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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운 Sep 06. 2024

미국 영주권 얻다가 만난 사랑 ‘그린카드’

‘그린카드’는 미국에 온 외국인들이 살 수 있는 영주권을 뜻한다. 멕시칸 등과 같은 남아메리카에서 미국으로 불법 이주한 이들에게 그린카드는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이는 티켓이다. ‘그린카드’는 아니지만 유럽에서도 이민자들이 합법적 거주증을 얻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몰려드는 이민자들을 어떻게 하느냐가 지금 미국과 유럽에서는 커다란 문제이고 어떤 정책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대통령과 정치 지도자가 바뀌고 있다. 우리도 자주 멕시코 국경 지대를 넘다 죽는 사람들, 지중해를 작은 보트를 타고 건너다 죽는 사람들 사진을 뉴스에서 많이 본다.      


영화 ‘그린카드’는 1990년 미국에서 개봉된 영화로 지금처럼 심각하지는 않지만 미국에 온 이민자들이 많던 때를 배경으로 한다. 단 이 영화에서 이민자는 남미나 아랍 쪽에서 온 사람이 아닌 잘 사는 나라 프랑스에서 온 사람이다.     



당시 프랑스 국민 배우라고 불리던 제라드 드파르디우가 연기한 남자 주인공 조지는 ‘그린카드’를 얻기 위해 중개인을 통해 뉴욕에 사는 여자 브론테와 혼인 신고를 한다. 첫 장면이 결혼 신고를 하러 가기 위해 서로 한 번도 본 적인 없는 두 사람이 카페 ‘아프리카’에서 처음 만나는 것이다. 첫 장면에서부터 이들은 이혼을 약속한다.     


브론테는 뉴욕 한복판에 있는 온실을 가진 아름다운 집을 사려는데 기혼자라는 증명이 필요해서 가짜 결혼을 했다. (뉴욕 한복판에 온실을 가진 집이 있다니 어마어마하게 비싼 집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영화 속에서 그녀의 집은 센트럴 파트 바로 옆에 있는데 그 지역은 세계에서 월세가 가장 비싼 구역이다)      


그녀는 뉴욕에서 정원사로 일하며 빈민 지역에 정원을 조성하는 게릴라 활동을 하고 있기도 하다. 비건으로 채식을 하며 집 안에 있는 정원에서 식물과 함께 사는 것에 행복감을 느낀다. 이 영화의 제목인 ‘그린카드’는 여 주인공에게는 초록 식물이 있는 집으로 들어가는 열쇠라는 의미도 가진다.     

  

둘은 조지가 영주권을 얻으면 바로 이혼하려고 하지만 이때 빌런이 나타난다. 이들의 결혼을 의심하는 ‘이민 조사국’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없지만 미국에서는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스토리이다. 금방 외국에서 온 사람인데 미국인과 결혼을 한 사람들을 조사하기 위해 ‘이민 조사국’에서 나오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결혼이 위장임이 밝혀지면 외국인은 본국으로 추방되고 미국인은 형사 처벌을 받게 된다. 그래서 2차로 이민 조사국에서 조사받을 때까지 둘은 서로를 속속들이 알기 위해 브론테의 집에서 동거를 하게 된다.     


브론테는 나무를 심어 뉴욕의 빈민 지역 아이들을 구원하겠다는 꿈을 꾸며 실천을 하고 있다. 반면 조지는 팔에 새긴 문신에서 볼 수 있다시피 초등학교만 겨우 나와 거친 길거리 생활을 했다. 하긴 이민자가 자기 나라에서 잘 살았다면 미국으로 올 이유가 없을 것이다. 브론테가 채식만 하는 데 비해 조지는 고기 없이 어떻게 식사를 할 수 있냐는 육식주의자이다.     


둘은 티격태격하면서도 가짜 부부 행세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서로 점점 가까워진다. 특히 자신을 프랑스에서 온 음악 작곡자라고 소개한 조지가 상류층인 브론테 친구의 집에서 피아노 연주를 해야 하는 위기에 처할 때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그는 피아노 연주를 해 낸다. 현대 음악 작곡가처럼 아주 기괴하게 피아노를 쳐낸다. 더구나 그걸 통해 브론테를 돕게 된다. 그러면서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최대 빌런은 미국 ‘이민 조사국’이다. 절정은 예상대로 둘이 ‘이민 조사국’에 가서 부부임을 증명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결말은 큰 스포임으로 쓰지 않겠다. 남자 주인공의 최대 목표가 ‘그린카드’를 얻는 것임으로 그걸 방해하는 최대 장애는 미국 정부가 되는 건 당연하겠다.     



이 영화는 흥행하지 못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중 하나는 프랑스 인이 그린카드를 얻고자 하는 데 있다. 당시에도 남미계 이주자들이 영주권을 얻는 데 목숨을 걸고 있었고 그걸 사회 전체가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엉뚱하게 가장 영주권을 얻으려고 할 것 같지 않은 프랑스 인이 불법 체류를 하다니. 관객에게는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영화의 개연성을 떨어뜨리며 흥미를 잃게 한다. 남미인이 영주권을 얻기 위해 위장 결혼을 하는 이야기라면 훨씬 나을 뻔했다.     


이 영화는 차들이 가득해 막힌 좁은 도로와 택시를 타는 뉴요커들 그리고 센트럴 파크를 구석구석 보여주는 등 뉴욕이 중요한 배경이 된다. 1990년대 미국에서는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흥행함으로써 영화의 중심이 서부의 LA와 더불어 동부의 뉴욕으로 갔음을 보여 주기도 한다.      


현실의 로맨스를 이루지 못하게 하는 많은 장애들이 있는데 이 영화는 그 장애를 불법 체류와 국가 권력으로 잡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로맨스 영화를 통해 현실의 가장 큰 이슈들을 접하게 된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도 크게 흥행하지 못했는데 그중 하나가 미국 대중의 기호를 위반한 것에도 있지 않은가 생각이 든다. 남자 주인공인 배우 제라드 드파르디우은 ‘마농의 샘’등과 같은 영화에서 꼽추를 연기하여 프랑스 국민 배우라는 호칭을 받았다.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는데 외모는 글쎄, 유럽식이다. 커다란 코, 큰 몸집 등 미국인들이 1990년대 선호한 외모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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