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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운 Oct 16. 2024

15화. 시키는 대로 안 할래!

“ห่วงโซ่ไกวรุงมาร์ทหรอครับ? (꽈이룽 마트 체인요?)”     


꽈이룽 마트는 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마트 체인이다. 엄청난 부자라는 얘기다. 어쩐지 저렇게 비싼 차를 한국에서 사다니.     


“แล้วทำไมมาเกาหลีแล้วทำงานเหนื่อยล่ะครับ? (그럼 왜 한국 와서 힘든 일해요?)”     


그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살짝 웃었다.     


“ได้ลองทำอะไรหลายๆอย่างก็ดีนะครับ. ธุรกิจของพ่อข้าต้องสืบทอด. เนื่องจากเกาหลีเป็นประเทศที่มีความเป็นผู้นำในการช็อปปิ้งออนไลน์. (여러 경험하면 좋잖아요. 아버지 사업도 물려받아야 하고. 한국이 온라인 쇼핑에 앞서가는 나라다 보니.)”     


아 그렇구나! 꼭 나처럼 못 사는 사람만 한국으로 일하러 오는 게 아니구나. 동바이처럼 왕족도 있고 아농낫처럼 재벌도 있고.     


“สุดยอดมากเลยนะครับ. (정말 대단하시네요.)”     


“ลำไยทำไมถึงมาเกาหลีครับ? (람야이는 왜 한국 왔어요?)”     


“เพราะว่าต้องเลี้ยงครอบครัว. (가족들 먹여 살려야 하니까.)”     


그가 지그시 나를 쳐다보았다.      


“เขาบอกว่ารามใหญ่เจ๋งกว่าอ่ะครับ. ผู้หญิงที่ทำงานหนักเพื่อเลี้ยงดูครอบครัวนั้นยอดเยี่ยมกว่าค่ะ (람야이가 더 대단한대요. 가족들 먹여 살리려고 힘든 일하는 여자가 더 대단하죠.)”     


순간 내 마음이 출렁했다. 마랑이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고 옆에서 부르지 않았으면 내 얼굴이 발그레해진 것까지 들킬 뻔했다.     


3 주가 지나갈 무렵에는 무거운 거 드는 게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전엔 2층에서 일했는데 석훈이 나와 마랑, 동바이를 호출했다.     


“6층 가라고요?”      


내가 되묻자 뒤에서 동바이와 마랑이 내 손을 꼬집으며 아무 말 말라는 얘기를 했다.    

  

“네. 빨리 가세요.”     


돌아서 가는데 동바이와 마랑이 호들갑을 떨었다.

    

“ชั้น 6 เป็นสวรรค์เลย. (6층은 천국이야.)”     


“ของเบาจัง! ไม่จำเป็นต้องขึ้นบันได! ตอนเลิกงานตรงมาที่ล็อคเกอร์ทั้งแบบนั้นเลย! (물건 가벼워! 계단 오를 필요 없어! 퇴근할 때 그대로 사물함으로 직행하면 돼!)”     


“ที่นั่นมีสมบัติสวยๆเยอะด้วยนะ. ต้องเดินชมสิ! (거기 예쁜 보물도 많잖아. 구경해야지!)”     


동바이와 마랑이 앞다투어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계속 2층에서만 일했더니 그런 게 있는 줄 몰랐다. 6층에 도착하니 과연 천국이었다.      


빼곡히 줄지어 있는 높은 선반에는 화장품, 액세서리, 옷 등 가벼운 물건들이 가득했다. 카트도 집품 박스 2개만 올라가는 자그마하고 귀여운 것이었다. 럭셔리 코너에는 예쁘고 값비싼 액세서리들이 가득했다. 일하는 게 아니라 쇼핑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도 있었다. PDA가 지시하는 대로 작은 선반에서 물건을 꺼냈는데 포장 박스 위에 상표 모양이 남자 성기 모양으로 이름이 한자로 쓰여 있었다. 이상해서 들여다보는데 어느새 동바이와 마랑이 와 보고 있었다.      


“นี่อะไรเนี่ย? มันแปลกๆอ่ะ (이게 뭐니? 뭔가 이상해.)”     


“정 / 조 / 대??? 푸하하하.”     


한자를 읽은 동바이가 크게 웃었다.      


“มหาลัยชองโจ? (정조대?)”     


내가 묻자 마랑이 얼굴을 찌푸렸다.    

  

“มหาวิทยาลัยชองโจผู้ชาย!! (남자 정조대!!) 푸하하하.”     


“ที่ผู้ชายมาเติมตรงนั้น? (남자 거기 채우는 거?)”     


“น่าจะได้ประโยชน์นะ. ฉันซื้อซักอันดีมั้ย? (유용하겠는데. 내가 하나 살까?)”


동바이가 장난스러운 얼굴로 계속 웃었다. 그때 PDA에서 연달아 ‘띵’ 소리가 났다. 석훈이 다시 우리를 2층으로 부른 거다.      


“왜 다시 2층이요?” 

    

내가 석훈 앞에서 볼멘소리로 묻자 그가 무심한 얼굴로 대답했다.   

   

“내가 부른 거 아닙니다.”     


“태국 사람 차별해요? ”     


석훈이 고개를 들어 쳐다보더니 PDA를 올리며 냉랭하게 부인했다.   

   

“아닙니다. 이놈이 부른 거예요.”  

   

할 말이 없었다.      


“빨리 일하세요!”  

   

그 놈의 빨리!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카트 쪽으로 가며 일부러 크게 떠들었다.       


“ต้องแบ่งแยกคนไทยอย่างแน่นอน. เครื่องมันร้องมั่วได้ไงเนี่ย? (태국 사람 차별하는 게 틀림없어. 어떻게 기계가 막 부르냐고?)”     


내가 분해하자 동바이가 한 술 더 떴다.      


“ซอกฮุนเป็นคนที่เหมือนงู. พวกเขาพยายามที่จะไม่ให้เราได้มีชีวิตอยู่. (석훈은 뱀 같은 놈이야. 어떻게든 우릴 못 살게 하려고 괴롭힌다고.)”     


“ใช่แล้ว ใช่แล้ว! (맞아 맞아!)”     


마랑이 맞장구를 치고 내가 화룡 정점을 찍어 주었다.   

   

“ต้องพาไปที่วัดลิงแล้วแสดงรสชาติของลิงให้ดู! (원숭이 사원에 데리고 가서 원숭이 맛을 보여줘야 해!!!)”    

 

우리는 일부러 석훈이 들으라는 듯 떠들었다. 어차피 태국어라 그가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뒤에서 이런 소리가 들린 것 같다.     


“역시 PDA가 일을 잘해! 역시 내가 알고리즘을 잘 짰지. 시스템을 잘 굴린단 말이야. 하하”      


무슨 소리지?  

    

어쨌든 PDA가 지시한 곳은 10 키로 쌀포대가 쌓인 곳이었다. 대형 카트 위에 10개쯤 싣고 나니 숨이 헉헉 찼다. 그래도 익숙해져서 속도는 빠르다. 이때 석훈이 뛰어 들어오며 소리쳤다.     


“마감인데 빨리빨리 좀 합시다!”     


내가 힘이 들어 대답도 못하는데 석훈이 쌀포대를 같이 들어 카트에 올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몸을 엇갈리며 열심히 쌀포대를 집어 카트로 올렸다. 그런데 몸이 자꾸 부딪힌다. 공간이 작으니까 그럴 수밖에.... 팔꿈치가 부딪히고 윗몸이 부딪히고 심지어 내 가슴이 그의 등에 가 부딪힌다.      


서로 놀라 마주 보고 헉! 순간 눈에서 불꽃이 튄 것 같다... 그를 분명히 어디서 봤다.     


“우리 어디서 보지 않았어요?”     


내가 물었다.      


“이 눈빛 분명히 그날 밤 눈빛인데...”     


그의 눈빛이 흔들린 것 같다. 하지만 곧 눈빛이 굳으며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뇨. 본 적 없어요.”     


석훈이 고개를 돌리고 허리를 굽혀 다른 쌀포대를 잡으며 소리쳤다.      


“뭐 합니까? 일 안 해요? 나 마감 쳐야 한다니까.”     


내가 잘못 본 건가? 할 수 없다. 얼른 쌀포대를 잡고 카트 위에 집어 올렸다. 겨우 다 싣고 한숨을 돌리는데 뒤에서 석훈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석훈 매니저님!”     


돌아보니 지혜였다.     


“이사님이 여기까지 웬 일로...”     


“석훈 매니저님! 이 사원이랑 친하세요?”     


약간 이상한 질문이었다. 그런 걸 묻다니... 석훈은 좀 당황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마감이라서...”     


지혜가 미심쩍은 얼굴을 보였지만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무슨 일로 오셨는데요?”     


“스티브 감사님이...”     


순간 석훈이 지혜에게 눈을 찡긋한 것 같다. 지혜가 말을 멈추고 둘은 급히 통로로 나갔다. 무슨 일인지 궁금했지만 마감 시간이라 빨리 카트를 끌고 집하 구역에 가야 했다.       


아농낫     

냉장고, 세탁기, 티브이 같은 대형 가전들이 큰 박스에 꽁꽁 묶인 채 산처럼 쌓인 팔렛이 오늘따라 유난히 많이 2층 화물 엘리베이터 앞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오늘은 출고되는 물건이 많은 모양이다.      


‘삐삐’ 거리는 소리를 내며 나 말고도 3대쯤 지게차가 더 움직이고 있다. 한국에 와서 지게차 면허증을 빨리 딴 건 참 잘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기술이 있으니 더 높은 월급을 받고 있고 태국에 돌아가서도 써먹을 일이 많을 것이다. 여기에서 일한 지도 1년이 넘었으니 운전대 돌리는 일이야 바나나 까먹는 일처럼 쉽다.    

  

그래서 한국인 동료들도 나에게 일에 관해 잘 묻는다.     

 

“세탁기 팔렛 어느 엘리베이터 쪽으로 옮겨요?”     


“1층 D 섹션으로 가야 하니까 3번 엘리베이터 앞에 옮겨요.”      


한국인 동료가 웃으며 손가락으로 오케이를 만든 후 운전대를 돌려 멀리 있는 3번 화물 엘레베이터 앞으로 간다. 냉장고가 산처럼 쌓인 팔렛을 지게차 다리에 꿴 채 1번 화물 엘리베이터 앞으로 지게차를 돌리는데 멀리 입구에서 람야이가 오고 있는 게 보인다. 오늘은 같은 층에서 일하는 날인가 보다. 람야이가 바쁘게 손집품 구역으로 걸어가고 있다. 전형적인 태국 미인이라 멀리서도 환히 빛나는 것 같다. 부르고 싶지만 너무 멀어서...   

1번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해 팔렛을 내려놓자 출고 담당 관리자가 다가와 손에 들고 있던 전자 레인지 박스를 냉장고 박스 위에 올렸다. 저러면 안 되는데... 지게차를 세우고 내려 급히 관리자를 불렀다. 

    

“그거 쌓으면 안 됩니다. 너무 높아서 옮길 때 앞이 안 보여요.”     


그러자 관리자가 대뜸 화를 냈다.      


“야! 지금 마감이란 말이야. 하나 더 싣고 빨리빨리 해!”     


“규정 대로 해야 합니다.”     


순간 관리자의 얼굴이 험악해지면서 팔을 들더니 나를 때릴 듯 손을 휘저었다.      


“시키는 대로 안 할래!”  


 “안 됩니다.”     


“외노자 주제에 말을 안 들어!!”     


동시에 내 빰이 철썩하더니 눈 앞에 불꽃이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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