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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운 Aug 11. 2024

영원한 사랑 3 ‘번지 점프를 하다’

영원한 사랑은 기억 속에서 존재한다는 걸 2001년,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는 보여준다. 그 사랑이 어떤 형태인지에 상관없이.      


2,000년 고등학교 국어 교사인 인우는 반 학생인 열일곱 살의 남학생 현우를 보고 가슴이 떨린다. 새끼손가락을 편 채 물건을 집는 버릇이라던가 과거 첫사랑이 한 말을 그대로 하는 하는 이상한 남학생 현우. 이미 결혼을 해 아이까지 두고 있는 남자 인우에게는 세상이 무너지는 일이다.    


  


현우의 책상 위에 대학교 때 만난 첫사랑 태희가 준 라이터가 있는 걸 발견한 인우는 결국 감정을 숨길 수 없게 된다. 현우를 바라보는 사랑의 눈빛을 감출 수 없게 되고 학교 안에는 인우가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난다.     


영화 속에서 현우는 죽은 인우의 첫사랑 태희의 환생(?)이다. 그래서 태희처럼 새끼손가락을 편 채 물건을 집고, 태희처럼 말을 하며, 운명처럼 태희가 인우에게 선물로 준 자신의 초상화를 그린 라이터를 가지고 있다.  


사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환생이라니!! 합리적인 사고라면 태희를 그리워하는 인우의 짙은 사랑이 기시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진짜 남자를 사랑하게 된 인우가 현우를 태희의 환생이라고 믿어 버리게 된 일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사실 동성애 영화로 보는 것이 맞다. 2001년에 개봉된 이 영화를 2017년 재개봉되는 데에는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변한 것이 이유이다.      


미국의 동성애 영화인 ‘브로큰백 마운틴’이 2006년 한국에서 개봉되었다고 2018년 재개봉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2017년, 18년경 한국에서도 예술에서의 동성애 코드에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는 뜻이다.     


인우와 현우의 사랑은 방해하는 것은 당연히 사회의 통념이고 둘은 결국 뉴질랜드로 여행을 떠나 번지 점프를 하며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결말을 맞는다. 미국 영화 ‘브로큰백 마운틴’보다도 몇 년 앞서서 한국 영화인 ‘번지 점프를 하다’가 놀라운 동성애 영화를 보여 준 것이다.     


인우가 사랑한 것이 첫사랑의 환생이든 남자인 현우이던 둘은 절벽에서 뛰어내리며 영원한 사랑을 완성한다.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비극일 수밖에 없다.      



영원한 사랑을 원하는가? 이루어지는 사랑은 지리 멸멸하고 구차하고 잡스러울 수밖에 없다. 현실의 모든 면에서 사랑을 해야 하니까. 영원한 사랑이란 환상 속에서, 기억 속에서밖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현실 속에서 영원한 사랑을 원한다. 환상 속에 순결하게 존재하는 사랑이라는 투명 구체를 현실이라는 진흙 속에서 굴리고 싶다. 그래서 때를 잔뜩 묻히고 싶다. 그런 후 어느 날 구체의 진흙을 닦아 내어도 그 순결함이 그래도 남아 있다면 그리고 햇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난다면 그게 바로 영원한 사랑일 것 같다.


      


*‘번지 점프를 하다’에서 남자 주인공 인우의 역할을 맡은 이병헌의 연기는 25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뛰어나다. 그러나 더욱 눈이 가는 배우는 여주인공 첫사랑 태희 역을 맡은 이은주이다. 이 영화에서 도도하면서도 청순한 이미지로 나오는 배우 이은주는 이 영화 이후 전성기를 누리다 스물다섯의 나이로 급작스럽게 사망한다. 생전에 태희를 스스로도 좋아하는 캐릭터이라고 말해서 더욱 인상적으로 보인다. 안타까운 여배우이다. 무엇보다 동성애 코드를 교묘하게 피하면서 로맨스 영화를 완성해 낸 김대승 감독에게 탄복한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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