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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미치 May 19. 2024

한강 샛강 생태 공원, 정영선 조경사의 시


여의도 높은 빌딩 숲 옆으로 조금만 비껴 한강 쪽으로 나가면 울창한 숲이 나온다고 해서 가 봤어요. 진짜 믿기지 않는 울창한 숲이 있었습니다.     


처음 들어갈 때는 주변 자동차 소리가 너무 심하게 나서 긴가민가 했지만 곧 ‘서울에 이런 곳이!’하고 놀라게 되는 숲으로 들어갑니다.      



나무는 연한 초록에서 짙푸른 초록으로 변해가며 5월은 신록의 계절임을 자랑합니다. 늦은 오후 저녁 무렵 안온한 햇빛이 나무들을 마치 꿈처럼 물들였습니다.     


짙푸른 나무와 키 큰 풀들 사이로 노란 창포꽃, 흰색 찔레꽃이 곳곳에 피어 있어서 눈이 즐거웠습니다.       

흐르는 샛강 위로는 나무다리들이 편안하게 놓여 있어 산책하기 좋았고 가다가 경쾌하게 흐르는 맑은 시냇물도 만났어요. 맑은 물 곁으로는 노란 창포꽃이 펴서 연둣빛 풀과 어우러지며 마치 르느와르의 풍경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 풍경은 정영선 조경가가 만들었다고 합니다. 자연 그대로를 살리면서 누구나 하이데거나 칸트처럼 숲 속을 걸으며 생각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조성했다고 합니다.     


1996년경 서울시 의뢰로 만들었는데 처음 설계도를 가져갔을 때 한강 관리 소장이 ‘주차장은 어디 있냐?’ ‘매점은 어디 있냐?’ ‘벤치가 왜 이렇게 없냐?’는 불만을 들었다고 합니다. 대형 주차장과 축구장을 먼저 만들어 달라는 소장 앞에서 정영선 조경가는 김수영 시인의 시를 읽어 주면서 설득을 했다고 합니다.     

 

제가 정영선 조경가를 좋아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선유도 공원, 경춘선 숲길, 서울 식물원, 호암 미술관 정원 희원, 아모레 퍼시픽 본사 정원, 제주도 설록티 정원 등 제가 가 보고 너무 힐링을 얻은 장소들을 모두 만드셨어요. 요즘 MZ 세대들의 핫 플레이스이기도 합니다.     


정영선 조경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선유도 공원. 정수 시설 기반을 그대로 활용했다.


지금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9월 22일까지 열리는 정영선 조경 전시회 ‘정영선 :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에도 가 보았지요. 그 안에 정 조경사의 철학이 잘 나와 있었습니다.   


   


‘우리가 다루는 대지는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절대 독립되지 않고 시/공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조경이라는 작업은 무엇을 만들고 생성하는 창작 이전에 관계를 다듬고 설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생각해 보니 제가 본 모든 장소들의 정원들은 이러한 철학 속에서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에서 유명한 일본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건축 전시회를 뮤지엄 산에서 본 적이 있는데 정영선 조경가와 대비되었습니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 작품들은 정원 연못에 서 있는 십자가가 전면 앞창으로 보이는 교회, 호수 위에 떠 있는 사찰 등 건축물 안으로 가꾸어진 자연을 끌어 들어오는 형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영선 조경사의 정원은 원래 있던 자연을 최대한 살리며 더욱 자연스럽게 하는 형식입니다. 좀 더 한국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 가정의 정원 형식이 흰돌이 전면에 깔린 마당, 한껏 다듬어진 작은 나무 등 자연을 많이 인공적으로 다듬은 것을 생각한다면요.      


또한 남성인 안도 타다오에 비해 여성인 정영선 조경사는 관계를 중시하는 여성 특유의 철학이 더욱 돋보입니다. 그녀가 기여한 한국 조경의 아름다움은 경쟁에 지친 요즘 MZ 세대에게 힐링을 던져주며 핫 플레이스들로 부상했습니다.     


국립 현대 미술관 중정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나온 인터뷰 영상에 보면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80살이 넘으신 것 같은 데도 편안하고 유머스러운 인품을 볼 수 있습니다. 1세대 조경사인 그녀 밑으로 현재 많은 조경사들이 배출되었다고 합니다. 최근에 TV에도 나오셨다고 하던데 보진 못했어요.    

  

한강 샛강 생태 공원은 국회 의사당에서부터 여의도 한강 공원까지 6킬로의 산책로가 있어요. 9호선 샛강 역에서 가깝습니다. 나무들이 우거지고 사이사이 시냇물이 흘러서 한여름에도 시원할 것 같아요. 


     

지하철을 내려 곧장 은밀한 숲 속으로 들어가 보세요. 정영선 조경사가 생각했던 대로 조경한 줄도 모르고 숲길을 걸으며 숨이 편안해지고 마음이 평화로워집니다. 사시사철 어느 때나 그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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