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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운 Aug 28. 2024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사랑 ‘카사블랑카’

산업 혁명기 여성의 참정권이 없던 시대를 거쳐 제1차 세계 대전 후인 영국에서는 1928년 현재와 같이 21세 이상의 모든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됐다. 전쟁 중 남성들이 전쟁에 나간 사이 여성들이 사회적 생산에 참여하면서 여성들의 사회적 존재감이 크게 인정된 탓이다. 이미 여성이 사회적 생산을 한 건 인류 역사가 시작되었을 때인 기원전부터인데 이게 웬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인식 속에서 여성이 주체적 인간으로 인정받았는지는 모를 일이다.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주인공 릭이 죽도록 사랑하는 여성 엘사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여성이다. 엘사는 유럽에서 나치에 대항하는 독립운동을 하는 남편을 두고 있지만 자신이 독립운동을 하지는 않는다. 나치에 대항하는 독립운동을 하는 지도자급 인물인 남편과 릭 모두에게 추앙을 받고 있지만 말이다.    

   

영화사에 길이 남는 명작 ‘카사블랑카’는 1942년 미국 워너 브라더스가 제작한 영화이다. 세계 문화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는 걸 보여주는 현상이다. 영화는 한창 세계 제2차 대전이 벌어지는 와중에 나왔다. 독일의 침략을 당한 동유럽과 프랑스의 독립 운동가들이 독일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기 위해 중간 기착지로 머무는 아프리카 프랑스령 카사블랑카에서 벌어진다.     


카사 블랑카는 프랑스령이긴 하지만 당시 프랑스는 독일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카사프랑카의 프랑스 경찰은 독일 나치에게 협력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카사블랑카에서 술집 겸 게임장을 하는 남자 주인공 릭은 미국인이다. 하지만 그는 미국인으로서 독일에 대항하는 유럽 여러 나라의 독립운동을 지원한 과거가 있고 현재 그의 술집 종업원들도 의심스럽다.     


단골손님이자 미국 비자를 불법적으로 파는 중개인이 술집에서 프랑스 경찰의 체포 중에 죽자 릭은 그가 지녔던 미국 비자를 손에 얻게 된다. 그날 그가 프랑스 파리에 있을 때 사랑했던 여자 엘사가 남자와 함께 나타난다. 그녀를 보는 릭의 감정은 소용돌이친다. 엘자의 남편은 스위스 출신의 유명한 독립운동 지도자. 엘사와 남편은 미국으로 갈 통행증을 구하려고 한다. (이후 스토리는 스포 방지를 위해 생략합니다)    


  

영화는 1942년 당시 중국 상해의 상황과 비슷하다. 상해에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있었고 많은 조선 독립운동 단체들이 숨어 있었다. 상해는 일본의 지배하에는 있었지만 실제로는 프랑스령이라 프랑스 경찰이 공무를 집행했다. 그곳에는 많은 한국 독립 운동가들이 있었고 커다란 술집을 하는 한국 남자가 있었을 수 있다.   

   

조선 독립운동의 지도자급 남자가 있었을 것이고 그의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을 수 있다. 릭과 같은 조선 남자가 만주에서 비밀리에 조선 독립운동을 돕는 동안 엘사와 같은 아름다운 여성을 만났을 수 있다. 아내는 남편이 일본 감옥에 끌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래서 릭과 같은 조선 남자에게 끌렸을 수 있다. 그리고 결국 남편이 감옥에서 탈출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남자에게 실상을 얘기하지도 못하고 떠났을 수 있다. ‘카사 블랑카’는 너무나 우리나라 1940년대와 비슷한 상황이라 소름이 돋는 영화이다.  

    

여주인공 엘사는 독립운동을 하는 남편과 독립운동을 돕는 남자 주인공 릭으로부터 여신처럼 사랑을 받고 있지만 여신처럼 능동적인 존재는 아니다. 능동적인 결정을 하는 것은 릭과 남편이다. 단지 여신으로 대상화되고 추앙받는다. 당시 우리나라만 생각하더라고 열성적으로 독립운동을 한 많은 여성들이 있었음을 생각해 봤을 때 아직 대중의 인식에서 여성은 이렇게 사랑만 받는 대상화된 존재인 것이다.     


 

만약 엘사 역을 맡은 잉그리드 버그만처럼 젊고 예쁘지 않다면 여신처럼 추앙받을 수 있을까? 현실 속에서 대부분의 여성은 잉그리드 버그만처럼 우아하고 예쁘지 않아 추앙받는 존재로 다소곳하고 편하게 살아갈 수 없다.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다만 이 영화는 로맨스가 얼마나 시대의 영향을 받는지 잘 보여주는 영화이다. 남자 주인공 릭은 결국 자신의 사랑을 선택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위하여 자신의 사랑을 희생하는 선택을 한다. 우리 주변에 사랑 이야기는 많지만 대중이 감명을 받는 로맨스 이야기는 이렇게 우리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가장 핵심적인 가치를 드러낸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 까칠한 츤데레지만 한 여자를 죽도록 사랑하는 역할을 한 험프리 보가트는 한때 모든 미국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우아한 여자 엘사를 맡은 잉그리는 버그만은 외모 못지않게 섬세한 연기를 잘해서 영화를 불후의 명작으로 만들었다. 


릭이 자주 쓰는 대사 ‘Here’s looking at you, kid’는 한국에서는 ‘당신이 눈동자에 건배를’이라고 멋지게 번역되어 있다. 이 말을 사실 ‘내가 지켜보고 있어’라는 뜻으로 영국 술집에서 동석하는 사람이 상대방이 돈을 훔쳐 갈까 봐 경고하는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험프리 보가트가 애드리브로 던진 말이다. 그래서 맥락 없이 여기저기 나오는데 사랑하는 여자에게 ‘내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라는 낭만적인 문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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