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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운 Aug 07. 2024

기억 속의 사랑 1 ‘이터널 선샤인’


연인이 사랑에 빠진 후 대략 3개월간은 성적 호르몬 작용이 열정에 불을 붙인다. 물론 사랑이 시작될 때 호르몬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이 일단 맞아야 한다. 외모적인 이끌림 (꼭 미녀나 미남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취향이 더 큰 작용을 한다), 지적인 수준 (완전히 일치할 필요는 없다), 취향과 같은 사회적인 조건 등등이 그렇다.      


그런데 약 3개월 후 열기가 사라지면서 연인에 대해 안 보이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소위 눈에서 콩깍지가 벗겨진 후 말이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는 그런 연인이 헤어진 이야기이다.   

   

미국 뉴욕 정도에 사는 조엘은 기억을 지워주는 병원 라쿠나사 (가상의 병원)에서 편지를 받는다. 전 여자친구 조엘이 자신과의 기억을 지웠으므로 그녀를 보면 아는 체하지 말아 달라는 내용이다. 화가 난 조엘은 병원으로 달려 가 자신도 그녀와의 기억을 지워 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영화가 그렇게 시작하지는 않는다. 어느 날 아침 평소처럼 침대에서 일어나 무미건조하고 반복적인 하루를 시작한 조엘은 직장으로 나가려다가 자신의 자동차가 조금 부서져 있는 걸 발견한다. 짜증이 난 조엘은 전철을 타려다가 충동적으로 바닷가 동네로 가는 기차를 타고 해변에서 오렌지색 후드티를 입은 여자 클레멘타인과 만난 후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이건 조엘의 기억이다. 기억을 지우기로 한날 밤, 조엘은 수면제를 먹고 일찍 잠이 들고 병원 기술 직원이 찾아와 조엘의 머리에 기계를 씌우고 기억을 지우는 시술을 시작한다. 그런데 기억을 지우려면 기억을 먼저 되살려야 하기 때문에 조엘이 클레멘타인을 만난 장면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기억을 떠올려보면 조엘은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상을 지내는 재미없는 남자이고 클레멘타인은 파랗게 염색한 머리에서 알 수 있다시피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여자이다. 조엘은 클레멘타인의 그런 성향을 좋아하고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헤어지는 것도 그것 때문이다. 함께 살기 시작한 후 어느 날 클레멘타인이 술에 취해 늦게 집에 들어오자 조엘은 어떤 남자를 만나고 왔냐고 추궁하며 헤픈 여자라고 비난한다. 조엘의 자동차는 그때 클레멘타인이 부서뜨린 거다. 둘은 그래서 헤어졌다.      


그러나 기억 속에서 조엘은 클레멘타인과 행복했던 순간들이 너무 떠오르고 도저히 지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기억을 지우는 시술 중에 그걸 깨달은 조엘은 멈추기로 결정하고 꿈속에서 클레멘타인에게 호소하는데 그건 기억 조작이다. 실제로 그런 추억은 없었으니까. 그러나 클레멘타인의 충고대로 기억의 경로를 쫓아가는 시술을 무시하고 클레멘타인이 없는 조엘의 기억 속으로 가 숨기로 한다.   

   

시술 기술 자을 혼란시키기 위해 조엘의 어린 시절 기억으로 들어가고 그곳에서 클레멘타인은 이웃집 아줌마로 혹은 옆집 여자애로 등장해 조엘을 돕는다. 하지만 병원 의사가 나타나 주사를 놓고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시도는 실패한다.      



다시 조엘은 제일 처음 클레멘타인을 만났던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바닷가 저택 속으로 클레멘타인과 들어가는데 그때 조엘은 다른 여자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클레멘타인을 거부한다. 그래서 저택 안에서는 눈이 내리고 천장과 기둥이 무너지고 바닷물 속에 침몰한다. 초현실적인 장면이지만 조엘의 기억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가능하다.     

노련한 의사는 조엘의 기억을 지우는 데 성공한 후 아침이 되어 떠나고 조엘은 침실에서 평소처럼 눈을 뜬다. 그리고 다시 영화의 첫 장면처럼 출근을 하다 충동적으로 바닷가 동네로 가는 기차를 타고 클레멘타인을 다시 만난다. 둘은 기억을 모두 지워 전혀 모르는 남녀이다.      



그런데 서로 강한 이끌림을 느끼는데 그때 클레멘타인 앞으로 병원으로부터 온 녹음테이프가 도착한다. 병원에서 실직한 직원이 보낸 거다. 무언지 모르는 두 사람은 함께 녹음테이프를 듣게 된다. 그건 클레멘타인이 기억 지우는 시술을 하기 전 기록용으로 녹음한 조엘이 너무 지루하고 지겹고 더 이상 얼굴도 보기 싫다는 내용이다. 한편 조엘 앞으로도 병원 직원이 보낸 녹음테이프가 도착하고 그건 클레멘타인이 너무 충동적이고 지적으로 수준이 낮고 헤프다는 내용이다. 둘은 경악하고 그대로 헤어지기로 한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둘은 헤어지질 못한다.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음에도 그 너머가 있음을 깨달은 눈빛들이다.      


들끓는 열정이 끝난 후 서로 얼굴을 보기 조차 싫은 상황이 와도 서로 헤어질 수 없는 사랑이 있다. 좋은 면, 나쁜 면, 그리고 서로 상처를 입히고 입은 후에도 헤어질 수 없는 순간 말이다. 그건 상대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순간이 아닐까? 그때 어쩌면 영원한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일까?   

   

* 이터널 선샤인 (영원한 햇살)은 ‘영원한 사랑’을 뜻한다. 17세기의 영국 시인 알렉산더 포프의 ‘티 없이 순수한 마음에 이터널 선샤인 (영원한 햇살)이 내리쬐니...’ 시에서 나오듯. 이 영화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일반적인 전개를 따르지 않고 기억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장면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대단히 초현실적이다. 마치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 그림 ‘기억의 지속’을 영화로 구현한 듯하다. 그러나 영화를 이해하게 되면 각본을 쓰기도 한 프랑스 감독 ‘미셸 공드리’에게 탄복하게 된다.     


그리고 정통 슬랩스틱 코미디언 짐 캐리를 가장 우울한 남자 주인공인 조엘 역에 캐스팅한다. 이로써 그 자체가 영화의 슬픈 내용과 어우러져 초현실적 부조리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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