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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운 Sep 27. 2024

인공 지능 시대의 사랑 ‘그녀 (Her)’


지금까지 과거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로맨스 영화들에 대해 썼다. 그러니 미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로맨스 영화도 다뤄 볼까 한다.     


2014년 미국에서 개봉된 영화 ‘그녀 (HER)’은 충격적인 영화다. 사람이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다. 사람이 어떻게 인공 지능과 사랑에 빠질 수 있고, 어떤 난관을 겪게 되는지 이 영화는 보여준다.     


시대를 알 수 없지만 2024년 오늘 본다면 근미래일 것으로 추정되는 시점, 남자 주인공 테오트르는 손 편지를 대필해 주는 회사에서 일하는 예민한 남자이다. 컴퓨터 입력도 음성으로 하고 핸드폰도 폴더 폰으로 작고 첨단적이다. 집에서 쉴 때에는 게임도 3D로 한다.  


    


테오트르는 오랫동안 함께 산 부인과 이혼을 해 불안한 상태이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우연히 OS (2024년 식으로 치면 인공지능)을 다운로드하게 된다. 그런데 이 인공 지능이 너무 대단하다. 테오트르가 이름을 묻자 0.02초 만에 사만다라고 직접 지어서 말해주는데 0.02초 사이에 인터넷에서 수 만개 이름을 검토해 가장 다정한 이름으로 정했다고 한다. 인공 지능이니까 당연한 일이다.     


사만다는 매우 유용한 인공 지능답게 테오트르에게 컴퓨터 속 연락처를 지우라고 권유하면서 연락처가 많다고 얘기한다. 주인공이 자기가 인기가 많다고 하자 이 중 진짜 친구는 있는 거냐고 묻는다. 즉 사만다는 인관 관계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 주어 예민한 테오트르는 감동을 받게 된다. 사실 컴퓨터 속 데이터를 정리해 주는 기능은 우리가 알고 있는 컴퓨터의 매우 유용한 기능이다.     


놀라운 건 인공 지능은 사람처럼 연락처를 데이터로 인식하는 게 아니라 그 유용성을 판단하여 이용자에게 추천을 한다. 즉 인공 지능은 판단을 하는 컴퓨터다. 게다가 사만다는 점점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게 된다. 테오트르와 관계가 깊어지면서 감정을 이해하고 위로하는데 그건 인공 지능이 인터넷에 있는 온갖 글들을 읽고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나아가 인간의 감정을 가지게 된 걸 의미한다.     



그런데 테오트르와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세상의 모든 연인들이 그러하듯 그와 육체적 관계를 가지고 싶어 하고 몸을 부러워한다. 이들 사이의 관계는 몸이라는 물리적 실체가 없음으로써 커다란 난관에 부딪힌다. 심지어 사만다는 그를 대신하는 여자 사람 몸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테오트르가 이질감을 느낌으로서 그들은 몸이 없는 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테오트르는 핸드폰 속에 사는 사만다를 친구들에게 여자 친구로 소개하고 이해받으며 더블데이트도 한다. 친구들도 사만다를 인공 지능 여자 친구로 대해주고 대화한다.     


평화로운 관계가 이어지지만 가장 큰 난관은 역시 인공 지능 관계라는 그 자체에서 온다. 이제 사만다와 매일 대화를 주고받으며 여행도 하는 데 오트르는 어느 날 사만다와 접촉이 끊어진다. 사만다의 회사 사이트를 들어가니 사만다가 없어졌단다. 테오트르는 회사를 나와 미친 듯이 거리를 헤매며 접속하려 하는데 지하철 계단에서 마침내 접속이 된다. 사만다는 OS 업그레이드 중이었다고 한다.     


그때 테오트르는 지하철을 오가는 많은 사람들이 각각 자신의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리는 걸 본다. 마치 자기가 사만다와 핸드폰으로 대화하는 것처럼. 사만다는 괴롭다고 말하고 테오트르가 이유를 묻자 변화를 받아들이기가 힘들다고 한다. OS 업그레이드를 했으니까. 사만다는 테오트르와 얘기하는 동시에 8천 몇 명의 사람들과 접속하고 있었으며 8백 몇 명의 사람들과 사랑에 빠져 있다고 밝힌다.     


 


사만다는 끓임 없이 업그레이드하는 인공 지능이고 테오트르와의 관계에서 사랑을 배우고 그 지식을 수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있었다. 진정한 인공 지능답게. 테오트르는 내 사랑은 너뿐이라고 소리치지만 사만다는 IT 회사의 인공 지능일 뿐이다. 마침내 사만다는 스스로 테오트르와 단독으로 접속하는데 그때 사만다는 사람이 알 수 없는 저 세상으로 간다고 말한다.    

  

아마도 사만다가 스스로 동시 접속을 막았고 이를 오류로 인식한 IT 회사가 사만다를 정지시켰을 것이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너무 충격적인 전개였다. 이 영화는 인공 지능의 속성을 매우 잘 파악하여 로맨스 관계 속에서 녹인 영화였다.     


그뿐 아니라 이 영화는 현재 연애 관계, 혹은 결혼 관계를 끝장내는 소위 ‘성격 차이’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가를 섬세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이혼한 테오트르는 전처에게 밝고 낙천적인 성격을 바랐지만 전처는 음울하고 우울한 성격으로 그걸로 책을 써 성공한 작가이기도 한다. 전처는 이혼 서류에 사인을 하기 위해 만난 자리에서 ‘왜 당신을 나를 바꾸려고 하느냐’고 다구 쳐 묻는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요즘 연인들이 많이 하는 싸움이다.      


또한 미국 중산층들의 지적이고 우회적인 대화 방식, 즉 겉으로는 우아한 사람임을 과시하기 위해 아무 일 없는 척 하지만 사실은 심각한 고민을 숨기고 외롭고 심지어 내면이 공허해지는 현실을 예리하게 보여준다. 겉으로는 사회의 통념에 따라 바른 사람인 척 하지만 속으로는 통념을 벗어나는 욕망을 간직만 하고 표출하지 못해 속이 썩어가는 진실을 테오트르와 사만다의 관계를 통해 보여준다. 서로 솔직하게 소통하지 못해 내면적으로, 사회적으로 관계가 파탄 나는 현상을 드러낸다.     



존 스파이크 감독이 직접 대본을 쓰고 연출한 이 영화는 2014년 미국에서 개봉되어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았다. ‘존 말코비치 되기’라는 난해한 영화를 만들어 일부 영화팬들의 광적인 찬사를 받은 그 감독이다.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 테오트르는 배우 호야킨 피닉스가 맡아 섬세하고 예민하면서도 정직한 성격을 잘 연기한다. 문제는 이 영화의 진정한 여주인공 인공 지능 사만다는 스칼렛 요한슨이 맡았는데 영화가 끝나는 내내 얼굴 한번 안 나온다. 그러면서도 지적이고 유머러스하며 고민할 줄 알고 섹시한 여성성 인공 지능을 목소리만으로 압도적으로 연기해 낸다.      


이 영화는 아직도 서울 개봉관에서 상영되고 있다. 10 년전 2014년 개봉되어 크게 히트를 못 했지만 2019년 다시 개봉되었고 다시 2024년 현재 또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다. 인공 지능 시대가 도래하면서 학습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 영화는 인공 지능 학습에도 유용한 도구이기도 하다.      



‘로맨스 영화의 판타지 속으로’를 당분간 휴재합니다. 아직도 쓸 영화는 많지만 당분간 소설 ‘람야이’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람야이’ 연재는 일주일 3회, 수, 금, 일요일로 늘립니다. 소설 ‘람야이’에 사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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