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가을, 특전사 부장 회사에서 몇 번 더 일했다. 회사의 기술은 날로 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상무가 천사 반장들의 회사로 가라고 했다. 나는 ‘이미 진 회사에는 왠일!!’ 이라고 생각했지만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아침에 사무실로 출근하니 반가운 얼굴이 있어 눈이 커졌다. 작년 겨울 천사 반장의 공장에서 만났던, 나에게 따뜻했던 60대 언니였다. 그녀는 김상무의 알바이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나 반가워했다.
천사 반장들이 이 언니를 다시 부른 것이다. 작업장에 있는 나머지 4명의 인력은 못된 언니 업체 알바들이었다. 물론 못된 언니도 있었다.
따뜻한 언니는 고정적으로 나가는 알바가 되어 있었다. 천사 반장 1은 작업 지시가 끝난 후 나를 따로 불렀다. 알바 5명이 일하는 양품 작업장을 떠나 2층 작업장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회사 대표님 가족이 일하고 있다고.
나는 2층 작업장으로 갔는데 대표님 어머니와 누나가 준비하고 있었고 작업대에는 비싼 화장품이 쌓여 있었다. 나는 그녀들을 도와 화장품 포장 하는 것을 도왔다.
포장을 하면서 나는 언뜻 특전사 부장 회사에서 일할 때 이곳 대표가 잠시 들러 일하는 것을 보고 간 게 기억이 났다. 알바들이 커다란 작업대에 모두 모여 옷을 개는데 중년의 남자분이 나타났고 고참 알바 언니들이 일제히 인사를 했다. 그때 그분이 천사 반장 회사 대표인 걸 알게 됐다. 두 회사는 협력 관계였다.
점심시간, 나는 따뜻한 언니와 함께 식당에 가게 되었다. 그때 언니가 말하기를 이곳에서 인력 업체를 바꾼 건 천사 반장들의 결정이 아니라 새로 들어온 부장의 추천이었다고. 부장이 업체를 좀 바꿔 보자고 해서 바뀐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천사 반장들의 주장으로 따뜻한 언니만 고정 알바로 들어오게 된 거다.
천사 반장들이 김상무를 배신한 줄만 알았던 나는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부장은 천사 반장들의 상사였고 그녀들은 부장의 지시를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천사 반장도 나름 김상무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던 거였다. 나는 따뜻한 언니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식당 옆 테이블에서는 못된 언니 업체 알바들이 밥을 먹고 있었다. 입이 근질근질했던 나는 따뜻한 언니에게 못된 언니와의 악연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때 못된 언니 업체 알바 하나가 우리 테이블에 와서 앉았다.
못된 언니와 밥을 먹지 않고 따고 혼자 밥을 먹던 언니였다. 나는 입을 멈췄지만 그 언니는 다 들었다는 듯 내 옆에 앉았다. 나는 얼굴이 새하얘졌는데 갑자기 그 언니도 못된 언니 뒷담화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의견은 일치했다. 같은 알바들을 막 대하고 아랫사람 취급하며 권력을 행사하려 한다고.
오후, 2층 작업장에서 나는 대표의 가족들과 즐겁게 수다를 떨며 일을 해 나갔다. 그녀들은 친절한 분들이었다. 그걸 못된 언니가 보고 갔다.
그녀는 아마 내가 능력이 없어서 전에 잘린 것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오후 쉬는 시간에 나는 천사 반장들과 작년 겨울 접착 기계가 얼어서 고생했던 걸 얘기하며 웃었다. 못된 언니의 눈이 커지는 걸 나는 봤다.
그날 내가 여기 온 것은 천사 반장들의 추천이었음에 틀림없었다. 천사 반장들은 아직도 김상무 라인을 신뢰하고 있었다.
* 다음 주, 이 연재의 마지막 이야기가 올라갑니다. 마지막 화에서는 그동안 문자나 전화로만 얘기하고 얼굴을 몰랐던 김상무를 제가 드디어 만난 이야기가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