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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운 Aug 18. 2024

스마트폰 시대의 사랑 ‘연애 빠진 로맨스’


요즘은 로맨스 장르 영화를 극장에서 보기 어렵다. 드라마에서는 로맨스 장르가 차고 넘치는데 말이다. 20년 전만 해도 멜로 로맨스 영화가 꽤 흥행했고 극장에서도 많이 개봉했다. 그런데 2020년대 요즘은 로맨스 영화 자체가 잘 없다.      


2021년 개봉된 ‘연애 빠진 로맨스’도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영화로까지 제작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커다란 성공인 영화다. 더군다나 아시아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아이돌 스타가 나오지도 않는데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한국 현재의 현실을 재미있게 보여 주는 좋은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두 주인공의 주요한 소통 수단은 당연히 스마트 폰이다. 언제 어디서나 소통할 수 있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그런 통신 수단. 여기 두 주인공도 항상 핸드폰으로 소통한다. 만나게 되는 주요한 매개체는 스마트 폰에 깔린 데이팅 어플. 진지하게 사귀지 않고도 남녀가 하룻밤을 지낼 수 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정부의 청년 정책 프로그램에 지원한 여주인공의 서류가 화장대 위에 보이고 곧이어 ‘나는 할 수 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야 나!’하는 메모가 보인다. 요즘 20대 청년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주요한 키워드다. 그러나 여주인공은 꿈속에서 섹스를 한다.     


핸드폰 속에서는 여주인공이 전 남자 친구와 헤어지며 홧김에 깔아 놓은 데이팅 어플이 계속 알람을 보낸다. 고민 끝에 여주인공 자영은 어플 속에서 고뇌하는 얼굴로 웃는 남자 우리를 선택해 만난다.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우리 전통의 설날) 둘은 만나서 속을 보여 주지 않는 서투른 대화 끝에 바로 모텔로 가 몸으로 만난다.     

 

잡지사 기자인 우리가 데이팅 어플로 자영을 만난 이유는 섹스 칼럼을 쓰기 위해서다. 막내 기자인 우리는 편집장의 강권으로 섹스 칼럼을 떠맡았다. 자영과의 첫 섹스 후 애매한 섹스 칼럼을 써 대박을 터트린다. 칼럼을 쓰기 위해 우리는 자영을 계속 만나기로 하고 두 번째 만남에서 이들은 진지한 대화를 하며 서로에게 위로를 얻는다.     


이들의 연애에는 거리낌이 없다. 신분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부모가 말리지도 못한다. 이들의 연애를 막는 것은 자영의 말대로 3천만 원의 학자금 대출과 5천만 원의 전세 대출이다. 8천의 빚을 떠안고 낭만적인 연애를 할 수는 없다고 자영은 토로한다.      


이게 정확히 요즘 청년들이 쉽게 연애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그들은 현실의 삶을 연애도 하지 못할 만큼 무겁게 받아들인다. 연애할 자유는 차고 넘치지만 현실의 학자금과 집값이 그걸 가로막는다. 남주인 우리는 연애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에서 월급을 받기 위해 연애 비슷한 것을 시작한다.     



둘은 두 번째 술자리에서 진지한 감정을 느끼고 연애에 들어간다. 이걸 섹스 칼럼으로 쓴 우리는 대박을 터뜨리고 그러나 그걸 자영이 알게 되어 위기를 맞는다. 이 과정은 청년 여성이 어떤 차별적인 위치에 있는가를 보여준다. 남성인 우리가 공개하는 섹스 실화는 인기의 소재가 된다. 그러나 그 실화 속 여성 자영은 엄청난 위기를 느낀다. 자신의 정체가 공개되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굴레에 빠지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다.      


만약 섹스 칼럼을 여자인 자영이 써서 공개하고 인기를 끌었다면 남자인 우리가 그렇게 위기의식을 느꼈을까? 일단 노골적인 섹스 칼럼을 여자가 쓰기도 힘들다. 그리고 공개해도 남자는 인생의 위기를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 속 에피소드 자체가 한국 청년 여성의 차별적인 위치를 드러내 보여준다.     


다만 청년 여성들의 철저한 평등주의 사고도 보여 준다. 자영은 우리와의 데이트에서 밥값도 모텔비도 철저하게 반반 나눈다.      


어쨌든 여주인공 자영은 자기 이름이 칼럼 속에 나오지는 않았다는 이유로 요즘의 보통 여자들 같지 않게 영웅적인 면모로 남주를 용서한다. 그러나 그녀는 데이트 과정에서 보여 준 우리의 행동이 진심에서 우러나왔을까 의심한다. 자영의 전 남자 친구에게 복수하기 위해 전남친의 결혼식에 함께 가서 축의금 명부를 훔쳐 나온 우리의 행동이 진짜 자신을 위한 진심이었을까? 술집에서 그녀를 위로했던 말들이 진짜였을까? 의심한다.    

 

현재 우리는 무한 선택의 시대에 살고 있다. 상품을 사는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무제한의 자유를 누린다. 하지만 선택 후 책임을 져야 한다. 청년의 연애에서도 그렇다. 그들은 무제한적으로 상대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연애를 하지 않는다. 책임을 질 수가 없으므로.     

 

그리고 선택하는 순간 우리의 선택이 진심일까 생각할 수 있다. 사실 선택지로 놓인 많은 것들에는 이미 선택의 카테고리를 만든 손이 있지 않을까, 그들이 조작한 건 아닐까 생각할 수 있다. 나의 선택이 맞을까? 무한 선택의 시대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회의한다.      



영화는 무한 선택의 시대, 무한 경쟁의 시대 요즘 청년들의 고민과 한계를 보여 준다. 그러나 다음 해 설날 평양냉면 집에서 무작정 기다리는 우리의 노력에 감동하여 자영은 그의 손을 잡는다. 자영은 이렇게 외친다. ‘대화도 하고 섹스도 하고 그러려고 사랑하는 거 아니냐? 근데 그게 왜 그렇게 어렵냐? 우리 센 척 그만하자고. 다들 외롭잖아 씨발.’ 진짜 사랑은 아직도 살아 있다.      


* 주연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 손석구는 사실 로맨스 영화에 적합한 얼굴은 아니다. 선 굵은 얼굴로, 보통 로맨스 영화에 나오는 꽃미남형 남자 배우들과는 다르다. 그러나 이 로맨스 영화는 여자들의 환상을 자극하는 류가 아니라 현실적인 로맨스물이라 연기 잘하는 손석구 배우에게 맡겨진 것 같다. 여자 주인공 또한 엽기적으로 재기 발랄한 캐릭터라 드라마의 로맨스물과는 다른 이미지의 전종서에게 맡겨진 것 같다. 현실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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