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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운 Jan 13. 2024

5화. 세상의 쓴 맛을 보다

 알바할 결심을 하며 나는 일주일에 두 번만 하기로 마음먹었다. 인력 운반 업체 차를 타는데 정 부장이 오진 않았다. 대신 문자가 왔다. 내일 다시 출근할 수 있냐고. 나는 안 된다고 답했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그제야 오른쪽 팔이 뻐근하고 허리가 아픈 걸 느꼈다. 특히 눈이 아파 티브이를 볼 수가 없었다.


그때야 깨달았다. 공장에서 일할 때 포장 박스에서 나는 인쇄 약품 냄새가 지독했음을. 매일 일하지 않기로 한 건 잘 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 후 나는 정 부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다음날 일할 수 있냐고. 정 부장은 음반 포장 공장 알바 티오가 없어졌다고 다른 포장 공장을 알려줬다. 화장품 포장 공장이었다.


이번에는 내 차로 가겠다고 하자 정 부장은 너무 좋아하였다. 단 작업 장갑을 챙겨 가라고 했다. (그 회사는 작업 장갑을 주지 않는 회사였다)     


다음날 간 화장품 공장은 앨범 포장 공장보다도 더 큰 규모였다. 커다란 주차장에 운전해 간 경차를 쑤셔 넣고 공장 안으로 들어가자 넓은 공간에 컨베이어 벨트가 뱀처럼 구불거리고 있었다.


이 공정에도 이십여 명의 알바들이 있었는데 출근한 알바들을 체크하던 반장은 처음 온 사람을 찾았다.      


내가 손을 들자 반장은 나를 데리고 안쪽 기계실로 갔다. 그곳은 컨베이어 벨트가 시작하는 곳으로 마스크팩을 빼곡하게 넣는 기계였다. 세 대가 나란히 있었고 세 명의 알바가 지키고 섰다.


그중 한 대에는 동남아 여성이 서 있었다. 나를 안내해 간 기계에는 숙련자로 보이는 30대 여성이 서 있었고 나에게 간단히 기계 안에 마스크 팩을 넣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나는 지금도 그곳을 기억하기가 싫다. 왜냐하면 기계가 돌아가는 순간부터 지옥 같았기 때문이다. 기계는 엄청나게 큰 소리를 내며 돌아갔고 끓임 없이 200 개들이 마스크 팩 상자가 기계 옆에 쌓였다.


나는 박스를 펴고 그 안에 마구 잡이로 흐트러져 있는 마스크 팩들을 정리해 기계 안으로 넣어야 했다.     


기계는 빠른 속도로 돌아갔고 옆에 선 30대 언니는 속도가 느리다며 손 방향이 잘 못 됐다느니 손가락 각도가 잘못됐다느니 그렇게 넣으며 포장이 찢어진다느니 2 분 단위로 야단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시작한 지 10 분밖에 안 됐다고 말할 여유도 없었다.


왜냐하면 기계 너머 컨베이어 벨트 옆으로는 이십여 명의 알바 언니들이 물건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장은 속도가 느리다며 다가왔고 30대 언니는 반장에게 내가 너무 일을 못해서 바꿔 달라고 말했다.     


나는 원래 못한다는 말을 듣기 싫어하는 자만감이 있다. (세상에는 못 해도 되는 일이 있다는 진리를 허용하지 못하는 편이다)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반장은 그러나 오전만 그대로 하고 오후에 바꾸자고 말했다.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 점심시간이 되었다. 그 공장에는 자체적으로 작은 식당이 있었다. 식당에는 알바들이 바글거렸고 테이블에 두셋씩 식판에 밥을 받아 수다를 떨며 식사를 했다.


나는 식판에 밥을 받고 아무도 없는 구석 테이블에 앉았다. 맞은편 테이블에는 사수(?)인 30대 언니가 다른 언니들하고 밥을 먹으며 얘기하고 있었다.   

  

‘오늘 처음 온 알바가 일을 너무 못하는 거야. 내가 반장 언니한테 얘기해서 오후에 바꾸기로 했어!’ 사수 언니는 주변 다 들으라고 큰 소리로 말했고 옆의 알바들이 불쌍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아닐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느꼈다)     



오후에 다시 기계의 굉음이 시작되어 정신없이 마스크 팩을 정리해 기계 안에 집어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반장이 와서 보더니 아무 말없이 그냥 갔다. 사수 언니가 반장을 따라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때부터 사수 언니가 야단을 치지 않았다. 6시까지 일이 계속되는데 중간에 손이 좀 느려지는 듯하면 옆 기계에 있던 동남아 언니가 와서 도와주었다. 그리고 ‘딸(잘) 한다’고 얘기하고 갔다. 그래도 서글픈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6시가 되어 기계가 멈췄다. 사수 언니가 나를 노려 보더니 얼른 퇴근해 버렸다. 퇴근해 구석에 주차한 차를 타고 시동을 걸어 다른 차들이 나가는 걸 기다리는데 눈물이 흘렀다. 정 부장에게 전화를 해 다시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5분 만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같은 인력 알선 업체 김상무라고. 앞으로는 자기가 나를 담당할 거라며 첫날 갔던 앨범 포장 회사로 가 달라고 말했다. 거기 회사에서 나를 좋게 봤다고, 쉬운 일을 맡길 거라고 서글서글하게 부탁했다.   


  * 지난 1월 3일 글을 올린 이후 13일 오늘 현재까지 누적 조회수가 약 17만을 넘어갑니다. 구독자 분들도 급속히 늘고 있고 핸드폰 알람이 5분 단위로 울리네요. 마치 구름 위를 걷고 있는 기분이에요.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연재 주기를 바꿉니다. 토요일/일요일 연속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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