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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루 Jun 22. 2018

가지 않은 길

결혼은 해도 안해도 어렵다


그런 밤이 있다. 혼자여도 괜찮다고 생각한 수없이 많은 날들에 대한 배신이라도 하듯 맹렬히 누군가를 원하게 되는 밤. 


오늘밤이 그랬다. 


해가 질때즈음부터 몸이 가라앉아서 이마에 손을 대보길 몇 번, 컨디션 난조 쯤으로 가볍게 치부했더랬다. 10시쯤 퇴근을 해 집으로 가다가 갑자기 드는 생각. '뭐지, 외로운가?' 몸이 안 좋은데 왜 외로움을 들먹였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냥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존재가 희미해진다는 느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기분에 몸이 온 몸으로 반항하듯 자가 치유라도 하는 것처럼 열이 났다. 머리속으로 지금 이 시간, 함께 하고 싶다고 말하면 묻지 않고 뛰어 나올 사람들의 이름을 떠올려 보지만 이내 지워버리고 만다. 사실은 혼자 있고 싶진 않은만큼 또 누구와도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친구에게 메시지가 온 것은. 


여느때처럼 남편에 대한 속상함이 잔뜩 느껴지는 내용이었다. 타인에게 말을 하고 안하고의 문제지 결혼을 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남편과의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문제가 없을 수가! 평생을 함께 산 가족과도 허구헌날 생기는 게 갈등이고 문제인데 짧게는 20년, 길게는 40년을 따로 살다가 한 순간 함께하는 두 사람이 사랑으로 그 모든 문제들을 가뿐하게 해결 가능할 순 없다. 물론 사랑, 우정, 의리, 책임감, 자녀와 같은 결혼의 여러 요건들이 그런 문제들을 극복가능하게 만들어준다는 데엔 이견이 없다. 물론 쉽진 않겠지만. 


친구중에도 시시콜콜 남편과의 이야기를 하는 친구가 있고 그렇지 않은 친구가 있다. 전자는 솔직하지만 피곤하고 후자는 편하지만 음흉하다. 후자의 평가가 비교적 박한 이유는 그런이들은 말을 안하는 것을 넘어 곧잘 관계를 꾸며대기 때문이다. 다행이 내 친구는 전자였다. 솔직한 타입이기도 하고 꾸며내는 데엔 영 재주가 없는지라 비교적 객관적으로 남편과의 문제에 대해 우리에게 이야기해주었고 우리는 친구의 편을 들기도 남편의 편을 들기도 하며 종종 친구의 부부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곤했다. 


친구 부부는 여느때처럼 또 싸움을 했고 이젠 남편의 꼴도 보기 싫다고 했다. 친구의 입버릇이었다. 나는 알고 있다. 저렇게 죽도록 꼴 보기 싫다가도 어느때면 세상 다정하게 두 손 잡고 마트에서 장을 보겠지. 어여쁜 아이들의 재롱을 보며 고단한 일상을 씻어내겠지. 쓴웃음이 났다. 또다른 한 친구는 그 이야길 듣더니 말했다. 너희 부부 싸우는 걸 보니 결혼은 못하겠다고, 혼자 사는 게 훨씬 나을 것 같다고, 둘이 있어 좋은게 뭐냐고. 


둘이 있어서 좋은 게 뭘까? 혼자라 좋은 건 또 뭐고. 둘이 있을 땐 혼자일땐 알지 못하는 안정감과 평온함, 그리고 가장 가까운 이만이 줄 수 있는 상처가 있을테고 혼자 일 땐 둘이 있을 땐 알 수 없는 자유로움과 오직 혼자라는 이유로 안고 가야하는 해결못할 불안감이 공존한다. 어떤 길을 택하든 쉬운 건 없는 법이었다. 


내가 지금 누군가를 이토록 간절히 원하는 것처럼, 친구도 지금 혼자인 순간을 무엇보다도 원하겠지.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남편의 짜증섞인 잔소리에서 벗어난 잠깐을 꿈꾸겠지.  나는 몸이 아프도록 누군가가 필요해 곁에 있을 사람은 찾는데 나와 가까이 지내는 어떤 이는 곁에 있는 누군가가 싫어 아무도 있지 않은 혼자를 바란다는 게 너무나도 아이러니했다. 


누구나 가보지 않은 길을 꿈꾼다. 그러나 인생에 백 도는 없는 법이다. 

옆으로 길을 터 힘겹게 새도로를 낼 순 있지만 어쨌든 죽이되든 밥이되든 주구장창 앞으로만 나아가야 한다. 고쳐나갈 순 있어도 없던일이 되진 않는 게 인생이지 않을까. 


결혼에 대해서도 물론 예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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