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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운 Jul 31. 2024

영원한 사랑 1 ‘노트북’

  

영원한 사랑이란 존재하는가? 내가 20대였을 때는 영원한 사랑을 믿었다. 두 번 이성과의 연애를 했지만 매번 처절하게 실패하면서 영원히 변치 않을 사랑을 바라고 바랬다. 매번 제어할 수 없는 열정과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 선택, 그리고 이어지는 사랑의 실패. 그게 내 20대 사랑을 규정짓는 순서였던 것 같다.      


영화 ‘노트북’은 영원한 사랑을 얘기한다. 미국의 동부 시골 동네 제재소에서 노동자로 일하는 10대 후반의 노아는 여름휴가를 맞아 그곳으로 온 10대 후반의 부잣집 딸 엘리에게 한눈에 반한다. 그리고 아주 늙어 요양원에서 치매로 자신을 못 알아보는 예쁜 할머니 엘리의 손을 잡고 함께 죽는다.      


10대의 노아와 엘리는 성 호르몬이 폭풍 치는 시기의 성애를 거침없이 표현하며 위험해 보인다. 엘리의 부모가 둘 사이를 말리자 엘리는 소리친다. ‘엄마는 아빠를 사랑하는 게 맞아요? 둘은 키스도 서로 안 하잖아!’     


성 호르몬이 폭풍 치는 시기의 열정적 사랑을 얘기한 유명한 스토리는 또 있다. 셰익스피어의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 10대인 로미오와 줄리엣도 화려한 파티에서 한눈에 서로에게 반했다. 그래서 로미오는 줄리엣의 집 담벼락을 기어올랐다.     


10대의 사랑은 성애가 점령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두 사랑은 모두 사회적 조건 때문에 방해를 받는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적대적 집안 관계 때문에 사랑을 이루지 못하듯 노아와 엘레는 사회적 계급 때문에 방해를 받는다.     


1940년대 미국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던 시기, 노동자로 일하는 노아를 엘리의 부모는 정말 무시한다. 노아를 파티에 초대한 엘리의 부모는 노아에게 ‘뭐 하고 먹고사냐?’ ‘돈은 얼마나 버느냐?’고 단도직립적으로 무례하게 묻는다. 대학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노아에 비해 엘리는 개인 가정교육으로 프랑스어와 사교춤을 배우며 뉴욕에 있는 명문대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노아는 당시 보통의 미국 청년들처럼 병사로 세계 제2차 대전에 참전해 절친을 잃는다. 그동안 엘리의 엄마는 노아가 엘리에게 보낸 편지들을 차단해 둘의 교류를 끊어 놓는다. 그 사이 엘리는 전쟁에서 장교로 복무하고 돌아온 방직 회사 사장 아들 론의 청혼을 받는다.     


계급적 차이는 노아와 엘리는 격정적이고 솔직한 사랑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이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론과의 결혼을 앞둔 엘리가 노아를 다시 찾았을 때 노아는 엘리에게 묻는다. 부모의 뜻에 따라 프랑스어 공부를 하고 대학에 진학하고 그림을 그만두고 파티에 나가는 그런 거 말고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뭐냐?’고 묻는다. 머리를 흔들며 괴로워하던 앨리는 약혼자 론을 찾아가 ‘당신을 사랑하지만 노아와 있으면 진짜 나 같다! 당신과 있으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고 소리친다.

    

가장 자신의 모습이 될 수 있게 만드는 연인. 재산, 지위, 매력적인 외모 그런 거 말고 미친년처럼 격동하는 엘리의 감정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 보일 수 있는 남자. 엘리는 노아를 선택한다.     


나도 20대 후반 남편과 연애할 때 막 열정에 압도되기보다는 잘 맞고 편해서 결혼을 결심한 것 같다. 10대의 짝사랑과 20대의 연애 실패를 겪으며 열정이란 어느 순간 사그라드는 것이란 걸 깨달았다. 성적인 끌림 못지않게 남편과는 함께 있으면 편안해져서 좋았다.     


그런 편안함은 여러 조건에서 만들어진다. 서로 상식과 태도에 대한 견해가 비슷하다거나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과 시각이 비슷하다거나. 크게 재지 않고 걸리는 것 없이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어서 오래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사실은 사회적 조건이 우리의 사랑을 뒷받침하는 조건인 것이다.  

   

그러나 결혼 후 20여 년 동안 남편과 나는 숱하게 싸웠다. 비록 세상을 보는 눈과 인간을 대하는 태도가 비슷할지라도 싸울 거리는 널리고 널렸다. 열정은 다 사그라졌고 가혹한 현실만 남은 상태에서 사랑을 유지하는 힘은 무엇인가?      


노아와 엘리는 결합한 후 줄줄이 자식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영화 속에서 말한다. 나는 이상했다.  ‘커다란 미국 시골집에서 줄줄이 자식들을 낳고 살면서 계속 순수한 사랑을 유지했을까?’ 현실 속에서는 그럴 수 없다.


영화 ‘노트북’ 속에서 노아와 엘리는 서로 손을 잡고 죽음으로서 현실을 초월하고 영원한 사랑을 완성한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우리는 안다. 늙고 병든 배우자가 병원에 자신을 못 알아보고 초라하게 누워 있을 때 버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너무 다행인 일이다.    


  


사회적 조건을 넘어서는 영원한 사랑은 존재하는가? 연인 사이의 열정이 사그라지면 둘은 서로 안 맞는 것 투성이를 발견한다. 그러면 무엇으로 사랑을 유지하는가? 연인 사이의 사랑은 단지 판타지일 뿐인가?


* 여주인공 역의 배우 레이첼 맥아담스의 싱그러운 미소가 너무 매력적이고 남자 주인공 노아로 나오는 라이언 고슬링이 지금보다도 훨씬 젊은 모습으로 나옵니다. 영화 속에서 둘은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 사이인데 영화를 찍을 때는 사실 사이가 굉장히 나빴다고 합니다. 라이언 고슬링은 이 영화의 성공 이후 20년 가까이 로맨스 영화의 남자 주인공 역을 거의 휩쓸고 있는 듯.


*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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