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알바 일을 시작할 때 연락한 사람은 김상무 (가명)가 아니었다. 같은 인력 알선 업체 정 부장 (가명)이었다. 정 부장은 나를 아이돌 앨범 포장 공장으로 가라고 했다. 그런데 그 다음번 신청했을 때에는 지옥 같은 화장품 포장 공장에 배치했다.
알바를 포기하려고 하는데 전화를 해 다시 앨범 포장 공장으로 가라고 한 이가 김상무였다. 그 앨범 포장 공장은 김상무의 고객이었다. 그때부터 정 부장이 아니라 김 상무가 내 담당이 되었다. (인력 알선 업체에서는 알바마다 담당 인력이 다르다)
어떻게 보면 의류 포장 공장 집적 단지로 나를 데뷔시키기 위해 단계별로 훈련을 시킨 면으로 보인다. 김상무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알바들도 그런 식으로 인력 개발을 하는 듯했다. 알바마다 적정한 수준을 파악하며 일 배정을 한다. 그것도 얼굴도 안 보고 카톡이나 전화를 하며.
언니들 얘기로는 김상무가 거짓말도 잘한단다. 일이 있는 데도 없는 척하고 다른 일로 보낸단다. 그리고 통상 인력 업체 직원들이 기본으로 하는 인력 운반차 운전도 하지 않는다.
김상무 알바들이 대부분이 자기 차로 움직이고, 없는 사람들은 같은 동네 알바들을 묶어서 운전하는 알바의 자동차에 싣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작은 수당을 지불하고는. 그래서 김상무의 얼굴을 본 알바는 드물었다.
본 무대로 데뷔한 나에게 앞으로 얼굴도 보지 않은 김상무와의 드라마 같은 일들이 이어진다 (이후 회차에 이어짐). 의류 포장 집적 단지 여러 공장을 돌며 나의 기술은 날로 일취월장했다. 그래도 일주일에 2번만 일하는 원칙은 지켰다. 그 사이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처음 단지로 출근하는 날, 나를 점심 테이블로 부른 금목걸이 금귀걸이를 한 언니와는 자주 부딪혔다. 언니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알바 언니들에게도 참 친절했다. 출근하는 아침에는 모든 알바들에게 인사를 하며 반가워했고 종이컵 커피를 권했다.
주차할 때 주의 사항도 알려 주고 반장이 일을 지시할 때 알바들이 잘 대처할 수 있게 눈치도 줬다. 쉬는 시간에는 모든 알바들이 엉덩이 붙이고 쉴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고 점심 때에는 혼자 먹는 사람을 테이블로 불렀다.
알바 언니들이 (좋은 의미에서) 왕언니라고 부르며 따랐는데 단 언니들이 싫어할 때가 있었다. 금목걸이 언니는 해외여행 갔던 얘기를 많이 했다. 유럽, 일본, 대만 등등을 혼자가 아니라 언니 돈으로 가족과 함께. 다른 언니들은 너무 자랑한다고 싫어했지만 나는 재밌게 들어주었다.
“언니, 어떻게 그렇게 해외여행을 가족 데리고 많이 갈 수 있어요?”
“(주변 눈치를 보며 작은 소리로 내게만) 나 건물 한 채 가지고 있잖아.”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럼 왜 알바 일 나오세요?”
“운동 삼아 나오는 거지.”
건물주 알바라니. 그래. 언니 차는 번쩍거리는 최신 외제차다. 그래도 나는 건물주 언니가 참 친절하고 포용력이 있어서 좋았다. 언니는 까대기도 나서서 잘했다. (까대기의 운동 지수가 가장 높기는 하다)
봄날 만난 30대 언니도 참 인상적이었다. 김상무는 가끔 나를 (나뿐만이 아니다) 단지 바깥에 있는 의류 포장 공장으로 보냈다. 나는 외곽에 있는 중형 규모 정도의 공장에 가게 되었다. 창고를 3개 보유하고 있었다.
가끔 알바들을 부르는 곳으로 그날 나는 부속 창고 2층에서 일했다. 그때 예쁜 30대 언니를 만났다. 우리는 자질구레한 옷들을 포장하여 박스에 넣고 정리하는 일을 했다. 반장은 업무만 지시하고 다른 창고로 가 버렸다.
봄바람은 2층 창문으로 살랑살랑 불어오고 다른 직원은 없고 일은 힘들지 않아 우리는 음악을 듣고 수다를 떨며 일했다. 예쁘장하게 생긴 30대 언니는 진짜 일을 잘했다. 반장이 사실상 알아서 창고 정리를 해달라는 지시를 한 것이라 우리는 일할 때 머리를 써야 했다.
머리를 써서 정리하는 거야 나도 잘하는 거지만 이 언니가 만만치 않았다.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손발을 잘 맞춰 일했다. 언니는 아이 셋이 있는 엄마였다. 그리고 간호조무사란다.
아이들은 어린이 집에 있고 오후에는 친정어머니가 봐주신다며 오늘 병원 휴무라 알바 나왔다고 말했다.
“아이 셋 보고 간호 조무사 하는 걸로도 바쁠 텐데 쉬지 왜 알바하러 나왔어요?”
“목표가 있어서요”
“뭐?”
“실은 명품백 하나 사려고요. 찍어 둔 게 있는데 생활비에서 뺄 수는 없고 따로 돈 모으려고요”
나는 미소를 지었다. 아이 셋을 키우며 병원 일하느라 얼마나 치일지 바쁜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아등바등 살며 자신을 소진시키느라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았을까? 나는 그녀의 그런 목표와 노력이 참 좋았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남편 도움 없이 자기 힘으로 일상에 지장을 주지 않고 자신에게 좋은 것을 선물하려는 마음. 명품 백을 사고 싶어 알바 나오는 아이 셋 엄마를 칭찬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