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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운 Dec 11. 2024

33화. 스쿠터 타고 도망가!

3층에서 1층으로 뛰어 내려가 엘리베이터 앞 복도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 너머로 범인이 보였다. 새까만 제복을 입은 보안 요원들에게 양팔을 잡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범인.     

 

우리는 단번에 알아봤다. 마랑이었다. 이럴 수가! 마랑이라니! 평소 말도 잘 안 하고 우리가 말하면 ‘맞아! 맞아!’하고 장단이나 맞추고 얌전한 친구인데. 비싼 핸드폰 공기계를 훔치는 대형 사건을 일으키다니!     


하긴 마랑이 숫차이 오빠를 만나고부터는 좀 이상해지긴 했다. 사진으로 본 숫차이 오빠는 우락부락하게 생긴 게 한눈에도 건달 같았다. 더구나 사진 속에서 그는 비슷하게 생긴 문신을 한 다른 남자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불길했다.     


그러나 마랑은 숫차이 오빠에게 푹 빠져 있었다. 고향에서부터 찾아 한국까지 왔으니 왜 아니겠는가? 그가 빨간 스쿠터까지 사주자 정신을 못 차리고 좋아했다. 마랑은 북쪽 이산 지역 출신이라 우리보다도 더 순진하다.      

‘아직 경찰이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경찰이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동바이를 잡고 있는 보안 요원이 무선기에 대고 얘기하고 있었다.      


“마랑!”     


나와 동바이는 소리쳤다. 그러자 마랑이 고개를 들어 흘낏 보더니 힘없는 얼굴로 다시 고개를 숙였다. 마랑은 이럴 친구가 아니다. 이대로 경찰에 끌려가게 둘 수는 없었다. 나는 동바이와 눈이 마주쳤고 이대로 둘 수는 없다는 마음을 서로 알아챘다.      


나는 1층 메인 출입구 옆에 있는 스쿠터 주차장을 쳐다봤다. 마랑의 빨간 스쿠터가 한쪽 구석에 세워져 있었다. 나는 동바이의 팔을 쳐 그걸 가리켰고 동바이는 눈을 반짝하더니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마랑! 무슨 일이야!”     


너무 큰 소리라 사람들이 쳐다봤다. 동바이는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가서 한국어로 소리쳤다.    

  

“너 물건 훔쳤어? 왜 그랬어? 이런 애가 아닌데, 너 무지하게 착한 애잖아! 절대 물건 훔칠 애가 아닌데...”     

발을 구르며 소리를 지르자 보안 요원들과 사람들이 다 쳐다봤다. 나는 그 사이 뒤편을 돌아 출입구를 나가 주차장 구석에 있는 스쿠터를 끌어 문 앞에 세워 두었다.      


동바이가 소란을 피우면서도 흘낏 흘낏 그걸 봤다. 급기야는 동바이가 마랑을 와락 안았다. 보안 요원들이 기겁을 하고 말렸지만 그 사이 동바이는 귀에 대고 태국어로 속삭였다.     


“ขี่สกู๊ตเตอร์หนีไป! (스쿠터 타고 도망가!)”    

 

순간 마랑이 고개를 들더니 출입문 밖에 빨간 스쿠터가 서 있는 걸 봤다. 50미터도 안 되는 거리다. 보안 요원들은 동바이를 말리느라 한 사람은 마랑에게서 손을 떼고 있었다. 동바이에게 시선이 집중된 사람들 뒤편으로 몰래 돌아오면서 마랑이 고개를 들어 눈을 반짝하는 걸 봤다.   

  

마랑이 빨간 스쿠터를 보더니 몸을 흔들었다. 보안 요원의 손을 뿌리치더니 그대로 출입구를 뛰어 나가며 바지 주머니에서 스쿠터 열쇠를 꺼냈다. 보안 요원들이 ‘도망친다!’ ‘잡아라!’ 소리치는 동안 나와 동바이는 일부러 앞에 넘어졌다. 꽈당!     


보안 요원들이 발을 멈추고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동안 마랑이 열쇠를 스쿠터에 꽂고 액셀을 밟았다. 부릉! 그대로 스쿠터가 달려 나갔다. 마침 입구로 들어오는 대형 물류 트럭 때문에 쫓아가는 보안 요원들은 가로막혔다.     


나와 동바이가 바닥에서 일어서며 달아나는 마랑의 방향을 쳐다보는데 ‘뭐 하는 겁니까?’ 무서운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돌아보니 지혜였다.     


“지금 절도범을 놓쳤어요?”     


지혜가 폭발하는 얼굴로 서서 소리치고 있었다. ‘씨발! 뭐야!’ 하고 소리치던 보안 요원들이 조용해졌다. 그중 한 명이 동바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이 사원이 난리를 피워서 정신이 없었고”  

    

또 나를 가리키며 일렀다.     


“둘이 또 넘어지는 바람에 뛰질 못해서...”     


나와 동바이는 얼굴이 하얘졌다. 그때 뒤에서 지혜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방해했다는 말이에요?”    

 

순간 보안 대장의 목소리가 약간 작아졌다.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나와 동바이는 몸이 굳어 아무 말할 수 없었다. 지혜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 같았지만 그걸 완전히 깨닫기도 전에 평소의 얼음 공주 같은 얼굴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냉랭한 목소리였다. 


“이 사원들이 도와준 거네. 같은 태국 친구니까. 절도 도움죄 되겠어요.”     


“네 그렇습니다. 경찰 곧 도착하니까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네.”    

 

지혜가 대답하고 돌아서려다 다시 입을 열었다.    

 

“잠시만요. 일단 위에 보고 좀 하고요.”      


우리는 무슨 일일까 겁에 질린 얼굴로 지혜를 쳐다보았다. 지혜가 핸드폰으로 통화를 했다.     


“법무 팀장님! 대형 절도 사건이 발생했고 절도범은 도망갔는데 조력자들이 있어요. 그대로 경찰에 넘길까요?”     


그런데 전화기에서 대답을 듣던 지혜의 얼굴이 흐려졌다. 지혜가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지혜의 흐려진 얼굴을 쳐다보았는데 지혜는 보안 대장에서 다시 지시를 내렸다.      


“일단 경찰에 전화해서 절도범이 도망갔다고 알리고 돌아가라고 하세요. 이 사원들 문제는 다시 확인하고 신고하도록 할게요.”     


‘무슨 일일까?’ 궁금했지만 우리는 다소 숨을 돌렸다. 금방 경찰에 끌려가지는 않는다.    

  

대신 보안 요원들에게 이끌려 인사부 사무실로 끌려갔다. 인사부 직원들이 우리를 보고 수군거리며 지혜의 지시에 따라 구석 회의실로 나와 동바이를 넣었다. 회의실 벽은 반투명 유리라 지혜가 맞은편 이사실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곧 퇴근 시간이 되었고 사무실 안 직원들은 퇴근하고 조용해졌다. 나와 동바이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초조하게 의자에 앉아 있었다. 직원들이 핸드폰도 가져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기다릴 뿐이었다. 반투명 유리 너머 지혜의 이사실만 쳐다보았다.      


석훈

마랑이 핸드폰을 대량으로 훔쳐 달아났다는 소식이 매니저 단체 메시지 창에 들어왔고 곧 람야이와 동바이가 그녀를 도운 것 같다는 내용도 들어왔다. 나는 바로 지혜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아보았다.  

   

다행히 람야이는 아직 경찰에 넘어가지 않은 상태라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는 단번에 사태가 알아차렸다. 일을 부매니저에게 넘기고 지혜의 이사실로 찾아갔다.      


들어갔을 때 지혜는 법무 팀장과 영상 통화를 하고 있었다.      


“대표님이 외국인 사원 관련 모든 문제는 일단 자기한테 보고하라고 지시하셨어요. 두 태국 사원이 현행범이 아니라면...”     


“왜 그러시는대요?”     


나는 상황을 알고 있었지만 지혜는 모를 것이다. 핸드폰 화면에서 법무 팀장이 말했다.  

    

“요즘 대표님이 국정 감사를 받고 있는 중이세요.” 

    

지혜가 잠시 머뭇하길래 내가 핸드폰 앞으로 대신 나섰다.   

   

“제가 대표님한테 직접 보고하겠습니다.” 

    

통화를 끊자 지혜가 의문의 눈으로 물었다.    

  

“이 문제로 직접 대표님에게 말씀하실 거예요?”     


대답해야 할 필요가 없다. 내 핸드폰을 들어 연락처에서 ‘병현이 형’을 치고 통화를 눌렀다. 병현이 형은 언제 어느 때든 내 전화를 받는다.     


“외국인 사원 차별 대우 문제 제기되고 있는 거 어떻게 하시려고요?”     


“명절 수당 이제부터는 외국인 사원들한테도 지급해야지.”


“외국인 사원들도 작년에 지급되지 않은 거 잘 알고 있습니다. 괜히 노조에서 문제 제기하지 않도록 문제를 키우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음. 그렇게 하지. ”     


전화를 끊는데 지혜가 놀라서 보고 있었다.     


“두 태국 사원들은 증거가 확실하지 않으니까 그냥 넘어가시죠.”     


내가 얘기하자 지혜의 얼굴이 흐려졌다.  

   

이사실 문을 열고 나오자 건너편 회의실 불투명 유리 너머로 람야이가 이쪽을 쳐다보는 게 보였다. 그 사이 핼쑥해진 얼굴이다. 회사에 온 이후로 무슨 사건 사고가 이토록 많은지. 마음이 아려 왔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그대로 지나쳐갔다. 람야이가 간절한 눈으로 계속 쳐다보는 것 같았다.     


람야이     

“ซอกฮุนทำอะไรอีกเนี่ย? (석훈이 또 뭘 한 거야?)”     


동바이가 회의실의 불투명 유리에 얼굴을 박고 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이사실에서 석훈이 무슨 얘기를 한 걸까? 석훈이 인사부 사무실을 나서자마자 지혜가 우리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 왔다.  

    

우리가 돌아보자 지혜가 말했다.      


“두 분 기숙사로 가세요. 마랑님한테서 전화 오면 바로 저한테 알려 주셔야 합니다. 마랑님은 이제부터 불법 체류자가 되었어요.”     


우리는 얼굴이 굳어졌다. ‘불법 체류자!’ 마치 지옥행 티켓 같은 말이다.      


겨우 기운을 차려 기숙사 방으로 돌아왔다.      


“ซอกฮุนทำยังไงเนี่ย? (석훈이 또 어떻게 한 거야?)”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서며 동바이가 물었다. 매번 나를 구해준다. ‘무슨 마음으로 이러는 걸까? 나를 좋아하는 걸까? 그런데 왜 말을 못 하는가?’ 동바이가 석훈이 뱀 같은 놈이라고 말하면서도 미워하지는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내 마음은 그 이상이었다.      


지쳐 소파에 푹 몸을 누이자 마랑 생각에 눈물이 흘렀다. 오빠가 시켰을 것이다. 사진으로 봤을 때 목과 팔에 그려진 꿈틀거리는 용문신이 이미 불길했었다. 고향 오빠를 그렇게 좋아하더니 불법 체류자가 되었다. 빨간 스쿠터를 타고 잘 도망갔는지 모르겠다.      


밤까지도 지혜 이사가 아무 말 안 했으니 잡히지는 않은 것 같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경찰에 잡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랑이 한 일이 아니니까 고향 오빠가 대신 잡혀야 한다. 그러게 고향 오빠는 왜 좋아해 가지고! 순진하게 넘어가서...     

 

다음 날도 평소처럼 출근했다. 소문이 다 퍼져서 우리 얼굴을 아는 사람들을 우리를 보고 수군거렸다. 그러나 나와 동바이는 못 들은 척 포장장 통로를 지나 외국인 라인으로 걸어갔다.     


가기 전에 석훈의 라인이 있었고 그가 매니저 데스크에서 도착한 노동자들을 등록하느라 컴퓨터를 들여다보며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바쁜 그의 모습을 보며 지나쳐 바로 옆 우리 라인으로 들어섰다.      


나와 동바이가 아농낫에게 등록하고 자리에서 일하는 것을 석훈이 흘낏 흘낏 계속 본 것을 나도 느꼈다. 커다란 사고가 있었지만 일은 평소처럼 전쟁같이 바쁘게 돌아갔고 포장을 하는 내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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