 전까지 바짝 타들어가는. 지나온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그랬다. 계절이 다가옴을 냄새가 미리 전해주는 듯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겨울. 겨울이라고 냄새가 없을까, 겨울의 다정한 그 냄새를 나는 참 좋아한다. 겨울엔 온 계절이 다 녹아든다. 추위를 벗어나고자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사계절의 향. 서로의 체온에 녹아드는 동안 사람들의 살 냄새가, 보일러를 가동한 할머니집의 온돌 바닥에선 가을의 구수한 냄새가, 잘 익은 고구마에선 여름철 눌어붙은 무언가의 냄새가 난다. 


          계절을 돌고 돌아, 다시 지금의 계절이 왔다. 하루하루 계절이 변해감이 느껴지진 않아도 이렇게 무언가 다음을 약속이라도 하듯 계절의 냄새를 미리 맡아볼 수 있게 되면 아무것도 아닌듯한 기분이 들어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고 웃음이 쏟아질 것 같다. 기분 좋은 감정의 변화에 지금보다 더 나은 날을 약속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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