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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운 Aug 21. 2024

유럽 중세 시대의 사랑 ‘트리스탄과 이졸데’

로맨틱한 사랑이라는 개념은 사실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유럽으로만 보자면 그리스 로마 시대 남녀 간의 사랑은 주로 육체적 결합이지 영혼의 결합 어쩌고 하지는 않았다. 큐피드의 사랑의 화살을 맞은 신이나 인간은 큰 고난 없이 육체적 결합을 하지만 가슴이 절절한 감정을 동반하지 않았다. 

    

가슴이 절절한 사랑은 흔히 중세 시대의 로맨스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본다. 영혼의 결합이라든가 죽음을 넘어서는 사랑 같은 개념 말이다. 왜냐하면 이 시대의 로맨스는 주로 불륜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그런 불륜을 주요한 소재로 잡고 있다.     


로마 세력이 후퇴한 중세 초기, 영국 국토는 여러 영주들이 분할되어 세력을 다투는 여러 국가로 분열되어 있었다. 다만 영국에서 떨어진 아일랜드에서는 단일 군주가 다스리는 국가가 성립되어 있었다. 영화는 이들이 서로 영토를 차지하고 군주가 되기 위해 전쟁을 하는 역사가 배경이다. 

     

영화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분할되어 있던 영국이 아일랜드와 각축을 벌이면서 하나의 나라로 통일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콘웰의 마크 왕이 통일을 주도해 나가는데 트리스탄은 그의 충실한 기사였다. 트리스탄은 어릴 적 마크왕의 도움으로 생명을 구하고 또한 그가 키워줬기 때문에 그에 대한 엄청난 충성심을 가지고 있다.     


이졸데는 적국인 아일랜드의 공주이나 전쟁 도중 부상당한 트리스탄이 아일랜드에 흘러 들어왔을 때 그의 목숨을 구하며 사랑에 빠진다.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과 만나는 과정이 참 절묘하게도 우리나라의 고전 ‘호동 왕자와 낙랑 공주’를 떠올리게 한다. 국가와 전쟁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으니 로맨스에 극적인 요소가 더해진다.     


결국 이졸데는 아버지인 아일랜드 왕의 정략적인 결정 끝에 마크 왕의 아내가 되는데 마크 왕과의 결혼을 위해 이졸데를 수행하게 된 기사가 트리스탄이다. 이졸데는 콘웰로 와서 한번 보지도 못한 마크왕과 결혼을 하지만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서로에 대한 열정을 숨기지 못하고 만나게 된다. 결국 불륜이다.      


그러나 이러한 로맨스가 극적이고 감정적인 로맨스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유럽 중세에서는 귀족 남녀 간의 결혼이 주로 정략적 판단에 의해 가문 간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끼어드는 자리가 거의 없었고 결혼한 영주의 아내가 그의 성에 있는 기사와 사랑에 빠지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불륜은 그런 상황을 그린 전형적인 중세 로맨스이다.      


영주의 아내가 불륜을 하는 만큼이나 남편인 영주는 그보다 더하게 여러 여자와 결혼 외 관계를 했다. 이 영화에서는 영국 국토를 통일한 아서왕의 원형인 콘웰의 마크왕을 영웅화하기 위해 그런 부분이 나오지는 않지만 말이다. 잘 생긴 기사와 영주 아내와의 사랑은 원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므로 감정이 크고 격동적일 수밖에 없다.      



이 영화에서도 이졸데는 트리스탄에게 ‘삶과 죽음을 넘어서는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이다. 두 사람의 영혼의 결합은 영원하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또 대부분 연애가 비극인 것처럼 이 영화에서도 남자 주인공 트리스탄이 죽는 것처럼 끝난다.     


영화 후반기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관계를 눈치챈 마크왕은 대범하게도 둘에게 배까지 내어주며 도망가라고 배려한다. 그러나 트리스탄은 이를 거부하고 마크왕을 위해 전쟁에 나서서 죽는다. 중세 유럽 기사들은 사랑을 넘어서며 영주에 대한 충성을 한치의 어긋남이 없이 수행하는 것이다. 죽음을 넘어서는 사랑이라고 연인에게는 속삭이지만 결국 영주에 대한 충성을 넘어서지는 않는다. 이것이 중세 유럽 기사들의 기사도였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유럽의 유명한 중세 설화로 여러 가지 형태의 이야기로 전해진다. 결국 가장 유명한 중세 기사 이야기인 ‘아서왕 이야기’ 속 로맨스 이야기의 하나로 들어간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므로 열정적이고 극적이다. 앞서 소개했던 한국 영화 ‘연애 없는 로맨스’처럼 무한한 선택의 자유 속에서 아무런 장애도 없이 아무렇게나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그런 로맨스가 아니다. 사는 것 아니면 죽음뿐인 사랑이다. 중세 유럽의 로맨스부터 목숨을 바치는 열정, 절절한 그리움등이 남녀 간의 로맨스에 끼어들어 가게 되었다.     


*2007년 개봉된 이 영화는 케빈 레이놀즈가 연출했다. 케빈 레이놀즈 감독은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을 한 ‘로빈 후드’로 크게 흥행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사극을 잘 만드는 감독이다. 이 영화는 크게 흥행하지는 않았지만 유명세가 그렇게 낮은 데 비해 완성도가 높다. 가슴을 찌르는 듯한 비극적인 로맨스도 좋고 웅장한 영국의 풍광도 아름답다. 남녀 주인공 배우들도 유명하지는 않지만 수려한 외모에 연기도 잘했다. 흥행이 왜 잘 됐는지 궁금한 영화이다.         



제가 오늘 스토리 분야 크리에이터로 선정되었습니다. 올해 1월 4일 '중년 여성의 품위 있는 알바 생활' 연재를 시작한 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2화를 올리고 난 후 하루 종일 핸드폰이 부들거렸던 게 엊그제 같네요. 4화까지 올린 후 순식간에 조회수 17만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출간 계약을 하고 하반기에 책이 나오게 됩니다. 브런치 스토리 덕분에 글을 계속 쓰는 용기를 얻었고 기반을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브런치 스토리! 계속 꾸준히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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