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알바를 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아이돌 앨범 포장 공장에 출근하자 무른 반장이 나를 다른 건물로 가라고 일러 주었다.
메인 창고를 지나는데 상당히 컸고 들어갔을 때 이미 30여 명의 알바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그 옆 작은 사무실 건물 작업실로 들어갔다.
컨베이어 벨트가 없는 작은 작업실이었다. 네 명의 아줌마들이 큰 작업대를 사이에 두고 이미 일을 하고 있었고 나에게 한 자리를 내주었다.
우리는 어린이용 영어 교재 시디 포장을 시작했다. 빠르게 손을 놀리던 다른 아줌마들은 나에게 처음 온 알바가 느리다며 또 야단을 쳤다.
왜 이런 알바를 보냈냐며 쑥덕거리며. 나는 영문을 몰라 주눅이 들었다. 그때 회사 사무직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더니 일 잘하는 여사님을 부사장님이 부른다고 찾았다.
그러자 네 명의 아줌마 중 한 명이 자기냐며 부사장님이 일하는 자리를 묻고는 갔다.
그런데 5 분도 안 돼 아줌마가 돌아오더니 나를 툭 치고는 부사장님이 찾는다고 말했다. 다른 세 명의 아줌마들이 손을 멈추고 일제히 눈이 커져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부사장이 일하는 작업장으로 찾아갔다. 그곳은 컨베이어 벨트 없이 기계가 주로 돌아갔다. 부사장은 친절하게 나에게 일을 알려주며 급하지 않게 일하도록 속도를 조절해 주었다.
점심시간, 공장 자체 식당에서 아침에 만난 다른 아줌마들을 다시 마주쳤고 그녀들은 나에게 이것저것 식사를 권했다. 웃는 얼굴로.
저녁에 퇴근할 때 김상무가 통화하게 되었다. 김상무는 지난번 일했던 무른 반장이 부사장에게 나에 대해 말했고 그래서 부사장이 나를 특별히 보고 싶다고 말했다고 알려 주었다. 이후 나는 몇 번 더 이 공장으로 일하러 나갔다.
그 다음번에는 메인 공장에 갔다. 컨베이어 벨트 중앙 공간에는 유명 아이돌 앨범과 화보집, 팬용 다이어리, 멤버들이 각종 포토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아침에 출근해 30여 명의 알바 아줌마들 사이에 껴서 반장 언니의 지시를 들었다. 제2 창고의 무른 반장과는 달리 목소리가 크고 카랑카랑한 센 언니가 반장이었다.
반장 언니는 이미 익숙한 듯 알바들의 이름을 부르며 자리를 배치했고 나는 처음 왔다며 화보집을 나르는 일을 시켰다.
나는 흑인 남자 옆에서 일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일이 시작되자 컨베이어 벨트는 빠른 속도로 돌아갔고 알바 언니들은 빠른 속도로 일을 해나갔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흰 연기가 나는 듯했다.
나는 무거운 화보집을 들어서 컨베이어 벨트 자리에 앉은 알바 언니에게 가져다줬다. 흰 커버의 화보집은 조금이라도 뭐가 묻으면 큰일 난다고 반장이 주의시켰다.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라고. 무겁기도 했지만 계속 앉았다 일어났다 해서 허리가 아팠다. 돈을 버는 이상 감수해야 하는 고통이다.
그러다가 같이 물건을 나르는 일을 하는 다른 아줌마랑 친해졌다. 예쁘게 화장을 하고 옷도 예쁘게 차려입은 언니였다. 점심시간에 함께 밥을 먹으며 얘기하니 하루 먼저 이곳에서 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자신을 40대라고 밝히며 아이들이 다 커서 집안일이 없어 나왔다고. 꿈이 있다며 요양 보호사 자격증을 딸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사실 학원에 가기 위해 주중에는 일하지 않고 주말에만 일하고 싶다고.
점심 식사 후 화장실에 갔는데 문 앞에 붙은 안내문에 눈이 커졌다. ‘직접 알바 (직알바) 하기기를 원한다면 반장에게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전화 000- 0000-0000.’ 나는 인력 알선 업체 김상무 생각이 났다.
회사에서 직접 부르는 알바를 직알바라고 한다. 나처럼 인력 알선 업체를 통하게 되면 업체는 인당 수수료를 받는다. 직알바를 하게 되면 인력 알선 업체는 돈을 벌지 못한다.
앨범 포장 공장의 다른 알바들에게 물어보니 일당은 같으나 직알바는 주휴 수당을 받는다고 했다. 그리고 직알바도 많았다. 나는 망설였다. 친해진 예쁜 언니는 직접 반장에게 물었나 보다.
오후 휴식 시간이 끝나고 일이 다시 시작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고 반장과 얘기를 하고 있었다. 퇴근할 무렵 예쁜 언니에게 물으니 반장이 자신에게 일을 잘한다고 칭찬했다며 직알바 신청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때 말하는 예쁜 언니의 얼굴엔 자부심이 넘쳤다. 나는 긴마민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