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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운 Aug 25. 2024

산업 혁명기의 사랑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이 1813년 출판한 고전 소설에 기반한 영화. 소설은 출간한 해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영화는 소설의 가장 핵심 스토리인 영국 중산층 여성 엘리자베스와 귀족 남성인 리아스의 러브 스토리이다. 영화의 배경인 1700년대는 영국이라면 아직 중세의 산물인 귀족 계급이 강건하게 지키고 있으면서도 막 산업 혁명이 일어나는 시기이다.    


 

런던과 같은 도시에서는 공장이 생기고 노동자 계층이 생겨났으며 이들 중 귀족 출신이 아닌 이들이 돈을 벌어 자본가 계층 즉 부르주아들이 되었다. 아직 소자본가인 이들은 귀족처럼 행세하기를 원해 교육을 중요시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들의 자녀들은 교육을 받고 특히 많은 여성들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는 당시 종이에 인쇄된 책들이 대중화된 시기이기에 가능하기도 했다. 값싸게 책을 구매할 수 있게 된 부르주아 딸들은 소설을 읽기 시작한다. 이때 대히트한 책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다.      


영국 시골에서 소수의 하인을 두고 직접 소와 오리를 키우는 자영업자인 딸 다섯 집안의 둘째 딸 엘리자베스는 책 읽기를 좋아하고 소박한 성품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딸들을 부잣집 남자들에게 시집보내는 것을 일생의 과제를 여기고 있다. 동네에 성을 가진 영주인 디아스가 방문하러 온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어머니와 딸들은 그가 연간 얼마의 수입을 가지고 있는지를 훤히 알고 있으며 그런 남자와 결혼할 걸 꿈꾼다. 그 정도의 부자면 지참금도 필요 없을 거라고 말하면서.     


그렇다! 당시는 아직도 미혼 여자들이 결혼을 하려면 지참금을 내야 하는 시대였다. 마치 팔려 나가는 것처럼. 20대 초반과 10대인 딸들의 관심은 온통 ‘어떤 남자를 만나 결혼하느냐’였다. 당시 여자들이 따로 독립적으로 경제생활을 할 수 없었던 조건을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귀족 계급은 교양과 품위로 가리고 있지만 돈은 그들의 삶을 받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고 결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느냐 피아노는 치느냐를 속닥거리는 우아한 티타임에서도 연간 수입이 얼마냐를 노골적으로 얘기하는 게 귀족이었다.     


사교 자리 품위 있고 위선적인 말들을 비틀고 딴지를 거는 엘리자베스에게 퉁명스러운 괴짜인 디아스가 끌리게 된다. 말타기보다는 걷기 좋아하고 진심을 다해 언니의 사랑을 응원하는 엘리자베스는 진실하고 착한 성품이다.      

마침내 디아스는 엘리자베스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하지만 재산만 노골적으로 따지는 엘리 어머니의 말에 속물이라고 질색을 하는 디아스의 말을 엿들은 엘리자베스는 ‘노 (NO)’라고 답한다. 1800년대 낮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부르지아 집안의 여성들에게는 가슴이 미어지는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는 파격적인 상황이다. 그래서 당시 이 소설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나 보다.    

 

영주인 디아스는 여러 가지 면에서 엘리자베스보다 훨씬 조건이 좋은 남자지만 이후 엘리자베스를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하며 사랑을 알아가는 남자가 된다. 이 부분도 당시 부르주아 계급 여성들의 가슴을 두드리는 포인트가 되었을 것이다. 조건이 좋은 귀족 계급의 남자가 평범한 조건의 나 같은 여자를 위해 이토록 노력을 하다니. 결국 엘리자베스와 디아스는 계급을 넘어 사랑을 이룬다. 

     

사실 1800년대에도 귀족 출신이 평민과 결혼하는 일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앞서 영화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도 말했지만 중세에 이어 중세의 끝자락인 이때까지도 남녀는 면밀하게 연수입과 같은 조건을 따져 맞춰 결혼했다. 감정은 그다지 중요한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이런 면에서 이 소설은 당시 조건보다는 감정을 결혼의 조건으로 주장한 대단히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첫 장면에서부터 여주인공 엘리자베스는 풀밭에서 책을 읽으며 거니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무도회장에서 만난 귀족인 디아스를 만나는 자리에서도 예의 바르며 순종적이기보다는 무뚝뚝한 디아스를 비틀고 냉소한다. 디아스가 엘리자베스가 그렇게 예쁘지는 않다고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걸 엿듣고는 저런 남자와는 평생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외친다. 상당히 독립적인 생각을 가진 여성이다.      


여주인공이 이런 성격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때문이다. 매사 약간은 반항적이고 냉소적이면서도 딸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 때문에 엘리는 당시 시대가 요구하는 순종적이고 조신한 여성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비틀어 말할 줄 아는 여성이 되었다.      


결혼을 위해 연소득을 따지고 외모를 보는 어머니와 자매들의 대화를 대놓고 시전한 건 작가가 그걸 비판적으로 보았다는 뜻이다. 결국 두 남녀가 사랑해서 결혼한다는 결론을 낸 것도 겉으로는 품위 있고 우아한 척하면서도 결국 돈으로만 결혼을 따지는 세태를 비난한 것이다.      


이런 결론은 여성이 사회적으로 하나의 존재로서 자신을 세우는 상황을 잘 드러내고 있다. 1847년 샬롯 브론테가 가정교사로 돈을 버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제인 에어’를 출간한 것도 이러한 흐름을 잘 보여준다.     

다만 엘리자베스가 디아스로부터 청혼을 받고 나서 마지막 장면에 아버지의 허락을 받으러 가는 것은 당시 시대의 한계를 보여준다. 결국 여자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이가 아버지에서 남편으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 ‘오만과 편견’은 독립적이고 낙천적인 여주인공과 혼자 잘난 척하며 까칠하고 여자 주인공에게 충성하는 남자 주인공이라는 캐릭터를 시작한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거의 첫 번째 영화 (소설)이다. 더욱 중요하게는 결혼에 있어서 낭만적인 감정의 개입과 독립적인 여성 캐릭터의 출현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알린 내용에 있다. 


* 이 영화에서 엘리자베스를 연기한 키이라 나이틀리는 책을 읽기 좋아하면서도 독립적이고 당돌한 면이 있지만 사려 깊은 여주인공의 캐릭터를 연기와 외모 모든 면에서 훌륭하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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